자존심을 지키는 방어 기제
쓴소리, 허튼소리, 잔소리... 그런데 산소리도 있다고?
산소리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속은 살아서 남에게 굽히지 않으려고 하는 말'을 의미하는 우리말이다. 언뜻 자존심의 유의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자존심의 발현에 더 가깝다. 수치스러운 상황에 비굴함을 거부하며 속마음을 지키려는 자기 방어 기제인 것이다.
산소리
어려운 가운데서도 속은 살아서 남에게 굽히지 않으려고 하는 말
누군가에게 자존심이 세다고 말을 하면 상당 수의 사람들이 손사래를 치며 본인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한다. 자존심이 센 사람은 융통성 없이 고집이 세고 예민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 또한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해왔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자존심 없는 사람이 있을까?
어느 날 아파트 공터에 어린아이들이 모여 킥보드 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중 한 아이가 발을 지면에 너무 세게 굴렀는지 우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흙바닥도 아니고 아스팔트 위라서 꽤나 아파 보였는데 아이는 황급히 놀란 표정을 감추고 태연한 척을 했다. 주위 친구들의 괜찮냐는 물음에 전혀 아프지 않다고 대답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또래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기 싫은 어린아이의 속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 발표 시간도 아닌, 전교생이 바라보는 체육대회 달리기 경기도 아닌, 동네 꼬마들의 놀이 현장에서 그 어린아이도 산소리를 내었다.
어려운 시기에는 지나가는 말도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한 모임에서 몇 년 만에 지인과 뜻밖의 조우를 했다. 서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상투적이지만 진심 어린 덕담을 주고받다 지인은 나에게 무슨 일 하냐고 물어봤다. 정말 별 것 아니고 당연한 질문이었지만 당혹감과 부끄러움에 내 생각 회로는 멈추었다. 빠르게 정신을 가다듬고 대답을 했다. "저 원래 OO에 있는 테크 스타트업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일 쉬고 있어요." 굳이 과거 소속을 밝혔던 것은, 내 산소리였다. 혹자는 그저 최근의 근황을 짧게 요약한 것이지 무엇이 산소리냐고 말하겠지만 나는 내 말 뒤에 숨겨진 욕망과 의도를 안다. 당신 앞에 서있는 나는 너무도 별 것 아닌 존재 같아서 과거의 타이틀을 끌어모아 나를 포장한 내 산소리였다. 전세사기를 대응하고 퇴사 후 구직하는 과정에서 자존심 상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당신은 식사를 마친 후 계산대에서 카드를 꺼내며 서둘러 말을 붙인다. "저녁은 내가 살게, 네가 맛있는 커피 사~", "네가 와준 건데 내가 당연히 사야지!" 나는 당신의 그 사려 깊은 마음을 안다. 그래서 산소리를 낼 수 없었다. 속은 아직도 창창히 살아있어 내가 사겠다며 쿨한 척을 할 수도, 현실에 타협하여 더치페이하자고 할 수도 있지만, 당신의 따뜻함을 알기에 그 순간만큼은 산소리를 거두어들였다.
쓰라린 현실 속에서 산소리를 낸다고 마음이 가벼워지 않는다. 외려 메아리처럼 돌고 돌아 내게 닿고 괴로움을 증폭시킨다. 그럼에도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을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또 체면을 지키는 말들을 할 것이다. 하지만 커피 사라는 사소한 몫을 부여해주고, 네가 먼 길을 와줬다는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가며, 굳이 밥을 사면서 나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이들이 있다. 그 마음 또한 내 안에서 메아리를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