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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 Mar 06. 2023

지게

           

   낡은 지게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다. 바람이나 머물다 가는 주인 없는 빈 의자처럼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오랜 시간 아버지의 땀에 거뭇거뭇해진 등패에는 아직 체취가 남아있는 듯하다. 지게는 아버지의 등에서 떠나지 못하는 분신 같은 것이었지만 이제는 오래된 한 물건으로 쓸쓸히 남아있다. 

   뿌옇게 쌓인 먼지가 세월의 무상함을 더한다. 무심코 먼지를 쓸어내는 사각거리는 손길이 잠든 지게를 깨우는 인기척이 된다. 옛 풍경이 부스스 눈을 비비듯 일어난다. 들에 나가실 때마다 괭이나 낫을 담은 바지게를 지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걸망 하나 짊어진 수행자처럼 헛기침 한 번 하며 가벼이 나가시던 뒷모습이 어제 일처럼 선하다. 

   지게에서 오래전 아버지의 등이 보인다. 지게 탓인지 언제나 러닝셔츠는 뒤쪽에서 먼저 구멍이 났다. 마대를 덧댄 등패가 올이 풀려 너덜거리는 것처럼 아버지는 아예 옷이 삭도록 알뜰히 입으신다. 바람의 옷을 입은 듯한 그 뒷모습은 어린 눈에도 가슴 한 구석이 짠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러닝셔츠 구멍 사이로 아버지의 힘센 등살과 좋은 세월이 조금씩 빠져나갔다. 

   허름한 모습으로 엉거주춤 땅에 가까운 낮은 삶을 사시어도 아버지라는 존재는 어렵다. 지게를 진 아버지의 등은 오를 수 없는 나무처럼 더욱 높고 멀어보였다. 어느 한 때는 그 지게처럼 등에 업히고 싶은 꿈을 꾸었다. 아버지 몰래 나보다 더 큰 지게를 지고 노는 것에 재미가 들린 것은 잠재된 동경의 표출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동생까지 꼬드겨 지게놀이를 하다 들킨 그날 철없는 그 동경은 눈물 쏙 빠지는 꾸짖음 앞에 산산이 흩어졌다.  

   아버지에게 삶의 그림자 같았던 지게가 정작 그토록 떨치고 싶었던 아픈 상징이었다는 것을 철이 든 후에야 알았다.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는 날 아침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건넨 것은 다름 아닌 지게였다. 빈농의 집 7남매의 맏이인 아버지는 중학교 책 보따리 대신 지게를 져야 했다. 어린 소년에게 그것은 맏이의 운명을 지우고 꿈을 동여맨 하나의 멍에 같은 것이었다. 결국 그 지게로 가장의 인생도 실어 날랐다. 

   지게는 아버지의 철저한 전유물이었다. 그것만은 아버지만이 할 수 있고 아버지라서 해야 하는 일쯤으로 알고 자랐다. 게을리 할 수 없는 가장 스스로의 다짐처럼 집으로 돌아올 때의 지게는 언제나 소꼴이나 볏짚으로 산더미다. 종일 들일로 지친 몸으로도 기어이 한가득 씩 걸머지고 오셨다. 일생 아버지의 등을 짓누른 수북한 지게 짐은 벗어던질 수 없는 가장의 삶의 무게처럼 내 뇌리에 남아있다. 이날까지 지게가 아버지 냄새가 묻어나는 각별한 상징물로 각인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살다보면 정체된 상징 하나가 삶 속에 녹아 그리움으로 도드라지기도 한다. 어느 한 해 드디어 지게를 지던 날이 바로 그러했다. 이태 전 가을 어머니와 둘이 늙은 호박을 따러 가는 길에 지게를 챙겨 나섰다. 해마다 늙은 호박을 지천으로 키우는 그 밭은 사방이 돌담으로 둘러쳐진 맹지다. 밭두렁에 울퉁불퉁 솟아난 돌부리에 작은 손수레조차 끌고 갈 수 없는 곳이라 농로 가에 세워둔 리어카까지 호박을 나르는 데는 단연 지게가 최고였다. 언젠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늙은 호박을 서너 개씩 져다 리어카에 나를 생각이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지게질은 생각보다 힘에 부쳤다. 고작 호박 두어 개 얹고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작대기를 짚고 일어서자니 앞으로 쏠려 꼬꾸라질 것 같고 간신히 몸은 일으켜 세워도 몇 발자국 걷기가 무섭게 또 중심이 흔들린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호박을 머리에 인다. 하는 수 없이 호박을 낑낑대며 하나씩 들어다 날랐다. 밭에서부터 가져온 아버지 생각 때문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 멀고 무거웠다.  

   지게는 헛간 귀퉁이에서 세월만 나고 있다. 이제는 이생의 은퇴를 하신 아버지처럼 제 할 일 끝난 지게다. 작대기로 괴어둔 지게가 홀로 일어서기 위한 하나의 채찍 같다. 온몸으로 스스로 짚고 일어서는 가장의 인생이 보인다. 작대기를 짚고 중심을 세워 일어서듯 홀로 마음의 푯대를 짚고 일어서야했던 아버지의 생을 본다. 

   불현듯 아버지 등에 업히고 싶었던 어린 날의 괜한 투정이 떠올라 쓴 헛웃음이 나온다.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매일 매일 아버지가 등에 진 지게가 바로 나였음을. 일생 아버지는 온 몸으로 가족의 꿈을 업고 지고 살아오셨던 거였다. 대식구의 가장으로 때로 버거웠을 무게에 휘청거리지 않으려 얼마나 정신을 부여잡고 계셨을까. 병실에서 보았던 늙은 아버지의 깡마른 등이 떠오른다. 쌀가마니 훌렁훌렁 들어 올리던 힘 꽤나 쓰던 아버지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삶의 지게에 휘어버린 앙상한 한 노인의 등줄기만 있었다. 

   산다는 것은 지게를 지고 가는 일이다. 각자의 인연과 사연을 지고 뚜벅뚜벅 먼 길을 걸어들 간다. 꿈과 번민을 엮고 엮은 삶의 등살 그 지게를 지고서들 간다. 그러나 끝끝내 인생은 빈 지게다. 일생 땀 밴 지게마저 휑하니 두고 가듯이, 한 평생의 추억도 미련도 한 조차도 두고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생이듯이. 

빈 지게에 아버지의 쓸쓸한 자화상이 있다. 허허로운 삶의 자화상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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