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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산책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가끔 고양이와의 산책을 꿈꿔봤어

by 희서 Jan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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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덩이를 실룩보호자와 을 맞춰 겨지는 다리가 앙증맞아 뒤에서 따라가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앞서 나갈 수도 있었지만 그 모습이 귀여워 걸음을 추며 둘레길을  걸었다.


 "어머나, 안녕하세요? 강아지가 귀여워서 관심이 쏠리다 보니 선생님인 줄도 몰랐네요."

 

 둘째 아이 공부방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딸아이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거실에서 수업할 때 강아지가 방 안에서 낑낑거려 선생님이 한 번씩 들여다볼 때가 있었는데 그때 봤던 강아지가 참 귀여웠다는 말을 딸아이에게 었다.


 "밖에만 나오면 신이 나서 천방지축이 돼요. 창피할 정도예요. 하하."


 서운 추위 전날 밤 제법 내린 눈을 만나 세상을 더욱 하얀빛으로 꽁 얼려버렸지만 강아지의 기분만은 얼릴 수 없었나 보다. 보호자의 다정한 눈빛 받으며 걷는 앙증맞은 다리 힘이 들어갔다.


 '우리 베리도 눈 오는 날 좋아하는데.'


 눈이 오면 창문에 꼬옥 붙어창밖의 눈 결정체를 잡으려는 몸짓을 여러 번 시도하다가 지 않은지 이내 멀뚱히 쳐다던 일이 떠올랐다.


눈 결정체가 천사같이 내려오던 날, 베리의 모습눈 결정체가 천사같이 내려오던 날, 베리의 모습


 '베리랑 산책을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간혹 산책을 즐긴다는 고양이가 있다고 들었지만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면 불안감이 극대화된다. 베리를 키우며 병원 신세를 질 일이 몇 번 있었는데, 현관문을 나서려는 순간 베리의 긴장된 마음이 확장된 동공을 통해 이미 전달되어 집 밖으로 발을 떼기가 힘겨웠던 기억이 또렷하다.


 '둘레길을 나온 베리는 얼음보다 더 꽁꽁 얼어붙어 버리겠지. 겁에 질린 베리는 수풀에서 새어 나오는 바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 하네스를 벗어버리고 정처 없이 뛰어가다가 돌 틈 사이에 숨어들 거야. 그러고는 작고 깊숙한 틈 안으로 기어들어가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웅크리고 있겠지. 그러면 나는 길바닥에서 엉엉 울며 베리를 찾고 또 찾아 헤매다가 결국 찾을 수 없는 베리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짖 거야. 다 큰 어른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만 하며 영영 볼 수 없게 되는 거야. 괴로워만 하며 영영 헤어지는 거야.'


 끔찍하다. 정말 아찔하다. 귀여운 강아지의 뒤태를 따라가며 나는 이토록 참혹한 결말을 상상하고는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고양이 엄마의 발소리가 유달리 거세게 들렸던지 두 고양이가 마중 나와 있었다.


뭔 일 있었냐옹?뭔 일 있었냐옹?


 '고양이 엄마, 무슨 일 있었냐옹? 왜 이렇게 단스럽냐옹? 나는 루이랑 다가 발소리에 방금 깨어났는옹.'


 "베리야, 루이야. 산책 안 해도 돼. 아니 산책하지 말아. 절대 하지 마."

 

 용하고 은근하게 고양이 엄마 동태를 살피면서 주위를 맴돌 다리를 비비다가 이쯤 하면 됐다 싶었는지 한 발짝 물러서는 고양이들. 그러고는 느긋하게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고양이들.


 분주하고 아찔했던 마음이 정리되는 순간

 한 번씩 엉뚱한 생각에 매몰되어 헤어 나오기 어려울 때가 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미뤄 짐작하고 있을 때, 생각을 끊어야 할 순간일 때, 고양이들은 은근히 다가온다. 긋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여유 있는 걸음으로.


 '잡한 거 딱 질색이라옹. 나처럼 살아보라옹.'


 커피 한 잔을 내리며 솜털보다 보드라운 루이의 등을 어루만다.


 '그래, 노력해 볼게. 느긋하게 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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