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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 Mar 06. 2023

미영솜꽃 단상



   헝클어진 흰 머리칼이다. 바람결에 한들거리는 미영꽃대가 가을 볕 아래 노곤히 조는 늙은이의 모가지 같다. 부슬부슬 하얀 솜털 토해놓고 지친 듯 고개를 떨구었다. 미영솜꽃에서 할머니냄새가 난다. 

   미영솜꽃은 온기가 있다. 아름다운 향기와 자태를 뽐내며 한철 눈 호강으로 끝나는 여느 꽃들과는 다르다. 하얀 명주옷도 되고 사람의 품과 같은 폭삭한 솜이불도 된다. 솜의 그 따스함은 곧 하나의 향기다. 몽실몽실한 미영솜꽃은 어머니의 마음이 꽃으로 피어난 걸까. 아무래도 미영솜꽃은 어머니를 닮은 꽃을 만들고 싶었던 신의 걸작인 듯 하다.

   올 겨울에도 내 방에는 미영솜꽃이 방안가득 배시시 피어난다. 이태 전 고향집에서 가져온 오래된 미영솜이불이다. 새록새록 숨을 쉬는 미영솜은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세월에도 폭삭함이 그대로다. 하얀 광목천을 손바느질로 시침해 두른 홑청이 촌스러우면서도 정겹다. 장롱에서 미영솜이불을 꺼낼 때마다 추억을 꺼내보는 기분이 든다. 미영솜처럼 메마르게 가난했지만 정 넘쳤던 우리 집의 한 시절이 담겨있다.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내게로 온 미영솜이불은 가슴 따뜻해지는 하나의 유산이다.

   미영솜이 객지생활의 한기를 녹인다. 부초처럼 떠도는 타향에서 미영솜이불은 든든한 동지다. 스산한 한파에 마음까지 추워진 날이면 엄마 품을 파고들듯 미영솜이불 속으로 스윽 들어간다. 미영솜의 폭신한 무게감은 어머니 젖가슴에 파묻혀 잠들던 그 촉감처럼 부드럽고 평안하다. 미영솜에는 어머니 숨 냄새가 묻어난다. 

   미영솜은 구름이다. 미영솜이불을 가만히 덮고 눈을 감으면 어느덧 유년의 기억으로 저만치 날아간다. 방 문고리 얼어붙는 산골 추위에도 뜨끈한 구들장에 솜이불까지 덮으면 온 몸이 엿가락처럼 스르르 녹아내렸다. 어쩌다 잠 못 드는 긴 긴 겨울 밤 무서운 이야기에 재미 들린 코흘리개 자매들은 솜이불 속에 서로 얼굴을 파묻느라 야단이다. 두꺼운 솜 때문에 진땀이 배로 났다. 어린 시절의 우애는 미영솜뭉치에 뒹굴며 두터워갔다. 

   봄이 되면 실밥 뜯어진 이불은 너덜거리고 사방 구석으로 쏠린 솜이 개구쟁이 아이들처럼 따로 따로 돌아다닌다. 콧물로 반들반들해진 거무죽죽한 홑청을 씻어 다시 일일이 바느질을 하는 것은 봄날 어머니의 몫이었다. 미영솜에서 피어났던 가슴 한 편 끈적해지는 솜사탕 같은 옛이야기다. 미영솜이불이 있어 지리산산골의 추위도 모르고 자랐다. 

