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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정원사 Dec 05. 2024

매일 1%씩 예뻐지는 정원을 아시나요? (하)

INTP 정원사의 무계획 정원정착기

정원사는 땅 위에 꿈을 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을 현실로 바꾼다

드디어 이사가 끝났다.


3. 계획은 없지만, 조금씩 이뻐진답니다.


장마가 끝날 무렵, 뜨거운 여름이 시작될 때 우리는 드디어 정식으로 이 정원을 소유하게 되었다. 장마가 지나니 잡초는 다시 무성해졌다. 그러나 새로 난 여린 잡초들이었기에 무더운 여름날도 하루 10분, 20분이면 말끔해질 수 있었다. 뜨거운 여름, 아침이면 물도 줄 겸 매일 나가 다듬었다. 집안에서는 여름내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집 밖은 오로지 나의 몫이었기에 오히려 평화로웠다. 손끝이 갈색으로 그을릴 무렵 탈 가을이 되었다. 짧은 가을은 정원사에겐 또 하나의 봄이라 할 수 있다. 기쁘다.



파란 하늘의 날씨만큼이나 반가운 가을이 왔기에, 흥이 올라 베란다에서 크던 식물들을 모두 내놓았다. 하늘과 가까운 고층의 베란다 온실에 자라던 식물들이 드디어 날 것의 땅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는 식물과 정원사에게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주로 침엽수들을 많이 키웠는데, 원래는 노지월동이 가능한 나무들이다. 본래 땅으로 가야 할 나무들인 셈.  휴케라, 향소국 등 노지에서 자라는 다년초 식물들도 화분에서 모두 꺼내 심었다.



기존의 데크는 이미 없었다. 그리고 그 아래의 딱딱한 땅이 맨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뭔가 큰 공사를 하기엔 가진 건 고작 두 손뿐. 그래서 그 둘레를 가져온 나무들을 차례로 심었다. 삽으로 구덩이를 팔 때는 아이아빠가 도움을 주었다. 막상 심고 나니 화분에 있었을 땐 제법 커 보이던 식물이 왜 이렇게 앙상해 보이나 싶었다.



"블루아이스, 썰프레아, 문그로우, 블루애로우, 블루바드, (중략) 모두모두 잘 크거라."


마법의 주문은 아니지만 정원사에게는 기도와 같은 말들. 곱게 온실에서 자라던 식물들을 땅에 심으며, 부디 겨우내 잘 크기만을 바랬다. 인팁 정원사에게 치밀한 계획은 없다. 그저 애정하는 순서대로, 집에 온 차례대로, 각각의 생육환경에 따라 나름의 규칙을 갖고 심는다. 침엽수는 젤 좋아해서 거실에서 잘 보이는 곳에 심었다. 남천나무와 원래 옆에 있던 주목 사이엔 블루버드가 자리했다. 그 사이사이에 휴케라를 심으니 꽤나 만족스럽다. 언젠가 꿈꾸었던 나만의 정원의 한켠의 모습을 우리 집 마당에 심었단 말이지.



인터넷으로 주문한 뉴페이스도 한 켠에 자리하였다. 찔레꽃이 분홍색 웨딩찔레, 하얀색 덩굴찔레, 빨강색 벨벳찔레. 문제는 사고 나서야 어디를 심을지를 궁리했다는 점. 그저 인연 닿는데로 땅을 심었다. 심은 아이들이 겨우내 잘 뿌리내길, 그래서 잘 크길 바라는 마음으로 심고 봄을 기다렸다.






겨울내, 다시 봄을 기다린다.



  "정원사는 땅을 사랑하고,
그 땅이 그를 돌본다."
- George Washington Carver -


4. 자연은 가장 위대한 정원사이다, 난 그저 거들뿐.


긴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진정한 봄이 왔다. 작년에 심었던 찔레들이 꽃망울을 떠뜨린다. 꽃보다 더 예쁜 새순이 침엽수마다 돋아있다. 매해 돋는 새순이 반가운 이유는 나무들이 겨우내 잘 적응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봄은 정원이 본래 갖고 있던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이 정원과 여름, 가을, 겨울을 지냈지만 봄은 처음이다.  들뜬 마음에 목마가렛을 사오고  시장에 가서  채송화도 샀다. 마치 가벼운 나들이를 하든 눈에 들어오는 화분을 1-2개씩 사 온다. 사 오고 나서야 ' 아, 어디에 심지?'하며 고심하면서 모종을 이리저리 옮겨본다.



봄이 되니, 심지 않았던 꽃들도 몰랐던 꽃을이 함께 피어난다. 지난 봄에는 잡초 안에서 홀로 피고 지었을 양귀비. 봄 여름내 흐드러지게 내내 피었다. 아, 자연이 진정 멋진 정원사구나, 그저 난 거들뿐. 열심히 잡초라도 정리해야겠다. 봄 여름내 매일 잡초를 거두며, 정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마음이 심난할 때 20여분 잡초를 거두고 노동이 주는 땀을 흘리고 나면 마음이 가라앉았다. 결코 쉽지 않은 일년을 보내며, 정원의 돌봄을 받았다. 늦은 오후의 햇살에 부서지는 연보랏빛꽃이 미소를 지어주었다. “괜찮아!“






데크가 있던 자리에는 틈틈히 자갈도 깔고 경계석을 놓았다. 한 포대씩 손으로 옮겨가며 느릿느릿 정원을 바꿔나갔다. 울타리는 고민하다가 아직 하지 않았다. 아이는 정원에 나가 깔아놓은 흙을 만지다가 아파트 산책길로 산책을 한다. 울타리를 하지 않았기에 아파트 나무 사이의 잔디밭도 마치 내것 처럼 느껴졌다. 3평의 아파트 일층정원이었지만, 아이 손을 잡고 걷는 순간 우리의 발이 닿는 곳이 곧 정원이 되는 느낌. 작은 세계가 넓어지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마치 부자가 된거처럼.



그렇게 봄 여름 가을이 지나 다시 겨울이 왔다. 야외의 정원 가꾸기는 결코 순탄하지 않다. 폭염에 녹아버린 모종도 있었고, 긴 장마에 찔레에는 벌레가 꼬여 모두 잘라내기도 했다. 매일매일 모기뜯기며 잡초도 손질하고 가지치기도 해야 한다.


정원에서 나는 아이와 함께 흙냄새를 맡고, 풀을 바라보고, 심지않은 꽃들을 만나기도 했다. 아, 인생이 정원이라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비록 계획대로 되지 않지만, 그러기에 기쁨을 줄 수 있는 매력. 인생을 담은 이야기가 정원 안에 있다. 그 이야기는 때때로 작은 꽃이 들려주기도 하고, 정원에 놀러온 고양이가 말하기도 한다. 조금씩 조금씩 그 이야기를 이곳에서 나눌 수 있음, 내 안의 평안도 함께 나눌 수 있겠지.


우리집의 꼬마가드너입니다.



예고편_

지금까지 정원의 정착기를 나누었다면 다음편에선 정원의 작은 꽃들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해요. 한번에 다 나누지 못하지만 조금씩 들려주세요. 참, 다음주엔 오랜만에 뚱냥이 이야기도 함께 나눌게요!


힘든 시대지만, 연재는 지키려구요. 일상을 지키듯. 약속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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