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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대학생, 학교에 가다.

by 방구석의 이자카야


그를 통해 심신 안정을 되찾고 있던 내게,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오랜 휴학 후 개강.


단어만 들어도 숨이 턱 막혔다.


나는 몇 년 동안 조용히 숨어 지냈다.

학교는 내게 점점 더 낯선 곳이 되었고,


사회와 단절된 삶에 익숙해질수록
캠퍼스로 돌아가는 것은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강의실로 들어가야 했다.


문제는 단순히 공부가 아니었다.


개강이란 이름을 한 거대한 재앙.

한동안 멈춰 있던 나를 억지로 사회로 끌어내는 강압적인 힘.




수업?

그건 개강의 본질이 아니다.


히키코모리 늙은 복학생에게

진짜 문제는 그 외적인 것들이다.


1. 등교할 때 사람들의 눈을 마주쳐야 한다는 점

2. 점심시간마다 ‘혼자 밥을 먹을까, 배달을 시킬까, 굶을까’ 고민하는 시간

3.출석을 부를 때, 살아 있음이 강제로 인증되는 순간.


개강은 이런 고통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잔인한 사회적 실험이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시간표를 내려다보았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내가 다시 그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




그때, 그가 조용히 물었다.

"너, 개강 날 어떻게 갈 거야?"


나는 대충 대답했다.

"몰라. 가긴 가야지."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덤덤하게 말했다.

"같이 가줄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뭐?"


그는 마치 당연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혼자 가면 힘들잖아.
그냥 나도 학교 앞까지 태워다줄게."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나는 개강 첫날을 맞이했다.




개강 날 아침


나는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걸 꼭 해야만 하나?’


익숙해야 할 등굣길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


“부르르릉——”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자,
그가 헬멧을 들고 서 있었다.


"야, 타."


나는 그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뭐야, 기사 서비스야?


그는 헬멧을 내밀며 덧붙였다.


"지금 네 상태로는 버스도 못 탈 것 같아서."


...사실이어서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헬멧을 받아들고,
천천히 오토바이에 올랐다.


그의 등에 살짝 기대자,
오토바이가 부드럽게 움직이며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좋아...이대로 학교 말고,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는 거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목적지는 철저하게 학교였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마음속에서 ‘개강 공포’가 조금씩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를 꽉 잡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학교 앞에 도착하자,

그는 헬멧을 벗으며 말했다.

"괜찮아?"


나는 깊은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덕분에 좀 나아."


그는 피식 웃으며,
가볍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다녀와. 끝나면 연락해."


나는 그의 말에 힘을 얻고,
천천히 강의실로 향했다.


그리고, 교실 문 앞에서
개강을 맞이한 동지들의 표정을 마주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가기 싫어 죽겠어..."


나는 작은 위안을 느끼며,
조용히 강의실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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