   산 능선에서 하늘이 조금씩 높아가면 흐느적거리는 꽃잎이 서서히 오므라들고 흰 솜이 툭툭 터져 나왔다. 늦가을 너른 강변에 얼추 익은 것들을 통째로 뽑아 널어두고 마저 입 벌어지기를 기다린다. 뭉게구름이 내려앉은 듯 강가에 솜이 하얗게 깔리면 온 식구 출동을 한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면 씨아보다 사람손이 빨랐다. 잘 마른 미영꼬투리가 조개껍데기처럼 딱딱하다. 일일이 솜을 훑어내자면 손가락 따끔거리기는 예사다. 꼬투리에 찔리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마른버짐 허옇게 핀 내 얼굴은 지루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늦가을 미영 따던 그날의 마지막 기억은 고단하게 남아있다. 나른하게 찾아드는 졸음에 목구멍까지 차오른 서글픔을 참지 못한 철부지는 이불 살 돈이 없냐고 쏘아댔다. 손가락 끝을 찌르던 미영꼬투리처럼 열세 살 어린 자식의 당돌한 투정이 어머니 가슴을 얼마나 따끔하게 했을까. 꼭 이불을 살 수 없어서라기보다 그 시절의 가난은 숨길 수 없는 어머니의 난처한 표정처럼 삶 곳곳에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미영밭은 오롯한 모정의 밭이었다. 나일론 이불 등장으로 미영농사가 거의 사라지던 때 어머니는 큰딸 혼수를 위해 미영을 일부러 심으셨다. 구름처럼 붕 뜬 미영솜을 꾹꾹 눌러 담고 읍내 솜틀집으로 향하던 어머니의 발걸음은 들떠 있었다. 두 채를 나누고도 남을 만큼 유난히 두툼하던 이불솜에서 어머니의 마음을 보았다. 보송보송한 이불솜에 빳빳한 광목홑청을 말없이 시치시던 어머니는 한 땀 한 땀에 얼마나 많은 기도를 실었을까. 이제 그 딸이 다시 미영솜이불을 장만해야하는 세월이 되었다. 

   미영솜꽃 구경도 힘들어진 시대에 살다보니 미영솜이불의 인기가 예전만은 못하다. 가볍고더 실용적인 다른 것들에 순위가 밀린 지 오래지만 그 진가를 아는 사람은 계속 찾게 된다. 얇고 가벼운 나일론이불은 날리는 느낌이 있어 자꾸 뜨는데다 솜이 부실한 경우가 더러 있다. 한겨울 외풍을 잘 막아주는 데는 지긋이 눌러주는 미영솜 만한 것이 없다. 더욱이 솜틀집에서 한 번씩 새로 타기만하면 두고두고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미영솜은 꽃이었을 때처럼 언제나 숨을 쉰다.

   미영솜꽃처럼 살아오신 어머니는 정작 지금은 가벼운 나일론 이불을 고집하신다. 무거운 미영솜이 관절염에 저리는 다리로는 몸부림도 버겁다 하신다. 세월에 노쇠해진 어머니가 미영솜보다 더 가벼워진 탓도 있다. 정녕 살포시 눌러주던 포근함이 외로움을 짓누르는 무게로 느껴지는 까닭은 아버지의 빈자리 때문일 게다. 물론 이불에 밴 아버지의 체취 때문이기도 하리라. 기어이 미영솜 무겁다고 하심은 그 솜처럼 따뜻했던 아버지의 정이 그리운 어머니의 아픈 투정이다. 

   아직도 꿈같은 일이긴 하다. 미영솜꽃처럼 하얀 이 드러내며 환하게 웃으시던 아버지가 흰 구름처럼 두둥실 떠나가신 것이. 그때부터다. 미영솜꽃에서 할머니 냄새를 느낀 것은. 참 심심하게 생긴 미영솜꽃에서 빗질도 성가신 덥수룩한 머리가 연상된 것도, 무료하고 건조한 늙은 어머니의 여생이 연상된 것도 바로 그때부터다. 혼자되신 후부터 푸석한 솜처럼 눈에 띄게 생기가 없어진 어머니의 표정이 그 옛날 미영꼬투리처럼 내 가슴을 찌른다. 

   미영솜꽃은 한 몸으로 생을 거듭한다. 세월의 때가 탄 솜은 전생의 먼지를 훌훌 날리고 다시 풍성한 새 솜으로 부풀어 오른다. 환생할 때마다 어미의 본능으로 피어나 그 솜 해지고 뭉쳐지도록 삶의 한기를 막는 바람막이가 된다. 세세생생 온기를 베푸는 어머니의 업처럼, 궂은 눈물 삼킬 줄 밖에 모르는 어머니의 숙명처럼. 

   미영솜꽃에서 따스한 향기가 난다. 살냄새가 난다. 어머니의 삶의 냄새가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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