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과 고양이의 같은 점 다른 점
묻는 말에 능글맞게 대답하는 아들을 향해 마음으로 한 대 쥐어박으며 말했다.
"앞으로 양말 홀랑 뒤집어놓고 세탁기에 갖다 놓으면 네 건 안 빨 거야."
요즘은 신은 양말을 세탁기에 직접 가져다 놓는 아들이다. 가끔 침대와 벽 사이에서 눅눅하게 세월을 견딘 양말이 발견되긴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애교로 봐줄 만한 수준? 문제는 양말을 항상 뒤집어 놓는다는 거다. 어떤 날은 공처럼 말린 채 나오기도 한다. 사춘기 아이들의 뇌는 수많은 뉴런과 시냅스가 세력을 뻗어나가는 시기라더니, 뒤엉킨 뇌 세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순하게 사는 게 생존전략인가? 하긴 이 험한 세상 헤쳐나가려면 자잘한 신경들은 가지치기하면서 살아야겠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사춘기 아들을 머리로는 이해해 보려고 부단히 노력해 보지만 가슴은 용광로처럼 들끓어 오른다. 부글부글.
"얘들도 늙는구나. 털에 윤기가 없어. "
오랜만에 고양이를 본 엄마는 외모가 달라졌다는 말부터 늘어놓았다. 매일 고양이와 마주하며 살고 있는 나로선 다소 황당한 말. 사람 아이처럼 정수리에서 냄새도 좀 나고 이마에 송골송골 여드름도 잡히고, 능글맞은 웃음으로 무장하여 '나 자라고 있소'라고 온몸으로 말해주는 것도 아니니 고양이의 외모로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 예전하고 그렇게 달라 보여?"
"털이 그렇게 부드럽더니 지금은 뻣뻣하잖아. 털도 좀 빠진 것 같고. 애들 움직임도 더디네."
엄마가 원래 이렇게 관찰력이 좋았던 사람이었나? 아니면 내가 무뎌진 건지. 것도 아니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며칠 전 딸이 묻던 말이 떠올랐다.
“고양이 수명은 왜 사람보다 짧아? 신은 왜 그렇게 만든 거야?”
고양이 나이 5살은 사람으로 치면 30대 중반쯤. 여전히 활동이 왕성할 나이이지만 중년의 문턱으로 조금씩 접어드는 시기이다. 누군가에겐 커리어가 찬란히 꽃피는 시기이고, 누군가에겐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듯해 불안한 시기다. 불혹을 향해 가고 있지만, 여전히 작은 미혹에도 흔들리는 30대 중반.
나의 30대는 결혼과 육아, 일로 버무려져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갔다. 나를 돌아볼 여유 한 번 없었던 시간. 그 탓에 몸도 마음도 아팠던 날들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고양이의 다섯 살이라는 나이가, 왠지 묵직하게 다가온다. 나에겐 여전히 아기 같은 녀석들이지만 몸과 마음의 변화를 거치며 서서히 중년으로 향하고 있는 고양이들.
"아들, 이건 좀 아니지 않냐?"
공처럼 말린 양말을 들여다보는 순간, 가슴 정중앙에서 치밀어 오르는 열기가 머리끝까지 번졌다. 사춘기의 두드러진 점 하나는 망각인 게 틀림없으리라.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복식으로 말을 뱉으며 이어갔다.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겠다. 양말 똑바로 벗어서 갖다 놔라."
요즘 내가 하루에 한 번씩 하는 일과가 있다. 아들 어릴 적 사진을 들춰보는 것. 현실 속 아들에게 받은 화는 사진 속 아들을 보며 조용히 풀어낸다. 그 중 오래 눈길이 머문 사진 한 장. 백일쯤 되었을 무렵일까. 엄마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울음이 터졌던 꼬꼬마 시절. 엄마가 이 아이의 모든 세계이자 우주였던 그 시절. 엄마만 보면 별빛 같은 눈을 맞추며 방긋 웃어주던 모습이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육아에 지치고, 일에 치여 쓰러질 것 같아도 그 미소 하나로 생기를 찾던 날들. 문득, 피식 웃음이 났다.
30대 중반이 된 고양이 루이는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디를 가든 따라오는 그 눈빛은 식을 줄 모른다. 그 눈빛의 정점은 내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다.
'문 닫지 마라옹. 엄마 안 보이면 슬프다옹.'
그의 처절한 몸짓에 결국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아들의 어릴 적 모습이 30대 중반이 된 루이에게서 비춰 보이니, 고양이 사람 엄마는 여전히 고양이의 우주인가 보다.
아들의 우주는 점점 나에게서 멀어져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고, 고양이의 세계는 여전히 나란 존재로 가득 채워져 있으니,
세상과 이별하는 그날까지 고양이는 아기이지 않을까?
아들은 더 넓은 세계로 보내기 위해
고양이는 엄마란 세계에 닿기 위해
그들을
더 많이 품어줘야겠다.
오늘도!
나는 엄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