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그의 집에서 서식하기 시작했다.
한 발짝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그의 집을 나만의 방식으로 채워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필요한 것들을 메모했다.
비누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고,
그의 칫솔은 누가 봐도 교체가 시급했다.
그래서 쿠팡을 열었다.
‘뭐, 이것만 사면 되겠지.’
그런데 막상 장바구니에 하나를 담고 나니 멈출 수가 없었다.
“샴푸도 있어야겠네.
수건도 부족한 것 같고...
아, 향초 하나 있으면 방 분위기 좋아지겠지?”
눈앞에 놓인 그의 집을 상상하며
나는 생필품을 장바구니에 계속 담았다.
그렇게 시작된 쿠팡 주문은
그의 집을 작은 창고처럼 만들어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도착하는 택배 상자들.
“너 여기서 쿠팡 창고라도 열 거야?”
그가 웃으며 물었을 때,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너도 좋잖아.”
비누와 칫솔부터 시작했던 생필품은
어느새 에어프라이어, 손세정제,
그리고 이상하게 귀여운 접시 세트로 이어졌다.
‘필요할 것 같으니까. 뭐 어때?’
나는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가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아침 안 먹고 가면 하루 종일 힘들잖아.”
잔소리처럼 말하며 토스트와 따뜻한 커피를 준비했다.
그가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작은 뿌듯함을 느꼈다.
“이 정도로 잘 챙겨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걸?”
장난처럼 말했지만, 그의 피곤한 얼굴을 보며
조금 더 잘 챙겨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가 아침을 다 먹고 출근하려고 문을 나설 때,
나는 준비한 도시락과
그의 하루를 응원하는 포스트잇 메모를 건네며 말했다.
“점심 꼭 챙겨 먹어. 알겠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예쁜 눈으로 눈웃음을 지었다.
“알겠어. 너 진짜 우렁각시 같아.”
그가 출근하고 나면,
나는 자연스럽게 진짜 우렁각시 모드에 돌입했다.
텅 빈 집을 둘러보며,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렸다.
“여긴 또 왜 이렇게 어질러 놨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의 집 한구석에서 내가 정리한 흔적들이
조금씩 쌓여가는 모습을 보며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이제 그의 집은 나의 흔적들로 조금씩 바뀌어갔다.
싱크대 위에 놓인 주방 세제,
화장실 선반에 정리된 새 수건들,
그리고 방 한구석에 쌓여 있는 새로 온 쿠팡 상자들.
그는 물었다.
“너 여기 그냥 정착하려는 거지?”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아직도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내가 좀 더 있어야겠어.”
그는 한숨을 쉬며 피곤한 듯 웃었지만,
그 미소 안에 어딘가 안도감과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의 집을 나만의 방식으로 가꾸며,
그와 함께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갔다.
그렇게 그의 집은,
그와 나는 점점 서로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