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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정원사 Dec 19. 2024

꼬마가드너는 고양이로소이다

고양이 똥을 밟았으니, 로또나 살까요?

‘으악! 이게 무슨 냄새야!!!!'

최근 작약꽃 씨앗을 채방한날이었다. 두 손에 씨앗을 꼭 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햇볕에 요요히 걸어오는데 뚫어져라 시선이 느껴진다. (표지사진 참고) 앗 어느새 빵냥이가 홀쭉해졌다. 여전히 매끈한 몸매지만, 겨울이라 그러니 조금 날씬해 보이는 뚱냥이. 고양이 다운 자세로 신난 나를 주시한다. 그래그래, 다음 연재 글엔 꼭 써주마! 하며 얼른 글을 쓸 욕심에 집에 들르지 않고 앞마당 정원으로 바로 향했다. 그런데 작약씨를 대충 호미로 파서 묻는데 어디서 거름냄새가 나는 거 아닌가? 응? 뭐지 어디서 나는 거지? 어디 멀리서 거름주나? 싶어서 마저 심고 나가는데 냄새가 따라다는 거 같다. 악! 운동화 왼발에 질펀히 밟혀 있는 그것. 그래, 이것은 매우 향기로운 뚱냥이의 복수였다. 이번 연재는 원래 쇼핑요정, 정원사 이야기를 쓸려고 했는데 급 주제를 바꾸기로 한다. 뚱냥이 이야기로, 그리고 고양이를 닮은 우리 집 꼬마가드너 이야기로.


훗 뚱냥이의 복수다냥


고양이팔자, 상팔자로세

안냥? 난 빵냥이가 오랜만이다냥! 참 분량 챙기기 힘들다냥. 한 달 만에 제대로 인사한다냥. 오늘은 연말이라 힘들게 잊지 못할 선물을 3번 집사에게 선물했다냥. 훗훗훗. 분량을 챙기고 싶은 마음만큼 실례를! 그래도 그 냄새면 쥐들은 못 놀러 올 테니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냥!

첫 연재글을 올린 한 달 전, 나도 축하해 주러 놀러왔다냥. 앞가르마냥이랑 놀러왔다냥. 우리가 정원 앞에서 시끄럽게 냥냥 거려서 집사가 바깥으로 나왔다냥. 스뎅 양푼에 물을 담아줬다냥. 얼마 전 내가 화분받침을 물을 할짝할짝 먹는 소리를 듣더니 그때부터 물양푼을 놔준다냥. 참 손도 크다냥. 사실 알고있다냥. 이 양푼은 꼬마가드너가 갖고 나온 걸 그냥 두고 있는 거라는 걸. 냥이자리의 눕혀진 풀도 고대로고 여긴 변화가 적어서 나름 살기 좋다냥.

3번 집사는 정원사 치고는 귀차니즘이 큰 거 같긴 하다냥. 딱이다냥. 헤헷. 비 오는 날 앉으라고 저렇게 나무판자도 내내 놓아두고 덕분에 비를 피할 수 있다냥. 그래서 이곳은 저렇게 돌 위에서 찜질도 하면서 쉬는 별장 같은 곳이니까냥. 비가 그치면 벤치에 빵굽기자세루 앉아서 꼬마가드너 구경을 한다냥. 한창 날이 좋을 때는 3호 집사랑 둘이 잘 나왔다냥.

꼬마가드너가 누구냐고? 3호 집사의 아들이다냥. 음, 꼬마가드너는 좀 신기하다냥. 인간말을 잘 못한다냥. 그리고 조금 우리랑 닮았다냥. 풀밭 끝머리에 앉아서 하염없이 뭔가를 보는 모양새가 똑같지 않으냥? 그렇다냥, 오늘은 내가 나랑 닮은 집사의 꼬마가드너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냥. 궁금했다냥.

조금 기대된다냥.


눌러보시면 내가 왜 뚱냥이인지 아실 수 있다냥
꼬마가드너가 궁금하다냥






우리 닮았다냥?


