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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 Mar 06. 2023

가을바람은

          

   촌스러운 듯 수수하다. 손끝에 닿는 거친 촉감이 순박하다. 자연이 빚어준 색에서 더 이상 꾸밀 것도 없는 그 자체가 옛 멋이 있다. 추수 끝난 들녘 안개처럼 깔린 가을날의 냄새에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유년의 기억 때문인지 짚 냄새에서 본능처럼 고향정취 같은 푸근함을 느낀다.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의 고요를 흔들고 까끄라기 뿌옇게 흩날리는 목마른 냄새가 온몸에 감긴다. 벼 가마니가 늘어난 만큼 짚단은 산더미가 된다. 볏가리를 쌓기 위해 논 한 귀퉁이로 들어 옮기느라 따가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내 키를 넘는 짚더미 위로 올라선 아버지 쪽으로 짚단을 훌렁 훌렁 던지면 까칠한 짚 냄새에 취하는 듯했다.

   짚은 온기가 있다. 비바람에 볏짚의 까칠함이 한풀 꺾이면 눅눅하면서도 따뜻한 냄새를 풍겼다. 찬바람을 피해 짚에 얼굴을 파묻으면 나를 감싸는 듯 어떤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여물 냄새도 거기 있고 곳간 냄새도 언뜻 있는 것이 분명 아버지 옷에서 맡았던 냄새도 있었다. 사시사철 논밭에서 옮아온 농작물냄새에 땀이 얼룩진 아버지의 체취는 무언가 오래된 것들의 냄새를 품고 있었다. 

   이삭을 떨어내며 덤으로 남겨진 것 같지만 짚은 그 자체로 오롯한 존재의 몫을 한다. 지붕이 되고 덕석이 되고 가마니, 망태기가 된다. 긴긴 겨울 한가한 틈을 타 아버지는 물 먹인 짚을 탈탈 털어 마당에서 새끼 꼬는 작업을 하시곤 했다. 짚을 가지런히 빗어 내린 후 몇 가닥 씩 추려 슥슥 꼬면 마술을 부린 듯 새끼줄이 엿가락처럼 길게 이어졌다. 그 시절 젊은 아버지는 긴 코바늘로 새끼줄과 짚을 엮어 가마니를 짜기도 하셨다. 

   짚 한 오라기 한 오라기가 모여 꼬이고 엮이면서 더욱 질기고 탄탄한 것으로 거듭난다. 어쩌면 인연의 섭리도 그러한 것 같다. 지푸라기처럼 여리고 약한 존재가 부부의 연으로 만나 부모라는 끈끈한 힘 하나를 만들어간다. 삶의 우여곡절에 정은 더욱 촘촘히 짜이며 견고한 사이로 엮인다. 가끔은 헤어나고 싶어 안달을 부리기도 하지만 다시 한 번 심지를 견고히 다지는 힘은 어쩌면 모진 연민이다. 물기를 머금은 짚처럼 살아가는 일도 시름에 젖으면서 연민이 깊어가는 것 같다. 젖는다는 것은 무거워지는 일이다. 거센 물살을 버티게 하는 등에 진 짐처럼 삶의 무게는 인생의 강을 건너는 힘이 되기도 한다. 

   가을걷이 풍경 속에 시끌벅적한 사람소리 사라진 지 오래다. 요즘 들판은 각종 대형 농기계의 독무대다. 편리한 농기계로 단숨에 일을 끝내는 것이 신통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옛 풍경이 아련히 떠오른다. 서로 품앗이를 삼아 타작하던 날 까끄라기 묻은 농부의 얼굴에는 고된 웃음이 스치고 새참을 이고 가는 어머니를 따르는 내 발걸음엔 흥이 실렸다. 논두렁 밭두렁 타고 오는 실바람 따라 시나브로 유년의 정서는 여물었다.

   멍석 위에 말리는 벼를 맨발로 휘저어 가면 발을 간질이는 듯한 촉감에 깔깔댔다. 어머니의 고무래질은 평평한 밭이랑을 만들지만 내 발길 끝에는 구불구불 물결이 너울댄다. 미로처럼 연결된 하나의 길이 되기도 한다. 웬만큼 마른 것은 가마니에 퍼 담고 또 다시 벼를 멍석에 부었다. 가을날은 콩 타작이 끝나도록 마당에서 멍석이 걷힐 날이 없었다.

   너른 마당이 된 논을 쉬엄쉬엄 걸으며 가을의 여운을 주워 담았다. 아직 뻣뻣한 벼 밑둥에 은근 발바닥이 아렸다. 어린 내 눈에는 그저 쭉정이 같았지만 농부에게는 이삭 하나가 한 방울의 땀이었다. 무거운 가마니를 버쩍 등에 져 나르던 아버지도 얌전한 아낙처럼 허리를 숙이신다. 어머니는 바람결을 따라 키질을 한다. 늘어진 햇살에 그림자마저 노곤하다. 아버지가 등에 진 것도 어머니가 키질에 들어 올린 것도 생의 무게였다. 

   지푸라기 널린 들녘을 휘감은 것은 삶의 내음이었다. 야문 손끝으로 땅을 일구듯 자식을 건사하는 가난한 농부의 목 타는 숨 냄새였다. 한 점 남김없이 땅의 거름이 되는 짚처럼 자식들의 밑거름이 되려는 마음이었다. 흙빛을 닮아가는 촌로의 낯빛에도, 풀물마저 퇴색한 아버지의 우중충한 일복에도 그 마음은 스며있었다.

   폭우가 내리던 날 도롱이를 걸친 채 삽을 들고 나가시던 아버지의 종종걸음이 떠오른다. 논 물꼬를 보고 오신 아버지는 축축한 도롱이 속에서 더 작아보였다. 고된 투병에 진 빠진 아버지의 등도 그랬다. 병실에서 오랫동안 감지 못한 아버지의 머리는 삐쭉빼쭉 해진 짚 끄트머리처럼 거칠었다. 비에 젖은 짚처럼 쿰쿰하고 눅눅했다. 삶의 알곡을 모두 훑어낸 아버지의 체취는 그대로 짚냄새였다. 

   다시 들녘으로 돌아가는 짚의 순리처럼 누구나 섭리대로 돌아가는 거 그거 인생이다. 짚처럼 살다 한 오라기 지푸라기로 가는 거 그거 인생이다. 가을바람은 어디선가 짚 냄새를 실어온다. 지푸라기처럼 가벼워진 생의 끝자락 냄새를 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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