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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 Mar 06. 2023

헛기침

          

   헛기침은 아버지의 또 다른 언어였다. 집으로 들어오시면서 언제나 대문간에서 헛기침을 하신다. 대화 중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도 괜히 헛기침 한 번, 일하다가 한 숨 쉬어가듯 또 헛기침이다. 

   정전이 잦았던 산골오지의 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버지의 헛기침소리는 촛불 그 이상이었다. 초저녁 꿀잠이 하필 삼경에 깨어 문풍지 바람소리에도 떨고 있을 때 때마침 소피보러 일어나신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 한 번이면 진땀나던 무섬증도 금세 진정이 되었다. 아버지 헛기침 소리 하나면 되었다. 우수수 별빛 쏟아지던 한 여름 밤 아버지는 투망 던지고 어린 딸들은 고동 잡던 강가에서 강물소리에 겁이 질릴 때쯤 그 헛기침소리는 손전등 같은 안도감을 주었다.

   아버지의 헛기침은 호통 그 이상의 위엄도 있었다. 밥상머리에서 숟가락을 든 채 텔레비전에 정신이 팔렸다가도, 자매들끼리 싸우다가도 어디선가 헛기침소리가 들리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헛기침은 아버지의 또 하나의 목소리였고 백 마디 말씀보다 더 강렬한 메시지였다. 일정한 호흡과도 같았던 그 헛기침소리는 아버지의 상징이었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덩그러니 큰집에 어머니 혼자 계실 것이 아무래도 불안했다. 여태 신경 쓴 적도 없던 온 집의 창문을 다 걸어 잠갔다. 현관문도 단속했다. 마루에는 밤새 불을 밝힐 작은 보조등도 켜두었다. 그런데도 뭔가 안전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왜일까. 집이 원래 이리 넓었었나. 방 창문이 이리 컸었나. 제아무리 튼튼한 자물통도 어떤 보조등도 아버지의 헛기침만 못하다는 것을 그날 뼈저리게 느꼈다.     

   어느 날 대문간에서 들리는 헛기침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남동생이다. 아버지 헛기침소리는 아들에게 똑같이 유전되어 있었다. 아버지처럼 그 아들도 헛기침이 또 하나의 호흡이다. 집에 들어서면서 대문간에서 헛기침, 노모와 대화 중 할 말 없으면 괜히 또 헛기침, 일하다가 한 숨 쉬어가듯 또 한 번 헛기침을 한다. 뒷간에서 사용 중이라는 신호로도 똑같이 헛기침을 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 오는 날이면 아버지 계실 때처럼 세상 겁날 것 없다. 문득 문득 아버지 잠시 돌아오신 것 같아서, 그 헛기침소리 다시 들을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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