아이들은 정원과 같아서,
그들에게 좋은 것을 주면 건강하게 자란다.
(프리드리히 니체)

꼬마가드너는 고양이로소이다

정원이(애칭)도 고양이 뚱냥이도 저렇게 풀밭의 끄트머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잘 본다. 뒷모습이 닮았다. 종종 정원이가 고양이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창문 끝에 매달려 하늘을 보는 모양이 집고양이랑 비슷했었다. 이제 경계 없는 정원에서 자유로이 저렇게 풀밭 위의 고양이 타임을 갖는 모습을 보면 참 다행이다 싶다. 대도시에 살면서 조금이나마 풀냄새 흙냄새 그리고 똥냄새도 맡으면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 아이의 눈이 무엇을 담고 있을지 내게 젼해주긴 어렵겠지만, 아이가 보는 시간의 풍경을 함께 보고 있으니, 그것으로 괜찮겠지. 16층 베란다에 끝에 매달릴 땐, 위험해서 차마 그 시간을 함께 묻기도 보기도 어려웠었다. 조금 손을 놓아도 안심하고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니 고양이도 자주 놀러 오는 것 같다.

정원이는 희한하게 아기시절부터 베란다정원을 좋아했다. 구축아파트에서 16층에서 1층까지 나가는 것은 긴 엘리베이터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유아시절엔 이것저것 짐도 많아 큰맘 먹고 나가야만 하는데. 그래서 베란다를 오픈해 주니, 정원이는 화분의 나무들 사이로 산책했다. 그때는 거의 200여개의 많은 반려식물 사이로 빗자루를 쓸기도 하고 좋아하는 공룡과 함께 산책도 했다. 하늘과 맞닿은 고층의 정원이었기에 그만큼 해가 잘드는 온실이었다. 사실 안전 때문에 겹겹이 화분으로 막아둔 것도 있었는데, 아이는 그 작은 골목을 산책하는 것처럼 정답게 오고 갔다.



이제 1층으로 이사 온 뒤로 좋은 점은 정원의 울타리가 없다는 점이다. 아직도 울타리를 할까 고민 중이긴 하지만 아마 높게 하진 않을 거 같다. 정원이는 우리 집에 딸린 작은 3평 정원에서 아파트 산책길을 마치 고양이처럼 오고 간다. 벚나무도 우리 집 마당의 나무인양 가지에 달린 꽃을 매만진다. 가을 햇빛이 달구어놓은 경계석은 반질반질해서 뚱냥이도 자주 앉는데 '정원이'도 자주 앉아서 하늘구경을 한다. 16층 정원의 하늘은 가까웠지만 좁고 만질 수 없었지만, 지상으로 내려온 장원에서는 하늘은 조금 멀어진 대신 넓고 오래오래 볼 수 있다. 주말이면 거실을 가운데 두고 아빠는 주말특식을 요리하고 엄마가 잡초 뽑는다. 아이는 그 틈에 따라 나와 함께 논다. 자기 키보다 큰 갈퀴를 들고 요리조리 들고 부스러진 마른풀을 긁는 흉내를 낸다. 엄마가 호미로 무언가를 심으면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작은 손에 호미를 쥐어주면 긁어보기도 한다. 네모난 사각의 치료실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흙을 만지며 즐긴다. 그저 즐겁다. 즐거우니 하고 싶다.

정원에 흙을 깔던날, 쪼르르 따라 나와서 자신도 만져본다. 정원사 엄마의 뒤를 아기오리마냥 쫓아다니면서 흉내 낸다. 40분에 10만 원짜리 수업에서 그토록 가르치려 했던 모방의 기술은 아이의 마음에서 출발하기에 여기서는 쉽게만 느껴진다. 어른처럼 엄마 우산을 쓰고 정원에서 아파트 산책길로 우산을 쓰고 걸어보기도 한다. 3평의 정원은 아이의 발걸음에 따라 30평이 되었다가 다시 3평이 된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계절의 촉감을 아이도 안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계절의 온도를 아이는 느낀다.

마치 고양이처럼 정원이는 마당까지의 영역에서 엄마와 조금 떨어져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 다칠까 봐 자폐를 가진 아이의 손을 놓는다는 것은 늘 어렵다. 혹여나 차에 치이면 어쩌지, 엄마는 불안했다. 여기 경계 없는 일층의 3평짜리 정원과 아파트 마당에서 우리는 손을 놓고 시간을 공유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잠시 2-3m 떨어져도 괜찮음을 알아가고 있다. 어디까지 안심할 수 있는 경계인지 스스로 만들어간다. 그리고 같이 손을 잡고 모험을 떠나듯 길을 건너 산책을 하기도 한다.


정원은 여행이자 작은 모험이다.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그나저나 고양이 똥 밟았으니 로또사도 되는 겁니까?)


경계없는 정원에서의 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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