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 사이, 멀어지는 마음의 거리

걱정이 통제가 될 때

by 김소연 트윈클

“엄마는 네가 걱정돼서 그래.”

그 말 안에는 참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사랑, 책임감, 그리고 불안.


어떤 엄마는 말한다.

작은 아들이 운동을 간 날엔, 정해진 시간보다 10분만 늦어도 불안하다고.

11시 20분에 들어오는 아이인데, 11시만 돼도 그 20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전화를 기다리며 샤워도 못 하고, 아이가 올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한다.


처음엔 그 마음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렇게까지 아이를 걱정하다니, 정성스럽고 애틋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조금 더 듣다 보니, 그 걱정은 단순한 애정이 아니라

아이가 자유롭게 숨 쉴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불안의 그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은 어느 순간 통제로 바뀐다.

“몇 시에 들어올 거야?”, “거기 말고 다른 데 가면 안 돼?”, “전화 왜 안 했어?” 부모는 말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다 너 잘되라고, 다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하지만 아이의 마음은 다르게 흐른다.

‘왜 나를 못 믿지?’, ‘왜 자꾸 내 마음을 몰라주지?’, ‘나는 그냥 조금 늦은 건데… 그게 그렇게 큰일인가?’


점차 아이는 말을 줄이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기보다 부모가 원하는 방향에 맞춰 움직이거나,

혹은 반대로 고개를 돌리고 반항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닿지 않으면 관계는 멀어지고, 부모는 더 답답해지며 조이고 지시하게 되지만,

그럴수록 아이는 더욱 멀어진다. 결국 남는 건 서로의 서운함과 불안,

그리고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공허한 마음뿐이다.


사랑은 통제가 아니다.

사랑은 기다려주는 것, 믿어주는 것, 그리고 나의 불안을 아이에게 넘기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다.


아이가 늦을 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불안을 있는 그대로 마주볼 수 있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마음은, 아이가 만든 게 아니라 내 안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감정이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 불안은 누군가를 조이는 힘이 아니라,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기회가 된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 마음까지 함께 키워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마음을 살핀다.

지금 아이를 위해 말하려는 이 한마디가 진짜 사랑인지,

아니면 불안에서 나온 통제인지.

마음을 닫게 만드는 걱정보다는, 마음을 열어주는 기다림을 선택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