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지 안이 어수선하다 싶더니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전광판에서 선명하게 반짝이는 ‘캔슬(CANCEL)’의 불빛. 오전 9시 산티아고에서 마드리드로 출발하는 비행기의 지연 소식 때문이었다. 공항 직원에게 문의하니 확인 중이라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조마조마한 불안 속에서 기다렸지만, 오전 10시 결국 산티아고공항의 모든 비행기는 결항되었다.
아뿔싸! 천재지변이란 이런 건가?
이유는 기상악화였다.
이베리아 항공사는 마드리드까지 버스가 준비되었으니 10시 30분까지 출구 쪽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비행기가 결항되었고,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기다렸는데, 오후 4시 인천으로 가는 카타르항공을 탈 수 없게 되었다. 버스로 마드리드까지는 7시간, 최소 2시간 전에는 탑승수속을 마쳐야 하는데 청천벽력 같은 난감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기차로는 4시간 거리이지만 비바람에 나무가 쓰러져 철로도 끊겼다.
항공사가 준비한 마드리드행 버스 앞, 직원이 나눠주는 봉지 하나 건네받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탔으니 마드리드 도착은 5시 30분, 인천으로 출발하는 4시 비행기가 뜨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진정시키고 카타르항공 고객센터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충분히 이해 가는 상황이지만, 오후 2시까지 탑승수속을 마쳐야 한다면서 다음날 비행기 예약 시 발생하는 추가 금액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동일 항공사도 아니었고, 책임져야 할 의무도 없었다. 추가 금액만큼 카드 결제하고 이 난감한 상황을 기다리는 식구들에게도 알렸다.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 앞에서 식구들 역시 도리없이 받아들였다.
계획에 없었던 마드리드의 하루가 선물처럼 다가왔다. 마음은 불편했지만, 상황을 즐겨 보기로 했다. 봉지 속 샌드위치를 씹으며 창밖을 보니 비바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무지개가 떴다.
마드리드의 하룻밤
환하게 밝혀진 마드리드의 광장, 밤이 빛나고 있었다. 마요르 광장(Plaza Mayor)3층 건물은 대칭으로 균형이 잘 잡혀있고, 237개의 발코니가 광장을 향해 있다. 또한 9개의 아치형 출입구가 있어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설계되었다. 광장 중앙에는 필리프 3세의 기마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스페인에서 널리 사용된 바로크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건축가 고메즈 데 모라(Juan Gomez de Moea)가 설계하여 스페인 전역의 다른 도시에서도 유사한 광장 설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푸드마켓 중 하나인 ‘산 미겔 시장(Marcado de SanMiguel)이 바로 옆이다. 스페인 요리와 신선한 재료들이 가득해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곳이다. 형형색색 다양한 디저트를 시작으로 신선한 해산물과 각 지방에서 만들어진 와인들,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수분을 제거하고 수개월에서 수년간 숙성시킨 하몽까지, 식도락 명소답게 다양한 맛을 한자리에서 즐겼다. 부른 배가 야속할 정도로 맛보지 못한 음식을 아쉬워하며 마드리드의 깊은 밤, 나는 잠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