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어찌어찌 개강 첫날을 버텼다.
그러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그냥 학교에서 하면 안 되나?
굳이 바깥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가 뭘까?
미술은 인터넷으로도 감상할 수 있는데?
나는 시간표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수업이 아니라 고문인데?'
그때, 내 표정을 보던 그가 말했다.
"오늘 미술관 가는 날이지?"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알았어?"
그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네 얼굴이 이미 박물관 유물처럼 굳어 있어서."
"……."
사실, 나는 미술관 자체는 좋아했다.
조용한 공간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건 나름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문제는 혼자 가야 한다는 것.
몇 년 만에 다시 학교에 돌아왔는데,
친한 친구 같은 건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모르는 학생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서 있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냥 조용히 벽과 하나가 되어 있어야 하나?
이 모든 고민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그는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다.
"나도 따라갈까?"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 네가? 왜?"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냥. 네가 혼자가 아니었으면 해서."
나는 한참 그를 바라보다가,
결국 작게 중얼거렸다.
"... 그래. 같이 가자."
그렇게, 나의 외롭지 않은 미술관 견학이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각자 흩어져 그림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걸으며 작품을 바라봤다.
그는 내 옆에서 말없이 따라다녔다.
학생처럼 작품 설명을 듣는 것도 아니고,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조용히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중간중간 뒤를 돌아봤다.
그는 진짜 감상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도망치는지 감시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CCTV인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부담스럽던 공간이 조금은 편안하게 느껴졌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흩어졌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와 나란히 걸었다.
그가 물었다.
"이제 뭐 할 거야? 바로 집에 갈 거야?"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좀 걸을래."
그는 미소 지으며 내 옆에 발을 맞췄다.
"좋아. 데이트 마저하자."
나는 피식 웃었다.
"뭐? 언제부터 데이트였는데?"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네가 미술관 같이 가자고 한 순간부터?"
"……."
우리는 조용히 미술관을 나와,
햇살이 따뜻한 거리로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