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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와 강아지, 그리고 고양이

엄마는 동물 안 좋아하지?

by 희서 Jan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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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부터 말 못 하는 동물에게 마음쓰였다. 앙증맞고 귀여운 모습에 끌렸다기보다 그들의 약함을 지켜내야 할 의무 아니 부채가 나에게라도 있는 거마냥 느껴졌. 내가 결정적으로 이 약한 것들에게 마음을 깊이 쏟게 된 계기가 있었 그것은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누가 그랬던가? 못 하게 말리면 그 마음 크기는 배가 된다.


 어릴 적 내 간절한 소원은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었다. 잠깐이었지만 이 꿈이 실현 적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일은 내 평생에 트라우마로 남겨졌다.


 키웠다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일주일의 기간, 나는 삐삐와 행복했었다. 학교를 갔다 오면 삐삐는 은 꼬리를 깜찍하게 흔들며 반겨주었고, 어디를 가든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삐삐는 잘 때도 내 옆에 꼭 붙어있었는데, 들숨과 날숨에 볼록해졌다 꺼져가는 삐삐의 배를 보며 나는 생명의 존귀함을 스스로 터득했다.


"이거 가지고 가. 그릇이야. 똘이 참 귀엽다. 잘 키울게."


 배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삐삐는 엄마에 의해 키우겠노라 의사를 밝힌 내 친구 집에 내졌다. 동물을 데려오면 건네준 사람에게 그릇을 줘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는 친구 어머니 앞에 앉아 있던 중이었다.


 '삐삐가 똘이가 됐네.'


 국민학교 3학년 가 할 수 있는 건 다른 사람 품에 안겨있는 삐삐와 눈을 마주치 하루아침에 내 강아지 삐삐가 똘이가 되었다는 사 마음이 쿵 내려앉는 거뿐이었다. 생경한 그 모습 마치 흐릿한 세상 더듬는 꿈속 같았다. 종지 그릇 하나, 과일 접시 하나, 유리컵 두 개가 담긴 봉지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 눈시울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참았던 눈물은 한순간에 터져버렸다. 눈물은 잠그는 법을 모르는 듯 흘내렸고, 그렇게 한참을 밖에서 서성이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삐삐가 없는 집은 쓸쓸하다 못해 암흑천였다


 "엄마, 아줌마가 그릇 줬어."


 "뭐, 이런 걸 줬다니?"


 어떠하든 상관없다는 목소리와 표정으로 그릇을 받아 들고는 다시 저녁밥 만들기에 여념 없는 엄마가 너무 미웠다.  마음도 몰라주는 엄마가 삐삐의 마음까지 알리는 도 없었다. 그 후로 집에서 삐삐의 흔적은 빠르게 사라졌고, 그 모습이 너무도 천연덕스러워 삐삐가 우리 집에 잠시 있었던 게 맞는지조차 소해지려 했다.


 "삐삐, 아니 똘이 잘 지내?"


 학년이 바뀌어 다른 반이 된 친구를 한동안 보지 못하다가 동네에서 만. 참을 쭈뼛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뗀 친구의 말은 내 눈과 귀를 이게 했다.


 "똘이 시골에 갔어. 3개월 지나니까 덩치가 산 지더라. 엄마가 더는 못 키우겠다고 해서 똘이는 시골 할머니 집으로 보내졌어. 걔 똥개 맞지?"


 그 얘길 듣고 있자니  해 전, 시골 큰 이모네 집에 일가친척들이 모였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 아침도 누렁이와 논두렁에서 실컷 뛰어놀고 돌아온 직후였다. 마당에선 모락모락 장작불이 타올랐고, 나는 장난스레 누렁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오늘은 뭘 먹어?"


 어른들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오늘? 오늘은 개잡는 날이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묻기도 전에 누렁이는 순식간에 어른 사내들에게 붙잡혀 몽둥이에 묶였다.


 나는 놀란 눈으로 누렁이를 바라봤다. 아까까지도 내 발밑을 졸졸 따라오던 그 강아지가,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게 꼬리를 흔들던 그 녀석이, 지금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상황을 깨달았다.


 "안 돼! 누렁이야!"


 내가 필사적으로 소리쳤지만, 이미 어른들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누렁이는 필사적으로 울부짖었고, 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작은 몸으로 뭐라도 해보려 했지만, 세상은 나보다 훨씬 크고 무거웠다.


 그날 저녁, 친척 어른들은 마당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나눠 먹었다. 평소처럼 웃고 떠드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숟가락을 들 수 없었다.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내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항상 지킬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세상은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크고 잔인할 수도 있다는 걸.


 친구로부터 내 강아지 삐삐가 몇 개월 만에 시골로 보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삐삐 누렁이 신세가 될 것만 같아 심장이 요동쳤다.


 '내 가여운 강아지. 내 사랑스러운 강아지. 삐삐야.'





 "엄마는 동물 안 좋아하지?"


 이사 간 집으로 겸사겸사 놀러 온 엄마에게 나는 물었다.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하지 않는 엄마였다. 고양이를 키우는 내가 달가워 보일 리 없다.


 "엄마도 동물 좋아해. 귀엽잖아. 베리야, 이리 와봐."



베리를 예뻐하는 친정엄마베리를 예뻐하는 친정엄마

 

 베리를 쓰다듬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낯설어 당혹스러웠다. 엄마는 모르겠지. 어릴 적, 작은 강아지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배웠던 내가, 다시 강아지를 통 생명은 결국 한 줌의 재밖에 안 되는 허무한 인생임을 깨달았다는 사실을.


 '넉넉지 않은 살림에, 제멋대로인 아빠 때문에 힘들었던 거지? 작은 생명을 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게 버거웠던 거? 엄마도 원래 동물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는데 말이야.'


 삶과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했던 엄마의 그 시절을, 내 나이 마흔이 넘어 보니 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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