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안 Mar 06. 2023

이카루스 어머니



   글눈도 길눈도 어두운 어머니,

   아파트숲은 그 길이 그 길이고 그 집이 그 집이다. 최신식 번호키도 알 리가 없다. 한 번 나가기도 어렵지만 다시 들어오기는 더 어렵다. 그러니 바람 쏘이러나 시장에도 혼자 못 간 다. 새장에 갇힌 새가 따로 없다. 설령 날개가 있다한들 일생 땅 밟던 습때문에 갑자기 공중에 붕 떤 곳에서 살 수도 없다. 

   일찌감치 품 떠났던 아들과의 다 늦은 동거도 만만찮다. 어느새 자식 둘 거느린 가장이 되었나 괜히 조심스럽다. 어머니에게 아들의 말은 곧 호령과도 다름없는 위엄이라 더욱 그렇다. 도시 며느리는 애는 쓰지만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내 식구 된지 고작 삼년에 한 지붕 아래 한솥밥 먹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그러고 보니 이말 저말 허물없이 할 수 있는 딸 생각이 절로 난다. 그렇다고 거긴들 수월하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리 20년 넘게 얼굴보고 지냈다지만 사위는 사위다. 또 구세대 어머니에게 아들네 두고 딸네 집에 와있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 같다. 

   이집 저집 다녀보면 그래, 삶의 자취 고스란히 묻어있는 고향집 내 집이 제일 낫다 싶다. 당연한 얘기다. 맛있는 오리고기에 진수성찬 대접받아도, 귀한 손자 매일매일 볼 수 있다 해도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다. 온전한 평안이 되기엔 뭔가 2% 부족하다. 

   솔직한 말로 고향집이 싫어서이겠는가. 아버지의 체취가 아직도 가슴 아려 와서 적적함에 몸부림이 나서 차라리 집 떠나면 그 슬픔 사라질 줄 알았지. 자식들 보살핌에 손자 재롱에 묻힐 줄 알았지. 도리어 더 큰 고독만 확인한다. 

   아버지 계실 때는 아버지만 따라나서면 세상에 겁나는 게 없었다. 자식집도 아쉬울 것 없이 당당하게 다녀갔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자식들은 혼자 된 어미 마음 쓰여 더욱 극성이지만 어머니 마음이 이미 다르다. 

   이집 저집 순회하는 처량한 신세가 된 것 같기도 하고 행여 두 다리 쭉 뻗고 아주 편히 있으면 자식에게 짐 될까 괜히 눈치도 보인다. 자식들이야 아주 있으라고 성화지만 사실 꼭 그게 백 프로 진심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 말 한 마디만 들어도 위로가 되고 고맙다. 그래서 어머니다.

   찰나 찰나엔 아버지 생각도 난다. 나 혼자 더 살아선 고기 먹고 옷 얻어 입는 호강을 받나싶어 맘에 걸린다. 손자도 못보고 간 아버지가 가엾다. 시시때때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눈물 삼키며 앉아 있으려니 넋이 반은 나갔다. 멍하다. 

   텅 빈 고향집의 암담한 외로움을 생각하면 손자 봐줄 수 있는 체력이라도 되면 그 핑계라도 밀어붙여 보겠는데 싶다. 아니다. 다시 생각하면 도시생활이 겁이 난다. 그래 그건 잠시 헛된 꿈이었다. 

   실은 이제 곧 환갑인 꽃띠 안사돈이 이미 그 자리에 들어와 앉았다. 아들이 장모 복이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그 장모가 손자손녀 키워주니 고맙다. 정말 고맙다. 그런데 내심 부러운 이 마음은 뭐꼬. 금쪽같은 아들 잘 먹이고 귀하게 대해주니 눈물나게 고맙다. 그런데 내심 쓸쓸해지는 이 마음은 또 뭐꼬. 

   아버지만 믿고 살던 어머니는 뒤늦게 너무 많은 고민을 떠안게 되어 휘청휘청한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일 년 새 눈에 띄게 늙어버렸다. 언제부턴가 어머니에게서 할머니냄새가 난다. 뭘 해도 재미없단다. 맛도 없단다. 좋은 것도 모르겠단다. 모든 것이 그냥 그렇단다. 일찌감치 무심의 경지에 가버린 어머니.  

   고향집 마루에 앉아 내리는 비를 보고 있자니 아, 온 집에 아버지 아닌 것이 없었다. 비를 먼저 맞아주는 지붕처마도 아버지고 그 처마 떠받치고 있는 기둥도 아버지다. 짧은 처마에 이어서 덧댄 찌그러진 양철지붕조차도 아버지였구나. 다 아버지였다. 그 든든한 처마를 잃었으니 어머니가 저럴 수밖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처마였다. 삶의 날개를 붙들어주던 밀랍같은 존재였다. 그 처마 무너지니 어머니의 날개가 위태롭다. 아들집은 너무 높은 먼 태양 같고 딸집은 발 담그기 망설여지는 강물 같다. 

   이제 그 무엇이 다시 어머니의 밀랍이 되어줄 수 있을까. 자식들 몰래 뚝뚝 흘리는 촛농 같은 그 눈물이 모이고 모여 새 밀랍이 되어다오. 부디 그리 되어라. 

   어머니 다시 삶의 날개 달게. 

이전 10화 가을바람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