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 앉은 그녀는, 몇 달째 집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버티는 게 힘들다,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이야기는 못 하겠다고 했다.
약도 싫다고 했다.
내가 뭘 해줄 수 있는지, 병원에는 왜 온건지,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졌다.
오랜 생각 끝에, 내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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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자리, 이 시간,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공간
말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괜찮고,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여기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통을 말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너무 오래 삼켜왔기 때문에, 너무 복잡하게 엉켜 있기 때문에.
그리고 누군가에게 말하는 일이 더 큰 고통이기 때문에.
그래서 치료가 꼭 말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말이 없는 그 자리를 함께 견디는 것이 시작이 됩니다.
도와주는 사람의 의지에서만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고요한 존재와 기다림이,
내가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 되기도 합니다.
정신과 진료실이 주는 위로가 있다면,
그건 꼭 뭔가를 해결해주거나 조언을 주는 일이 아니라,
"이렇게 힘든 당신이 여기에 있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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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결국, 그날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가는 뒷모습은, 처음 들어올 때와는 조금은 다른 듯 했다.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무언가'를 나눈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자리, 이 시간,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습니다."
그 말이 누군가에겐,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