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쏟아지는 소나기에 세상은 촉촉하게 물들어갔다. 가을비였다. 젖은 땅에서 올라오는 가을 낙엽의 처연한 냄새. 이 가을의 향기가 그리웠다. 비가 내리고 나면 날은 아마 더 추워지겠지. 곧 겨울이 올 테지만, 짧디 짧은 가을 내음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어 한껏 끌어안듯 들이켰다. 처마 아래로 손을 내밀어 빗줄기가 손끝을 타고 흐르는 감각을 아로새겼다.
이맘때쯤 고려는 팔관회 준비로 한창일 터였다. 내가 사라진 이후, 아버지 어머니는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그 순간, 내 곁에 스치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카이두였다. 그는 어느새 한 걸음 더 바싹 다가서고 있었다.
“비를 피하는 겁니까? 아니면, 비를 맞는 겁니까?”
손끝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빗물이 내 소매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나는 어깨까지 젖어든 소매를 내려다봤다. 아버지 어머니 생각에 잠겨 손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도 미처 느끼지 못했다. 나는 젖은 손을 다른 겨드랑이 사이에 슬쩍 끼며 답했다.
“비를 피하는 중이었습니다.”
“춥지 않습니까?”
“견딜 만합니다.”
그는 말없이 자신의 겉옷을 벗어 내 어깨에 조심스레 걸쳐주었다.
톡, 톡, 타닥타닥.
처마 끝에서 굵은 빗방울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칠 줄 모르는 빗소리는 마치 이 세상에 우리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모든 소음을 집어삼켰다. 나는 내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가까이 선 그의 존재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옷깃에서 은은한 자스민 향이 풍겨왔다.
“고려에 있을 때, 의주에 들렀습니다.”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빗소리에 묻힐 듯 위태롭게 이어졌다. 나도 모르게 숨소리마저 죽였다.
“당신이 공녀로 잡혀 온 바로 그날,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살해된 것으로 보입니다.”
짧고도 잔인한 그 한마디가 나의 심장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뒤로 휘청거렸지만, 그는 조용히 나의 어깨를 잡아 지탱해 주었다.
매일 새벽마다 아버지, 어머니의 무사 안녕을 기도드리지 않았던가. 어찌 이리 허망하게 가실 수 있단 말인가. 찢어지는 듯한 울음이 목구멍으로 뜨겁게 차올랐다. 다행히도 이곳에서 나의 울분을 토해내도 괜찮으리라. 거센 바람비는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게 만들었고, 귓가를 때리는 거친 빗소리는 나의 처절한 울음소리를 모조리 삼켜주었으니까.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 한참을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나는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으려는 듯 그의 옷자락을 필사적으로 그러쥐며 물었다.
“오라버니는요?”
그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살해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는 어딘가에 잘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안도의 눈물을 다시 쏟아냈다. 그래, 오라버니라도 어딘가에 살아 있으면 되었다. 허나 아버지, 어머니의 장례는커녕 무덤조차 만들어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왔다.
“무덤조차 만들어 드리지 못한 이 불효를,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산골짜기 집 뒤편에, 마을 사람들이 돌무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한동안 울고 나니, 거짓말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말끔하게 개었다. 하늘은 저리도 맑게 갰건만, 나의 삶은 온통 먹구름뿐이라니. 언젠가 내게도 저 하늘처럼 환한 날이 올까. 나는 아련한 의문을 품은 채, 궁 안길을 그와 나란히 걸었다.
노을빛이 번져 들며 궁궐 담장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고, 이내 모든 것을 따스한 색채로 물들였다. 빗방울을 머금은 푸른 잎사귀들은 촉촉한 윤기를 뽐냈다. 그 사이로 흙냄새 섞인 상쾌한 공기가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젖은 돌길 위로 우리의 발소리만이 잔잔하게 울렸다. 곁에 있는 그는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어주었다.
나의 처소 가까이 다다랐을 때,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 밤, 대도 저잣거리에서 중양절 잔치를 한다고 합니다. 함께 나가시겠습니까?”
“폐하의 명 없이도 이 궁을 벗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한족의 명절이라 황실에서 챙기지는 않으나, 원나라는 엄연히 한족을 통치하고 있지 않습니까? 민심을 얻기 위해 한족의 명절을 묵인하지요. 그래서 황실에서도 오늘 같은 날은 바깥출입을 모른 척 넘어가 주곤 합니다. 물론 복장은 지금처럼 예복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옷으로 변장해야겠지만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중양절 잔치를 보고 나면, 잠시나마 기분 전환이 될까 싶어서 물어보았습니다. 예전에 기우제에서 한껏 좋아하던 당신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에서 홀로 숨죽여 우는 것보다는 이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예, 그리하지요”
“유시까지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둠이 깔렸지만, 원나라의 수도 대도의 거리는 잠들지 않았다. 아니, 중양절을 맞아 오히려 더 활기찼다. 대도의 가을밤은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거리마다 걸린 등불이 하늘에서 흩뿌려진 별처럼 반짝였고, 눈길 닿는 곳마다 탐스럽게 놓인 국화 화분들이 가을 정취를 한껏 더했다. 처마 끝에 달린 국화꽃들이 흔들리자, 은은하고도 향긋한 향기가 바람결에 실려왔다.
