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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몰래 연습하는 중

by 방구석의 이자카야

우리는 종로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길가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고,
작은 공방들과 빈티지 가구점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문득,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멋진 원목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옆에서 말했다.

"저런 거 집에 놓으면 좋겠다."


나는 흘깃 그를 쳐다봤다.

"우리 집에 저걸 어디 둬? 자리가 없잖아."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새 집을 꾸며야지."


나는 픽 웃으며 물었다.

"어디다?"


그는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우리 신혼집에."

"……."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를 쳐다봤다.


그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여전히 원목 테이블을 보고 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그래서, 우리 신혼집은 어떤 분위기야?"


그는 가구점을 훑어보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음... 오래된 미국 신혼집 느낌?"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럼 네가 원하는 건?"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예쁜 의자를 가리켰다.

"나 저런 의자 하나 갖고 싶어."


그는 따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거실엔 저 의자가 있는 거네?"


나는 가구점 앞을 지나며

가끔씩 보이는 예쁜 소품들을 가리켰다.


"이런 거 집에 두면 좋겠다."
"우리 침대는 좀 넓어야 해."
"이런 조명은 분위기가 너무 예뻐."


그는 내 말을 하나하나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집을 꾸미기 위해 거리에 나온

신혼부부가 된 것처럼.




그러다 문득,

반지 가게 앞에서 멈춰 섰다.


쇼윈도 너머로 반짝이는 반지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그냥,
별생각 없이 유리 너머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물었다.


"어떤 스타일이 좋아?"


나는 뜻밖의 질문에 당황했다.

"뭐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리 너머를 가리켰다.

"결혼반지. 어떤 스타일이 좋아?"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갑자기 그건 왜?"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냥, 나중을 위해 알아두려고."


나는 황당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너 너무 성급한 거 아니야?"


그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궁금해서. 언젠가 필요할 수도 있잖아?"


나는 한참을 그를 바라보다가,
쇼윈도 속 반지 하나를 가리키며 작게 속삭였다.


"심플한 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반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기억해 둘게."


나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장난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어쩐지 그 순간만큼은 진지하게 들렸다.


그날, 우리는 그렇게 함께 거리를 걸었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었지만,
그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괜찮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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