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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폐쇄공포증과 고양이의 청소기 공포증

약한 우리라서 다행이다!

by 희서 Jan 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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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로비 이른 새벽부터 많은 인파로 적였다.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 그 속에 떠밀려 가다 보니 어느덧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랐다. 이번 1월 1일에는 해돋이를 꼭 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다짐을 하고 나선 자리였다.


 67층 아파트의 옥상을 일 년에 딱 하루 개방하는 날. 사방이 뻥 뚫려 넓은 시야가 확보되는 아파트 옥상 해맞이 행사는 저 멀리 동해까지 가지 않아도, 높은 산을 오르지 않아도, 환상적인 뷰와 해돋이의 감동을 동시에 안겨 주어 주민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그런데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집을 나서기 전의 포부는 온데간데없이 마음이 점점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밀폐된 작은 공간에 머무는 것을 최대한 피하며 살아왔다. 공황이란 녀석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발현될지 모르기에 예기불안의 싹이 트이지 않게 조심조심 살아왔다. 저층부에 살았기에 고층부 엘리베이터는 타보지 않았을뿐더러, 이 많은 인파와 함께 타고 갈 생각을 하니 오금이 저왔다.


 '고속 엘리베이터라고 했지. 1분 30초.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가보자!'


 별것 아닌 일이 나에게는 별일이고 도전인 일상에 때때로 마음이 무너져 내리지만 내 옆에는 새해 첫 태양을 보겠다고 새벽같이 일어난 두 아이가 함께하고 있다. 애써 태연한 척 아이들에게 미소를 흘리고 식은땀 닦아 내렸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창문에 피어오른 뿌연 김을 보며 바깥 날씨를 대강 예측해 보니 환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추운 거야. 으윽.'


 툼한 니트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서 거실 창문을 하나씩 열었다. 매서운 바람이 삽시간에 들이닥치더니 집안 공기가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빨리 끝내자.'


 거사를 앞둔 사람마냥 마음을 다시 한번 가다듬고 창문 두어 개를 더 열었다. 그리고 청소기를 들었다.


 '위잉.위잉.위... 이....잉'


 청소기를 듦과 동시에 위로 아래로 숨을 간을 아 재빠르게 이동하는 녀석들. 매일 아침 겪는 일이지만 고양이들에겐 여전히 적응되지도, 풀리지도 않는 오래된 과제 같은 시간. 청소기를 들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올라온다.


 "빨리 끝낼게. 조금만 기다려봐."


청소기 괴물을 피해 식탁 밑에 피신해 있는 고양이들청소기 괴물을 피해 식탁 밑에 피신해 있는 고양이들

 

 청소기 소리가 멈추고 창문이 닫힌 걸 확인한 후에야 긴장을 풀고 천천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녀석들.




 그저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 여전히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고 도전이 될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다.
청소기를 들다.


 

 왜 나는 극복할 수 없을까 스스로를 책망한 적도, 무너져 내린 적도 있지만 이런 나를 끌어안기로 결심했다. 이런 나를 더욱 보듬어주고 사랑해 주기로.


 약하니까 사람인 거지.


  런 나라서 작은 생명의 소리에 귀를 더 기울일 수 있게 되었고, 보잘것없는 성취라고 속단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약하니 루이와 베리의 작은 몸짓에도 마음을 더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약한 내가 는 좋다!

 약한 라서 다행이다!

 서로 보듬어갈 수 있는 너와 내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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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층 옥상에서 해돋이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새해의 첫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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