노점들이 늘어선 저편에서는 국화꽃을 얹은 떡을 익살스럽게 써는 노인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바로 그 옆에서는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땀방울을 튀기며 씨름에 열중했다. 저잣거리는 함성과 환호로 넘실거렸다. 궁궐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자유롭고 활기 넘치는 풍경이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나를 먹구름 속에 살게 했다. 그러나 저잣거리 사람들의 활기찬 웃음소리와 온 마음을 들뜨게 하는 흥겨운 가락은 그 먹구름을 잠시나마 걷어주었다. 마침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와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카이두가 이끈 곳은 작은 주막이었다. 뜨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만두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자, 기다렸다는 듯 허기가 몰려왔다. 만두 한 입 베어 무니, 뜨거운 육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뒤이어 목을 타고 흐르는 향긋한 국화주. 시린 가을밤, 따스한 국화주 한 모금에, 궁궐에 갇혀 지내던 지난 시간이 조용히 달래지는 듯했다.
"맛있습니까?"
그는 흥미롭다는 듯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네, 맛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리 웃으십니까?”
“그냥요. 그저 웃음이 나옵니다.”
그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나도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참 싱거우십니다.”
나는 만두를 오물거리며 답했다.
“오늘 입고 있는 비단옷이 참으로 잘 어울립니다.”
그가 나를 치켜세우니, 내친김에 너스레를 더 떨어 보았다.
“제가 몽골 여인들보다 키는 좀 작아도, 몸의 비율이 좋아 옷맵시가 좀 나지 않습니까? 황실 여인들이 제 옷이 어느 비단전 소속의 장인 솜씨인지 문의가 빗발칩니다. 제가 입으면 다 예뻐 보인답니다.”
“맞습니다. 하하하”
그는 또다시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 내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지니, 내 어깨가 저절로 으쓱거렸다.
“왜 또 웃으십니까?”
“그저 좋습니다. 저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왁자지껄한 주막 한 귀퉁이에 앉아, 주변의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는 듯 서로에게만 집중하며 가을밤의 정취를 만끽했다. 따스한 등불 아래, 카이두의 크고 따뜻한 손이 나의 작은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의 손길이 닿는 순간, 왠지 모를 안정감과 편안함이 밀려들었다. 잠시 후 그의 진심 어린 목소리가 울렸다.
“제가 당신의 아버지 어머니 대신, 평생 그대의 보호자가 되어 지킬 것입니다.”
그는 낮에 내가 흘렸던 눈물이 꽤나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가 기댈 곳 없던 나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나는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평생 잊지 못할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밤일테니까.
점차 밤거리의 열기는 식어가고 있었다. 북적이던 인파도 옅어지고, 여기저기 걸렸던 등불들도 하나둘 꺼져갔다.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 궁으로 향했다. 등 뒤로는 여전히 희미한 풍악 소리가 쫓아왔으나, 이미 나의 모든 감각은 옆에 있는 그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걷는 걸음마다, 맞닿는 그의 온기는 몽글한 설렘으로 번져갔다. 말없이 오가는 시선 속에서 온전한 행복에 젖어들었다.
화려한 기방 골목을 지나던 찰나였다. 붉은 홍등이 드리운 골목길, 야릇한 속삭임과 가벼운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곳.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귓가에 파고든 비명 소리. 절규에 가까운 소름 끼치는 외침이었다. 나의 온몸을 얼어붙게 한 그 소리. 그것은 분명 고려말이었다.
"아, 안 돼!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심장이 쿵 하고 철렁 내려앉았다. 홀린 듯 소리가 새어 나오는 기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 아래,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술 취한 사내의 검은 그림자 끝에, 고려 여인이 짐짝처럼 매달린 채 질질 끌려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챈 그는 인정사정없이 여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여인의 뺨은 피투성이가 되어 갔고, 터진 입술 사이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절규만이 흘러나왔다.
"이 미천한 것이! 감히! 어디 감히 내 앞에서 눈을 똑바로 떠! 네까짓 천한 공녀 년은 죽어버려야 마땅하지!"
