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때로는 사람을 살아가게 하니까.
냄비에 김치와 생고기를 넣고 달달 볶는다. 물을 붓고 한소끔 끓어오르면, 간을 하고 깍둑썰어놓은 두부를 집어넣는다. 국그릇에 계란 4개를 깨서 준비해 둔 물과 흰자, 노른자가 잘 섞이게 저어준다. 마지막으로 간을 하고 송송 썰어 놓은 파를 넣고 끓인다.
특별한 레시피도, 값비싼 음식도 아닌 김치찌개와 계란찜은 나의 최애 음식이다. 이 음식을 먹는 날엔 어김없이 내 어린 시절이 소환된다.
"엄마, 김치찌개에 두부 꼭 넣어줘. 계란찜에는 파 송송 잊지 마."
그날도 엄마에게 신신당부하고는 들뜬 마음으로 저녁 밥상을 기다렸다.
엄마가 끓인 김치찌개는 살짝 맵지만 감칠맛이 풍부해 입안을 톡톡 자극했다. 얼얼해진 입천장은 부드러운 두부로 식혀가며 숟가락을 쉴 새 없이 입으로 퍼 날랐다. 그러다가 입술 위까지 매콤함이 번져오면 파 송송 계란찜을 크게 한술 떠서 야무지게 밥에 비벼 먹었다. 역시 파를 넣어야 계란찜의 풍미가 커지는 법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맛을 잊지 못해 엄마가 해줬던, 특별할 것 없는 레시피를 더듬어가며 김치찌개와 계란찜을 만들어본다. 보글보글 찌개가 끓어오르면 고기와 두부를 듬뿍 얹어 먹기 좋게 그릇에 담는다. 계란찜이 부풀어 오르면 생글했던 파는 소복이 숨죽여 앉아 있다가 아이들의 수저에 의해 조용히 걷어진다. 그럴 때면 나는 어린 시절의 엄마를 떠올린다.
"희서야, 밥 먹어."
엄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치찌개와 계란찜을 차려주고는 도로 방에 가서 누웠다. 어디가 아픈 건지, 불편한 건지 신경이 조금 쓰였지만 나는 식탁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김치찌개는 예전 그 맛이 아니었고, 계란찜에는 내가 좋아하는 파 송송이 없었다. 마치 김치 본연의 맛을 느껴보라는 듯이, 찌개에는 돼지고기와 두부가 없었다. 울적하게 밥을 먹으며 여전히 돌처럼 굳어버린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어떤 일이 생긴 건지 정확히 알 길은 없었지만, 엄마의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픈 날이면 나는 최애 음식의 맛을 볼 수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때로는 별것 아닌 것이 마음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원치 않는 파 송송 계란찜과 누구도 바란 적 없는 두부 듬뿍 김치찌개를 여전히 고집하는 건 어린 시절 '희서'를 보듬어주기 위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별것 아닌 것이 때로는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거니까.
언제부턴가 루이는 내 옆에 꼭 붙어 잔다. 머리를 기대거나, 궁둥이를 붙이거나, 자기 몸의 일부를 내 몸에 닿게 하며 잠이 든다. 사랑의 표현이겠거니 했다. 그 사랑이 넘치는 날엔 자기 몸을 그루밍 하다가 내 손을, 얼굴을 혀로 핥곤 하는데, 사실 고양이의 혀는 사포만큼 까끌거린다.
"아야! 루이야, 엄마 좀 아프다."
참다 참다 지나가는 소리로 투정을 내뱉으면 루이는 놀란 듯, 하던 행동을 멈추고 잠시 생각을 한다. 그러곤 최대한 아프지 않게, 조심조심 그루밍을 이어간다. 마치 오늘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보답하기라도 하는 양.
루이를 보며 때로는 작은 차이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는 것을, 그 작은 차이가 사람을 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이 고픈 날에 나는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준 두부 듬뿍 김치찌개와 파 송송 계란찜을 생각한다. 루이가 나에게 보여준 사랑처럼 작은 것이 때로는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