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안 Mar 06. 2023

촛농점

                       

   불을 켠다. 어머니의 기도가 부쳐진 촛불은 섣달그믐의 밤바다를 건너는 등대가 된다. 대문에서 뒤꼍까지 온 집안에 밝혀둔 촛불이 칠흑 같은 어둠을 녹인다. 새해로 가는 길목을 밝히느라 밤새 다 타버린 불꽃은 정초 아침 태양이 되어 떠오른다. 

   촛농점은 섣달그믐날 밤 초가 타는 촛농의 모양으로 한해 운을 점치는 하나의 세시풍속이다. 쌀을 가득 담은 그릇에 식구 수대로 양초를 하나하나 꽂아두고 밤새 잘 타도록 촛불을 지켜야 한다. 부뚜막에 두기도 하지만 바람 잔잔한 방 한 구석 상 위에 고이 두기도 한다. 섣달 그믐날밤 집은 특별히 성역 같은 공간이 된다. 조왕신에게도 초를 올린 후 이어 곳간으로 마당으로 다니시며 또 한참 손을 비빈다. 형광등 백열등을 다 밝혀둔 집은 촛불잔치에 더 환해진다. 

   새해로 가는 하나의 관문처럼 고향집에서는 해마다 촛농점을 한다. 비는 정성은 똑같다지만 초를 켜는 순서에서 어머니의 속마음을 본다. 촛농점에서도 딸은 아들에게 순위가 밀린다. 아들네 식구는 별도의 그릇에 손자손녀까지 네 개의 촛불을 켠다. 순서를 기다리던 딸들은 그제야 큰 그릇 하나에 나이순대로 줄을 세운다. 이 세상에 와 처음 이름을 불러주던 그때처럼 어머니는 초 마다에 이름을 걸어 어머니만의 주문을 왼다. 촛농점 불은 집안의 안녕을 기약하는 수호신처럼 깊은 고요 속에 타들어간다. 

   지금껏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촛농점 불꽃을 지킨 것은 어머니의 굳은 심지다. 그 옛날 찬바람 숭숭 드나드는 아궁이 부엌에서도 목욕재계 후 정갈하게 불을 밝히셨다. 눈썹 희어진다는 말에 잠 설치던 아이가 초로의 나이가 되도록 그 정성이 세월에 슬지 않았다. 자식 키우는 어머니로 애간장 졸이며 촛불처럼 삶을 태우시더니 어느덧 뭉그러진 작은 초를 닮아있다. 속절없는 세월에 육신이 슬금슬금 녹아 타내려간 초와 같이 자꾸 자꾸 작아졌다. 어머니는 평생을 빌고도 언제나 기도에 목마른 운명이다. 일생 간절한 기도로 마음을 태운 어머니는 이미 또 하나의 촛불이다. 

   그 어머니를 밝혀주는 초는 단연 아버지다. 수북이 담은 쌀에 아버지이름으로 촛불을 가장 먼저 켠다. 일생 서로에게 빛이 되어준 부부 한 쌍이 불을 밝히며 서있다. 새하얀 초와 같이 희었던 열여덟 청춘에서 머리 희도록 한 마음을 태운 인연이다. 육십년을 뜨거운 삶의 동지로 살아온 길 녹아떨어진 눈물마저 굳어서 서로를 부축하는 초석이 된다. 

   비는 정성은 똑같다지만 초를 켜는 순서에서 어머니의 속마음을 본다. 촛농점에서도 딸은 아들에게 순위가 밀린다. 아들네 식구는 별도의 그릇에 손자손녀까지 네 개의 촛불을 켠다. 순서를 기다리던 딸들은 그제야 큰 그릇 하나에 나이순대로 줄을 세운다. 이 세상에 와 처음 이름을 불러주던 그때처럼 어머니는 초 마다에 이름을 걸어 어머니만의 주문을 왼다. 심지가 타내려가는 것은 이제 초의 몫이듯 이생의 불꽃은 부모가 심어주었지만 삶은 제 몫이다.                              