‘공녀.’ 그 잔인한 단어가 뇌리에 박히는 순간, 나의 온몸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심장이 다시 한번 더 바닥으로 처참하게 곤두박질쳤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저 여인의 처지가 바로 내가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황궁으로 끌려온 공녀는 운 좋게도 궁녀가 되어, 적어도 생존은 보장받았다. 허나 이곳 저잣거리 기방으로 팔려온 공녀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 짓밟히며 처참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분노와 공포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비명을 지르는 그녀의 눈빛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절망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 여인의 얼굴에서, 과거의 나의 모습, 그리고 언젠가 미래에 찾아올지도 모를 나의 모습이 보였다.
“이 년이! 죽은 척은!”
이미 기절한 듯 축 늘어진 여인을 향해 사내는 또다시 발길질을 하려 했다. 나는 주저 없이 몸을 날려 여인을 감쌌다.
“괜찮으시오?”
고려말에 여인은 피와 눈물로 잔뜩 흐려진 눈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올려다봤다.
“뭐야? 고려말을 하네? 너도 공녀인 것이냐? 좋아! 오늘 두 년 다 같이 죽어봐라!”
사내는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치려던 순간이었다. 카이두는 그 사내를 막아서며 팔을 낚아채 비틀었다. 카이두의 얼굴은 한순간에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의 손아귀에 잡힌 사내가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하며 쓰러졌다. 사내를 제압하는 그의 모습은 냉정하고 가차 없었다.
“아아악! 당신들 지금 뭐 하는 짓들이야!”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 여인을, 무슨 연유로 이리도 때리는 것이오?”
나는 몽골말로,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다잡으며 그에게 물었다.
“몽골말을 할 줄 아시오? 우리나라 사람인게요?”
“그것이 지금 중요하오?”
“당연하지! 그리고 이 천한 고려 여자가 내 손에 맞아 죽는 것이 뭐 대수요?”
“뭐라고요?”
나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오늘 운수가 좋지 않으니 화풀이 좀 했수다. 뭐 재수가 없으려니까.”
사내는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땅에 침을 탁 뱉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의 심장은 분노와 슬픔,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복잡한 감정으로 요동쳤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여인은 나의 어깨에 기대어 흐느껴 울었다. 어깨에 실린 그녀의 무게가 내 마음을 한없이 무겁게 짓눌렀다. 그녀를 부축하며 뒤를 돌아 카이두를 바라보았다. 단호한 그의 눈빛. 방금 전까지 다정하고 따뜻했던 눈빛과는 확연히 달랐다. 카이두는 나의 처소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그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 뒤,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약궤를 열어 정성스럽게 만든 약병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내일 아침, 그 여인에게 이 약을 전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차갑게 식은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많이 다쳤습니다. 이 약이 그 여인의 상처를 빨리 아물게 도울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소?”
그는 눈썹을 싸늘하게 치켜올리며 물었다.
“당신에게는 의미가 없는 일일지 몰라도 저는 해야겠습니다.”
나의 목소리에는 간절함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울분을 애써 삼켰다.
“당신은 이제 고려 여인이 아니오.”
그는 알아들으라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가 고려 여인이라 제가 돕는다 생각하십니까?”
나는 분노를 삭이며 차분하게 말했다.
“저는 그녀가 몽골 여인이었어도 도왔을 것입니다. 당신처럼 말입니다.”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내가 까막절벽에서 자신을 구했던 때를 생각하는 듯 깊은 고뇌에 빠진 얼굴이었다.
“제가 까막절벽에서 당신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미 숙영지에서 죽은 목숨이었겠지요? 제가 당신에게 참 대단한 은혜를 입었더이다.”
“화를 내는 것이오?”
“제가 감히 화를 내다니요? 미천한 고려 여인이 위대하신 원나라 장군님께, 가당치도 않는 말씀입니다.”
나의 날 선 말이 그에게 자그마한 생채기 하나 남겼을지 몰라도, 오늘 내가 목도한 잔혹한 현실은 내게 영원히 아물지 않을 깊은 흉터를 남긴 것이다.
“빈정거리는 겁니까?”
“아닙니다. 저는 그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것이 싫을 뿐입니다.”
“오늘은 이만하지요. 이 약은 전해주겠습니다.”
그는 내가 내민 약병을 받아 들더니, 굳은 표정으로 뒤돌아서 갔다.
나를 구해준 사람. 허나 동시에 고려 여인을 노리개 삼는 자들과 같은 원나라 사람이었다. 아버지, 어머니도 원나라 군에 쓰러졌다. 나의 모든 것을 그 손에 잃었음에도, 나는 그들의 세상에서 숨 쉬어야만 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경계 위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온통 아름답던 밤은 차게 식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