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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우울증이라고요?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한다고요?

by 희서 Feb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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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료 챙겨주고 배변통 치우면 돼. 걱정 말고 다녀와."


 영역을 벗어나면 극도로 불안해하는 고양이 위 결정한 일이었다. 나와 아이들 앙마이 한 달 살이로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남편이  양육자로 고양이를 케어하기로 한 건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그대로니까. 공간도, 먹 것도, 놀 도, 옆 있 동료도.




 이 모든 게 꿈이길

 사십을 앞두고 이렇게나 아플 줄은 상상 못 했다. 눈에서 시작된 통증 머리의 신경을 짓눌렀고, 온몸으로 번져갔다. 뾰족한 병명도, 치료법도 알 수 없어 희미한 희망조차 잡을 수 없는 날들 연속이었다. 끊어질 듯 잇따르는 시간 가운데 마약성 진통제는 썩은 동아줄과 같은 존재였다. 후앙의 씨앗 줄도 모르고.


 날도 어찌어찌 잠이 들었새벽녘에 설 깨어나부터 통증이 서히 몰아쳤는, 바짝 곤두서있는  마약성 진통제 잠재워야지 다시 잠을 이룰 수 있을 다. 창밖 어슴푸레한 빛 점점 명암을 밝혀왔지만 진통제 한 알을 집어삼키고는, 세상의 그데이션 따위는 상관없다는 양 다시 잠을 청했다. 


 러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중환자실이었다. 마약성 진통제는 속을 갉아 먹었고, 수혈로도 채울 수 없는 피가 위장으로부터 줄줄 새어 나와 응급 수술 후 중환자실로 이전된 것이다. 가느다란 의식을 잡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온전한 정신은 나뿐이었다.


 "제가 왜 여기 있어요? 저 일반 병동으로 보내주세요."


 "희서 님 몸 상태는 중환자실에서 관리 관찰되어야 해요. 일반 병실로 가면 저희가 책임져드릴 수 없습니다."


 단호하면서도 다소 삼엄한 간호사의 말투내 증세가 일반적이지 않음을 각인시키는 듯하여 절망적이었다. 의식이 있다는 게 이렇게나 견디려울 줄은, 차라리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면 덜 힘들을까? 적어도 절망이란 감정이 들어오진 않았을 테니. 이 모든 게 꿈이길, 꿈에서 깨어나면 사라지는 조각들이길.

 

 그러나, 바람은 바람으로 끝났다. 퇴원 후에도 지속되는 통증은 결국 으로 전이되어 무기력한 상태로 내려앉게 . 정신과에 찾아갔던 건 그럼에도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었으므로. 처음 본 의사 앞에서 꽤 오랜 시간을 울었고, 병원 문을 나올 땐 눈 주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몸이 아파서 마음이 아팠던 건지.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팠던 건지 명확지 않은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루이 털이 눈에 띄 빠졌어. 그리고 하루종일 그루밍을 하네."


 입국을 앞두고 전해 남편의 느닷없는 이야기는 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으나, 내린 결론은 피부염이었다. 영상통화 화면에 비친 남편 얼굴은 부석거렸고, 목소리에는 피로가 묻어있었다. 밤낮 프로젝트 준비로 바쁜 상에서, 추돌사고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그다.


 " 집에 돌아가니까, 내가 루이 데리고 동물병원에 갈게."


 한 달 만에 본 루이의 모습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군데군데 털이 빠져 있으며, 가려운지 연신 긁어대는 모습이 가여워 루이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심성 피부염입니다. 최근에 충격받은 일이 있었나요?"


 "음.. 제가 한 달간 집을 비우긴 했지만.. 남편이 집에서 돌보았어요. 아, 최근에 남편이 바빠서 하루에 같이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어요."


 심리적 불안으로 인해 과도한 그루밍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루이에게 심인성 탈모가 생겼다는 의사의 진단이었다. 신경안정제와 피부약을 처방받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싸르르 켜쥐었다.


 '얼마나 아팠던 거야? 몸이 아플 정도로 그렇게나 무너졌던 거야? 하루, 이틀 쌓인 그리움이 안에서 곪아 터져 밖으로 나와버린 거야? 루이야.'


 아픈 루이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모든 건 그대라고 생각했는데. 공간도, 먹 것도, 놀 것도, 옆에 있 동료도.

 모든 건 그대로였지만 루이의 마음 그대로가 아닐 수 있는데. 내가 놓친 그것이 가장 중요한 거였는데.


몸도 마음도 구멍이 나 휑했던 그때


 마음이 아파 몸이 망가진 건지, 몸이 아파 마음이 무너진 건지 모를 시간의 경계를 지나 루이는 다시 회복되었다. 예전의 나처럼.



 누구에나 그런 시간이 있다

 나를 둘러싼 시간은 변함없이 흐르지만 나만 멈춰버린 듯한, 모든 것은 그대로지만 나만 변해버린 듯한 그런 시간.



 잘 견뎠어. 너 정말 대단해.
그 시간을 지나오다니.
너를 사랑할 자격도, 그 누구를 사랑할 자격도 너에겐 충분히 있어.

그리고
사랑받을 자격도 충분해.
그 누구에게도
너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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