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 무계획 정원사의 대충 가드닝 라이프!
고양이는 정원에서 가장 중요한 손님이다.
그들은 정원의 평화와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0. 똑똑똑. 어느 빵냥이의 초대장.
안녕하시냥. 난 이 동네 대장고양이다냥. 이곳은 내 놀이터였는데 일 년 반 전 웬 인간들이 이사를 오더니 한동안 조용하다가 하루는 흙을 막 뿌리고, 하루는 화분에 있던 나무들을 싹 뽑아 심지 뭐냥? 어이쿠. 놀랐다냥! 여긴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쯤엔 예쁜 정원이었다고 들었다냥. 하지만 10년 동안 주인이 세 번 바뀔 동안ㅡ인간들 말로는 전세집이라ㅡ 아무도 정원으로 나오지 않았다냥. 흙 한번 뒹굴기도 사람들은 너무 바쁘거든. 그래서 내 놀이터가 됐다냥. 몸을 숨기기도 좋고 말이지. 야아옹.
사실 밥 주는 데는 따로 두 군데나 있고ㅡ엣헴, 내 빵 같은 몸매 비결이지, 훗훗! 여기는 그냥 쉬는 인간들 말로는 커피숍 같은 곳이다냥! 그런데, 이번 인간들은 평소랑 달랐다냥. 뚝딱뚝딱 계속 시끄럽게 굴더니, 웬 여자인간이 맨날 와서 풀도 뽑고 쓰레기도 싹 버리더니 잡초밭을 정원으로 바꿔놓았지 모냥. 잡초놀이터 때도 좋았는데 싹 치우니 반질반질한 돌 위에 누워 햇볕에 노릇노릇 식빵굽기 참 좋아졌다냥. 그래서 비 올 때 더울 때 맨날 놀러온다냥. 난 길고양이지만 가끔 물 마시러 오는 곳이 됐다냥. 여자인간은 <집사 3번>으로 이름지어줬다냥. <1번>이랑 <2번>은 밥을 주지만 여긴 물만 준다냥. 흐음냥. 어쨌거나 이번에 3번이 여기에 대한 글을 쓴다길래 내가 특별히 “추천사”라는 걸 써줬다냥. <3번 집사>는 규칙은 없다냥. 종일 나올 때도 있고 아예 일주일 동안 안 나올 때도 있다냥. 나처럼 아무것도 안하고 멍하니 풀만 볼 때도 있고, 주로 못먹을거만 사와서 아무데다 내키는 대로 여기저기 심기만 한다냥. 아! 일 년째 울타리도 아직 안했다냥. 냐으아농. 하암. 암튼 여기로 종종 놀러오셔라냥. 끗.
정원을 가꾸는 사람은,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
1. 뜻밖의 여정: 나의 세 번째 정원
이 정원은 10년 동안 방치되어 온 고양이들의 놀이터였습니다. 이곳은 저의 세 번째 정원이자, 첫 야외정원입니다. 아이가 먼저 동네학교로 전학을 오고, 이사는 여름방학에 하기로 했습니다. 이전 동네에서 차로 20분 거리를 달려 9시 40분에 등교해서 2시간 남짓 지나면 아이는 11시 40분에 하교했습니다. 차로 오고 가는 시간이 아까워 그 시간에 이사갈 집 마당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인테리어 예산이 정원까지 만들기에는 모자랐거든요. 손수 묵은 쓰레기를 치우고 잡초를 뽑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이사였기에, 없는 돈 알뜰하게 탈탈 털어 구축 집을 고쳤기에 정원은 오롯이 제 두 손으로 가꾸게 됐지요. 손톱밑에 낀 흙과 억센 잡초를 잘라내느라 손엔 물집이 잡혔지만, 그 안에서 전 진정한 기쁨과 성취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첫 브런치북 연재로 아이이야기도 명상이야기도 아닌 정원이야기를 택했습니다.
3평 남짓한 작은 땅에서 정원사는 매일매일 정원은 저만 알 수 있는 변화의 순간들을 만끽합니다. 매일 1% 예뻐지는 정원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제가 들려드릴게요! 정원에는 동네 터줏대감 고양이도 놀러 오고, 고양이 보다 더 고양이 같은 아이가 살고 있어요. 때때로 작은 새가 놀러 오고, 땅을 파면 굼벵이가 꿈틀거려요. 작년에 화분에서 옮겨 심은 모종은 하얀 꽃을 올 가을에 피워냈어요. 울타리 너머 공터의 나무에는 오디 열매가 열리고 벚나무가 만개합니다. 눈이 오면 정원은 금세 크리스마스 파티 분위기가 되지요. 이곳에는 지난 10년간의 아파트 고층 베란다정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아파트 1층 정원이지만, 산책과 정원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 뜻밖의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할게요.
(참! 뚱냥씨! 전 무계획은 아닙니다. 그냥 큰 계획만 있을 뿐이라고요오오. 뚱냥씨도 종종 놀러와주실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