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를 실룩이며 보호자와합을 맞춰옮겨지는 다리가 앙증맞아 뒤에서 따라가며 웃음이새어 나왔다.앞서 나갈 수도 있었지만 그 모습이 귀여워 걸음을 늦추며 둘레길을 따라걸었다.
"어머나, 안녕하세요? 강아지가 귀여워서 관심이 쏠리다 보니 선생님인 줄도 몰랐네요."
둘째 아이 공부방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딸아이에게 익히 들어알고 있었다. 거실에서 수업할 때 강아지가 방 안에서 낑낑거려 선생님이 한 번씩 들여다볼 때가 있었는데 그때 봤던 강아지가 참 귀여웠다는 말을 딸아이에게들었다.
"밖에만 나오면 신이 나서 천방지축이 돼요. 창피할 정도예요. 하하."
매서운 추위는 전날 밤 제법 내린 눈을 만나 세상을 더욱 하얀빛으로 꽁꽁 얼려버렸지만 강아지의 기분만은 얼릴 수 없었나 보다.보호자의 다정한 눈빛을 받으며 걷는 앙증맞은 다리엔 힘이 들어갔다.
'우리 베리도 눈 오는 날 좋아하는데.'
눈이 오면 창문에 꼬옥 붙어서 창밖의 눈 결정체를 잡으려는 몸짓을 여러 번 시도하다가 쉽지 않은지 이내 멀뚱히 쳐다보던 일이 떠올랐다.
눈 결정체가 천사같이 내려오던 날, 베리의 모습
'베리랑 산책을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간혹 산책을 즐긴다는 고양이가 있다고 들었지만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면 불안감이 극대화된다.베리를 키우며병원 신세를 질 일이 몇 번 있었는데,현관문을 나서려는 순간베리의긴장된 마음이 확장된동공을 통해 이미 전달되어 집 밖으로 발을 떼기가 힘겨웠던 기억이 또렷하다.
'둘레길을 나온 베리는 얼음보다 더 꽁꽁 얼어붙어 버리겠지. 겁에 질린 베리는 수풀에서 새어 나오는 바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 하네스를 벗어버리고 정처 없이 뛰어가다가 돌 틈 사이에 숨어들 거야. 그러고는 작고 깊숙한 틈 안으로 기어들어가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웅크리고 있겠지. 그러면 나는 길바닥에서 엉엉 울며 베리를 찾고 또 찾아 헤매다가 결국 찾을 수 없는 베리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짖을 거야. 다 큰 어른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우리는 서로를 그리워만 하며영영 볼 수 없게 되는 거야. 괴로워만 하며 영영 헤어지는 거야.'
끔찍하다. 정말 아찔하다. 귀여운 강아지의 뒤태를 따라가며 나는 이토록 참혹한 결말을 상상하고는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고양이 엄마의 발소리가 유달리 거세게 들렸던지 두 고양이가 마중 나와 있었다.
뭔 일 있었냐옹?
'고양이 엄마, 무슨 일 있었냐옹? 왜 이렇게 야단스럽냐옹? 나는 루이랑 자다가 발소리에 방금 깨어났는데옹.'
"베리야, 루이야. 산책 안 해도 돼. 아니 산책하지 말아. 절대 하지 마."
조용하고 은근하게고양이 엄마 동태를 살피면서주위를 맴돌며 다리를 비비다가이쯤 하면 됐다 싶었는지 한 발짝 물러서는 고양이들. 그러고는 느긋하게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고양이들.
분주하고 아찔했던 마음이 정리되는 순간
한 번씩 엉뚱한 생각에 매몰되어 헤어 나오기 어려울 때가 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미뤄 짐작하고 있을 때, 생각을 끊어야 할 순간일 때, 고양이들은 은근히 다가온다. 느긋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여유 있는 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