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와 뻔뻔 한 스푼 섞어 떠납니다.
또 가냐고요?
네, 또 갑니다.
프리미티보 길을 걷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음속 어딘가에서 다시 걷고 싶다는 소리가 자꾸만 들려왔다. 아빠를 부탁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들 방학에 맞춰 겨울이나 여름방학이었다. 나는 추운 겨울보다 여름 바다가 훨씬 좋았고, 햇살과 파도 소리를 옆에 두고 걷는 길이 더 끌렸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포르투갈 해안길을 선택했다. 순례보다는 여행처럼, 여행보다는 조금 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걸음이 될 것 같았다.
고민은 짧았고, 결심은 바로 비행기 티켓팅으로 이어졌다. 아시아나 직항 바르셀로나행 왕복 130만 원.
“이 정도면 괜찮겠지!”
이번 길은 조금 더 여유롭게 준비하고 싶어 가족에게 동의도 없이 예약부터 해버렸다.
딸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자, “또 가고 싶지~” 하고 싱긋 웃으며 든든한 응원군이 되어주었다.
아들에게는 살짝 감성을 곁들여 진지한 문자를 보냈다.
성아, 엄마 또 욕심 좀 부려보려 해
근데 너 없었으면 이 욕심도 꺼낼 수 없었을 거야.
아빠 아픈 거, 정말 정말 너무너무 싫지만...
그런 상황에도 네가 잘 커 주고 옆에서 큰 힘이 되어줘서 많이 고맙고 든든해.
엄마는 네게 짐이 아닌 언제나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리고 평생 친구처럼 함께 걷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러려면 엄마에게도 충전할 시간이 필요해.
성이도 힘들고 지칠 땐 꼭꼭 숨기지 말고 주저없이 툭 털어 놓아줘.
엄마 품은 언제나 네가 기대어 쉴 수 있는 자리니까.
사랑해, 든든한 아들
이번에도 허락보다는 통보를 한 남편에게는 참 미안했다. 그런데 마음이 더 무거워질 사건이 터졌다. 출국이 한 달 남은 날, 물고기자리를 마감하고 올라오니 남편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샤워 중에 떨어진 비누를 줍다가 미끄러졌다고 했다. 진단 결과는 허리 골절, 약과 주사를 처방받았고, 결국 워커라는 보행 보조기까지 들이게 되었다. 그날 밤 마음을 쓸어내리며 깊은숨을 쉬었다. 꼬박 2주 동안 옆에 붙어 밥을 먹이고, 씻기고, 조금은 느릿하게, 조금은 더 깊게 남편과 마주한 시간을 보냈다.
방학이라 집에 온 아들은 싫은 내색 없이 나와 아빠를 도왔다. 내가 없는 동안의 케어방법을 알려주자
“알았어”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고맙고, 또 미안했다.
어느덧 출발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가방을 꺼내고, 메모해 둔 준비물을 하나하나 챙기며, 냉장고에 해동해서 먹을 수 있는 국들과 반찬들을 차곡차곡 채웠다. 열무김치를 담그고, 불고기를 소분하고, 멸치볶음과 콩자반, 깻잎조림까지 반찬통에 담았다.
말복 달임으로 끓인 닭곰탕 한 냄비를 식구들과 함께 나눠 먹으며 한여름의 끝자락을 보내고, 몸도 마음도 출발선에 세웠다. 반은 눈치껏, 반은 뻔뻔하게 떠날 수 있도록 묵묵히 허락해 준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의 빈자리를 채워줄 물고기자리 식구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했다. 이제 진짜 실감이 났다.
두 번째 산티아고,
조금은 여행처럼,
조금 더 나를 돌아보며
느긋한 걸음으로
파란 바다를 따라 걷는
내 여름의 쉼표,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