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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 Mar 06. 2023

오래된 色


    

   한 폭의 수묵화다. 산 능선 길게 병풍을 치고 반달을 닮은 초가지붕이 반쯤 걸려있다. 너른 흙마당에는 하얀 명주옷을 입은 옛사람들과 유년의 내가 엉거주춤 서있다. 어느 한때를 공유한 생의 한 순간이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 남아있다. 채색 없는 먹먹한 공간 사이로 시간의 길이 흐른다. 흑백은 운치라는 또 하나의 색이 스며있다.

   흑백사진에는 틈이 있다. 볕에 그을린 얼굴과 바랜 옷 시커먼 검정고무신도 자연스레 묻어간다. 덧대어 기운 촌스러운 소매단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흑백은 허름하고 칙칙한 것을 하나의 색으로 끌어안는다. 흑백은 사물의 빛깔 그 너머의 어떤 것이 있는 것 같다. 흑백사진에는 향수가 묻어난다. 

   언제부턴가 먼지 묻은 사진첩이 아닌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추억을 건진다. 앨범을 넘기듯 사진파일을 파노라마로 감상하며 옛 생각에 빠져든다. 지나간 것은 아름답고 그리운 것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다. 가끔은 하릴없이 칼라사진을 흑백으로 바꾸어본다. 여러 칼라가 물러난 곳에 시간의 색이 차오르는 듯하다. 아련한 정취를 자아낸다. 문득 어떤 삶도 흑백의 추억으로 걸러진다는 생각이 든다. 

   손때 묻은 것들이 남아있는 고향집은 그 자체가 흑백사진앨범이다. 산 그림자를 인 지붕아래 낮달 같이 희미한 창호지 문에는 감나무가 한 폭의 그림으로 스민다. 묵은 장맛 익어가는 장독대와 우물가 잿빛 돌확은 그 자체가 한 장의 흑백사진이다. 벽시계처럼 걸려있는 삼태기에도 처마 아래 잘 마르고 있는 시래기에도 그 여운은 흐른다. 어느 것 하나 튀는 색감이라곤 없이 전체의 공간 속에 걸림 없이 스며든다. 

   액자 속으로 들어가듯 그 흑백의 공간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간다.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집을 이루고 있는 지붕 같고 돌담 같은 어떤 존재의 무게를 느낀다. 마당에 구부정한 한 그림자가 얼른거린다. 낡은 흑백사진처럼 아버지의 모습이 어린다. 뿌연 담배연기에 땀 마를 날 없던 아버지한테는 비 오는 날의 볏짚냄새가 났다. 자식들 삶의 밑그림이 되신 아버지는 한 점 배경이 되어 그 자리에 머무르고 계신다. 빛바랜 자리에 부재의 존재감이 배어난다. 

   고향집과 부모님은 서로 다르지 않은 하나이며 경계 없는 전체이다. 한 생의 체취가 밴 집은 과거도 현재도 아닌 삶의 한 순간 순간이 있을 뿐, 생사를 넘어 삶의 향기가 있을 뿐이다. 농부의 땀이 더께가 된 괭이자루와 우두커니 앉아 산을 응시하던 툇마루에도, 하루에도 수십 번은 오갔을 마당에도 묽은 그리움이 너울댄다. 찰나와 영원, 아름답고 추한 것이 따로 없는 불이(不二)의 공간이다. 고향집에서는 어눌한 내 모습도 슬며시 녹아들어간다. 타향살이에 덕지덕지 칠해져있던 어색한 칼라가 허물처럼 벗겨지는 기분이다. 

   어느덧 인생의 가을 앞에 섰다. 아직은 보이는 빛깔에 연연하며 여전히 편견과 분별이 많다. 마음속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번 현란한 칼라의 기로에서 서성인다. 어쩌면 철이 든다는 것은 흑백사진처럼 어수룩하게 덮고 가는 인간적인 틈이 생기는 그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잊고 싶은 것보다 그리운 것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을 깨달을 때 내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느낀다. 

   어떤 삶도 시나브로 바랜다. 갖가지 사연으로 덧칠된 마음은 세월에 해감한다. 인생은 한 폭의 수묵화로 가는 여정이다. 삶은 그렇게 오래된 그리움의 색으로 무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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