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태어나 자라고 줄곧 서울에서 생활했던 나는 가끔씩 이런 질문을 받는다. “도시에서 살다가 왜 귀촌을 결심했나요?”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시골의 맑고 깊은 공기와 아름다운 경치는 나의 오랜 로망이었습니다.”
사실 교육이나 문화적인 환경을 따지자면 아직까지도 농어촌이 도시보다 나은 곳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또한 낭만적인 ‘귀촌’과 ‘귀농’에 대한 ‘이상’과 현장에서 부딪치는 ‘현실’은 차이가 많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접해보지 않은 환경에서 살게 되면서 겪게 되는 괴리감 때문에 귀촌생활을 비교적 빨리 접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어땠을까? 성년이 되어 줄곧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언젠가는 농촌은 아니더라도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었다. 내가 심리학을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잠재의식 저변에 청소년기에 행복했던 단독주택 생활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파트는 사실 너른 평수에 산다고 해도 답답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음 편하다기 보다도 뭐랄까 일단 조심스럽다. 층간소음도 조심해야 하고 주차도 좁은 사각실선 안에 정확하게 집어넣어야 하고 분리수거도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조심스럽고 여러 가지를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농촌의 전원주택 단지 안에서 살게 된다면 이중 한 두 가지의 제약은 있을 수 있겠다.
막연했던 단독주택에서의 삶이 조금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온 것은 등산을 즐겨하던 내가 전국 각지의 산들을 등산하고 난 결과이기도 하다.
내 인생의 반은 등산의 역사였다고 할 수도 있다. 학업과 생업 때문에 전문적인 산악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등산은 나의 생활 중 일부였다.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시 종로구 하고도 사직동이었는데 초등학교가 인왕산 자락에 있어서 비교적 산과 가까웠다. 학교 가는 길에 국궁터도 있고 하교 후 산에서 병정놀이를 하기도 했다.
성년이 되어 전국의 국립공원은 물론이고 유명한 명산은 거의 다 섭렵하였고 장년이 되어서는 735km에 달하는 백두대간을 남진과 북진 두 번에 걸쳐 완주했다.
등산을 하면서 생각한 나의 행복한 삶은 산자락 경치 좋은 곳에 방 한 칸짜리 오두막을 한 채 얻어 마당에 대추나무를 심고 반려견과 같이 사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습은 ‘나는 자연인이다’에 가까웠지 않나 싶다. 나는 정년퇴직은 하지 못했고 마지막 직장생활을 공공기관에서 마무리하는 정말 뜻깊고 감사한 시절을 보냈다. 퇴직 후에는 자서전 작가로 일명 고스트 라이터 일을 했다.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 유령작가 흔히 말하는 대필작가(代筆作家) 일을 1년여 동안 했다. 유명인 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사의 일생을 글로 옮겨 책으로 엮어주는 일이다.
퇴직 후의 일거리로는 할만한 일이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집필을 하면 되는 일이었고 주말은 철저히 쉴 수 있는 데다가 노동강도도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필자료를 찾기 위해서 도서관을 찾는 경우가 많았고 집필 또한 주로 도서관에서 이루어졌다.
오랜 작업 끝에 책이 출간되어도 내 이름은 책 어디에도 찾을 수 없고 출판기념회에서도 내 이름은 철저히 숨겨야 한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답답했다. 아마도 그런 것이 고스트 라이터, 대필작가의 숙명이 되겠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남의 삶을 살 것인가?"
"단 하루를 살더라도 나의 삶을 살고 싶다."
"무엇보다 공기가 맑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싶다.
"나는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
나는 마음속으로 절규했고 그러다가 알게 된 것이 펜션이라는 것이었다.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여러 가지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지인으로부터 펜션사업을 하게 되면 전원생활을 하면서도 생활비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다는 말을 들었고 그렇게 6개월 동안이나 전국의 펜션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마침내 내가 원하는 펜션을 찾게 되었고 과감하게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한 가지 문제라면 그 펜션이라는 것의 규모가 너무 컸던 것이었다. 평생 사무직만 해온 내가 대지 1,500여 평에 건물 10동을 관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사업초기 같이 일하게 된 분들의 도움 덕에 무난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특히 예약업무는 물론 고객상담과 펜션관리까지 맡아주었던 K실장은 정말 내 일처럼 열심히 일해주었고 Y과장 또한 펜션업무를 성실하고도 착실하게 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분들이고 또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한번 같이 일해 보고도 싶다.
펜션사업은 3년간 운영했다. 펜션을 운영하면서 있었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밝힐 예정이다. 펜션을 하면서 즐겁고 좋았던 기억이 많지만 반대로 기분이 상하고 상처받는 일도 있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만 3년이 되었을 때 한 번쯤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지금은 잠시 사업을 접고 휴식 중이다. 앞으로 계속 사업을 할지 그렇지 않을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으나 한 가지 만은 확실하다. 나는 이곳에서 전원생활을 계속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전원생활에는 도시생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행복이 내재되어 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이른 아침의 주변풍경, 멀리서 닭 우는 소리, 화목난로에서 나무를 태워서 굴뚝을 통해 피어나는 연기와 은은히 퍼지는 그 냄새. 마치 히말라야의 아침과도 같은 고요함. 깊고 어둡고 고요한 밤 와인 한 잔을 앞에 놓고 빠지는 물아일체의 순간. 이런 것들이 나를 정신없이 행복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