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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 Mar 06. 2023

도리깨질

도리깨질      


   굿판이다. 허공을 가르는 손짓 승무의 옷자락처럼 길다. 휘-익 훅 휘-익 훅 날쌘 춤사위 작두날 바람을 몰아온다. 흥에 겨운 도리깨에 힘이 들어가면 가을의 꾹 다문 꿈이 속속들이 털려나온다. 날렵하게 바람을 할퀴어 감아 내리는 도리깨타작소리가 노곤한 햇살을 흔들어 깨운다. 

   널뛰기 한마당이다. 아버지의 도리깨장단에 어머니 응수하듯 뒤를 따른다. 훌렁훌렁 허공에 발돋움질하는 아버지의 도리깨질에 신명이 느껴진다. 가속이 붙은 도리깨질은 신들린 애동의 몸짓마냥 창공을 사뿐히 올랐다 내리기를 반복한다. 도리깻열 끝에서 가을걷이의 고단함과 설렘이 시소를 탄다. 

   도리깨질은 휘모리장단이다. 갑자기 몰아치는 도리깨 타작소리에 감나무 새떼 푸드덕 날아가고 덩달아 놀란 새끼돼지 어미 품으로 잽싸게 파고든다. 신이 난 강아지 화답하듯 짖는 통에 모이 먹던 닭 놀란 눈만 껌뻑거린다. 집 마당은 그야말로 도리깨굿판이 된다. 한 바탕 도리깨질에 들깨는 제 몸의 사리를 와르르 쏟아놓는다. 우수수 떨어지는 그 모습에 아버지의 얼굴에도 흐뭇함이 번진다. 모래성처럼 수북한 깨를 금가루나 되는 냥 조심스레 되질 해보는 어머니의 손길이 들떠있었다. 

   농사욕심은 노쇠해지는 몸과 비례하지 않는가 보다. 해가 가도 밭고랑은 좀처럼 줄지를 않았다. 그해 유난히 깻대처럼 깡마르고 시커먼 얼굴을 하고 계시던 아버지에게 땅 욕심 좀 어지간히 부리시라고 쏘아댔다. 마지막 한 톨까지 털리는 깻대처럼 삶의 사리를 모조리 쏟아내신 아버지는 이제 다시는 들녘에 나오지 못하신다.

   햇살 아래 흙먼지 일으키는 타작에 목이 탄다. 도리깨박자가 늘어난 카세트 테잎처럼 느릿느릿하다. 도리깨 짝을 잃은 어머니는 팔 힘도 잃어버렸다. 애를 쓰시지만 끊어져버리는 기타줄처럼 도리깻열이 자꾸 고꾸라진다. 힘 넘치는 자식들 다투듯이 도리깨를 들지만 노련미 없이 용만 쓰는 자식들의 도리깨타작이 어머니에겐 미덥지 못한 눈치다. 바지런한 어머니는 부지깽이만한 나무로 타작 끝낸 것들을 다시 야물게 털고 계신다. 바싹 마른 깻대가 소리만 들어도 지려오는 어머니의 무릎 뼈마디소리처럼 아프게 부스럭거린다. 

   도리깨장부의 손때조차도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도리깻열을 철사로 동여맨 자국도 아버지의 흔적이다. 낡고 갈라진 도리깨에 아버지의 오랜 고단한 가을날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말없이 속으로 삭일 줄밖에 모르는 아버지는 어떤 상념을 털어내고 어떤 알곡을 가슴 속에 남기셨을까. 지금껏 무심코 들었던 도리깨 하나에서도 추억을 더듬는다. 도리깨타작에 상념 하나씩 툭툭 터져 나온다. 빈털터리가 된 깻대는 기진맥진하도록 살아낸 빈손의 한 노구다. 다시 고사리 밭 거름이 되고 겨우내 섶이 되는 깻단에서 부모의 향기를 맡는다. 부모는 그 생 다하도록 자식들의 삶의 불쏘시개가 된다. 

   바람이 민들레를 핥아버린 듯 밭은 허허로운 공터가 된다. 도리깨질은 알곡을 거두어들이는 잔치이기도 하지만 빈 몸으로 돌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삶의 도리깨질 역시 거두는 것만이 아닌 털어내는 연습인지도 모른다. 천하를 가질 듯이 숨 가쁘게 살지만 결국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다양한 이름으로 만나고 헤어지며 인연을 도리깨질한다. 갖가지 장단으로 찾아드는 우여곡절 속에서 희로애락을 도리깨질한다. 

   아무리 손끝 매운 도리깨질로도 훑어내기 힘든 것이 있다면 그건 회한이다. 젖은 콩대처럼 질기고 마른 깻대처럼 딱딱한 그리움 응어리진 그 회한이다. 아버지 향한 어머니의 에는 그리움은 아직도 눈물로 도리깨질한다. 어쩌지 못하는 나의 참회는 차라리 무심한 세월에 도리깨질한다. 세월은 기억을 걷어가는 가장 무심한 도리깨질이다. 도리깨질은 비우는 깨달음을 얻는 가을날의 기도다. 

   가을바람 일렁이면 도리깻열 긴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그때마다 밭뙈기의 깻대가 되고 콩대가 된다. 여적 그대로인 고향의 노곤한 삶의 내음이 녹슨 정신을 깨운다. 도리깨질은 땀으로 내안의 찌꺼기를 닦아내는 살풀이다. 

   해마다 나는 가을 굿거리를 한다. 마음의 염을 한다. 도리깨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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