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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 Mar 06. 2023

그 집 짜장면

  


  ‘정통짜장 수타면’ 

   빛바랜 플랫카드가 바람에 나부낀다. 바로 저 집이다. 아버지가 단골이었던 중국집, 도시 어떤 짜장면도 그 집만 못하다던 그곳이다. 내심 참 궁금했었다. 언젠가 한 번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차였다.

  벚나무 죽 늘어선 길가에는 고운 분가루 같은 벚꽃이 흩날리고 때마침 가게에선 익숙한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그 노랫말처럼 가로수 아래 서서 벚꽃 속에 떠가는 듯 아버지의 모습을 그렸다.

   봄바람에 실려 오는 짜장냄새가 발길을 이끈다. 테이블 세 개의 작은 식당이다. 가운데 테이블에서 노부부가 때늦은 점심으로 짜장면을 드시고 있었다. 맨 안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느 한 때 한번쯤은 아버지도 이 자리에서 주문을 하셨으리라.

   생전 아버지는 매 끼니를 오직 흰쌀밥만 찾으실 만큼 밥 이외의 어떤 것은 식사대용이 될 수 없는 식성이셨다. 특이하게도 짜장면은 칠순이 다 되어서야 뒤늦게 입맛을 들이신 아버지의 색다른 메뉴였다. 읍내 병원이나 목욕탕에 다니러 오시는 날이면 부모님은 데이트코스처럼 꼭 짜장면 외식을 하시었다.

    옆 테이블 노부부의 모습에 부모님의 한때가 환영처럼 스친다. 짜장면 면발의 힘을 이기지 못하는 노쇠한 영감의 젓가락질을 할머니가 거들어 드린다. 노부부의 모습에 내가 괜히 샘이 난다. 어느 한때 살뜰했던 부모님처럼 늘그막의 정을 나누는 그 복이 부럽다. 그해 겨울 어머니도 저처럼 살갑게 아버지를 위해 짜장면의 면발을 끊어 챙겨드렸었다. 

    긴 겨울을 병실에서 보내야했던 그해 아버지는 병원 식단을 마땅치 않아 하셨다. 싱거운 찬에 성근 식단이 좋을 리가 없었다. 자식들이라도 다 모이는 날이면 한 턱 쏘시겠다는 호탕한 농으로 짜장면 배달을 시키라고 하셨다. 매콤짭짤한 것을 드시고 싶은 아버지의 속내임을 모를 리 없다. 행여 아버지 몸에 무리가 갈까 말리는 자식들의 성화에도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히터 훈기가 꽉 찬 병실은 짜장냄새로 진동을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 옆에 앉아 질기게 엉킨 짜장면을 드시기 좋게 끊어 작은 접시에 덜어 드린다. 현실적인 걱정은 제쳐두고라도 이왕 아버지도 맛있게 드셨으면 했지만 정작 몇 젓가락 드시지도 못하신다.

   “그 집 짜장면만 못하네”

고향에서 단골로 다니시던 ‘그 집 짜장면’만 못하다고 그러셨다. 다음 번엔 다른 중국집에서 배달시켜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러기를 여러 번 결국 아버지의 짜장면 타령도 한때로 지나갔다. 

   때로 삶속의 의문들이 어리석기 그지없었음을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그때는 정말 그 집 짜장면보다 맛이 못해서인가 하고 생각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그 속뜻을 알아챈 것은 한참 뒤였다. 공기 탁한 병실에서 환자의 처지로 드시는 짜장면이 어찌 맛을 논할 일이었겠는가. 이미 아버지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은데 혀끝의 입맛이 그 속이 어찌 예전 같을 수 있었으리. 

    아버지 그토록 칭찬일색이었던 그 중국집에 앉아 회상에 잠긴다. 아마 아버지는 외식을 하는 날이면 서툰 어머니를 대신해 짜장면을 엉키지 않게 잘 버무려 주셨을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면내에서 손꼽히는 멋쟁이 신사답게 가죽장지갑을 꺼내며 폼 나게 계산하셨을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날은 그렇게 몰래 아버지 자취를 찾고 싶어 떠난 길이었다. 언젠가의 아버지의 동선을 떠올리며 읍내를 뚜벅뚜벅 걸어 다녔다. 버스터미널에서 노인회관으로 문화원으로 또 단골로 다니시던 이발소로 그 짜장면 집으로. 

   짜장면 훈기에 안경이 뿌옇게 흐려진다. 그 언젠가 병실의 아버지처럼 몇 젓가락 먹지도 못한다. 까맣게 탄 내 속 같은 짜장 한 그릇을 두고 목젖이 아프도록 회한의 침만 삼켰다. 저벅저벅 무거운 발걸음으로 거닐던 그날의 기억은 비밀처럼 가슴에 남았다. 새까만 짜장맛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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