   바람 한 점 없는 생이 있을 수 없듯이 바람에 떨지 않고 타는 초는 없다. 초가 타는 과정에도 삶의 섭리는 깃들어 있다. 섣달 그믐밤 해시 즈음 작은 불꽃으로 타오르기 시작한 촛불은 축시로 넘어가며 활활 피어난다. 바람 한 점 없는 평온한 시간이 길어지면 슬럼프에 빠진 인생처럼 나른하게 조는 듯 보인다. 그 순간 어디선가 바람이 일어 불꽃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일렁이는 강물의 달처럼 이지러진 촛불은 이내 잔잔해지며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한다.  

   나름 바람의 길을 피해 방 안쪽에 잘 두는데도 겨울삭풍의 잔바람은 들락거린다. 고요한 달빛처럼 곱게 잘 타는 것이 있으면 유난히 바람을 타며 흔들리는 것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묘한 조화가 흐른다. 똑같은 초를 하나의 그릇에 나란히 세워두지만 타들어가는 속도와 촛농의 모양이 각기 다르다. 한 뱃속에 나서도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운명 하나 하나를 보는 것 같다. 서로 다른 눈물을 흘리는 인생들이 보인다.

   사노라면 피할 수 없는 필연의 일들은 있기 마련이고 어떤 시련도 결국 겪을 것은 겪는 것이 인생이었다. 바람에 이는 불꽃처럼 위태로운 날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과정이다. 녹아떨어진 촛농은 초를 받치는 또 하나의 주춧돌이 되어 불꽃을 더욱 오래 타게 한다. 삶이라는 것도 온몸을 녹여버린 시련이 다시 꿈을 불태우는 또 하나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 타들어가는 촛불에 인생역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인생은 촛불처럼 그렇게 스스로 온전히 타는 일이다. 

   촛농으로 범벅이 된 초에서 낯익은 자화상 하나가 도드라진다. 아버지는 일생 어깨 무거운 가장으로 삶을 태우셨다. 노쇠해지도록 너무 많이 속을 태운 아버지는 육신마저 타버리는 줄은 모르셨나 보다. 일흔 아홉 번째 촛농점 불을 켜던 해 위태로운 촛불처럼 생명의 끈을 겨우 붙들고 계셨다. 스러질 듯이 다시 타오를 듯이 세월의 바람에 희미하게 흔들리는 아버지의 불꽃을 철없이 겁도 없이 인생의 섭리쯤으로 알았다.

   그때는 몰랐다. 미미하게나마 손끝에 전해오던 그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가느다란 불꽃같이 힘겹게 뜬 실눈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계셔도 아직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그때가 얼마나 귀한 순간이었는가를, 끝내 삶의 촛불을 다 태워버린 아버지는 촛농 한 덩이로 쌀무덤 속에 들어가시더니 다시는 나오지 않으신다. 

   해마다 켜는 촛농점 불은 곧 생명이었다. 홀로 타고 있는 어머니의 촛불이 흰 눈 덮인 무덤가에 쓸쓸히 비추는 외로운 달 같다. 아버지의 초를 더 이상 밝힐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루해를 넘어가는 것이 어쩌면 하나의 기적임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섣달그믐에서 정초로 가는 밤바다가 그저 하룻밤이 아닌 이승과 저승의 강을 건너는 그와 같은 것임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정녕 촛농점은 또 한 해를 무사히 넘어 새해를 맞이하는 감사의 기도라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섣달그믐밤 어머니는 또 촛농점 불을 밝히실 테다. 새 양초처럼 허리 꼿꼿했던 어머니 타다만 일그러진 초처럼 허리가 굽어서도 숙명을 저버리지는 못하신다. 한 톨 한 톨 인생의 숱한 사연을 닮은 쌀을 푸고 초 마다에 이름을 걸며 또 한 해의 꿈을 기약하실 테다. 아직도 못 다한 기도를 올리며 가슴 속 심지가 닳도록 언 손을 비비실 테다. 촛불정화수 앞에서 온 가족의 수호신을 부르는 한 떨기 촛불 같은 어머니의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이전 03화 도리깨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