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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가 깨운 용기

나에게만 들리는 멜로디

by 올리브

“용기란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앰브로즈 레드문(Ambrose Redmoon)


시작은 언제나 설렌다.

다시 갈 수 있다는 믿음과 해내겠다는 단단한 용기를 품고 포르투 길(Camino Portugués de Santiago) 위에 올랐다.


두렵지 않았던 건 아니다.

낯선 도시, 익숙하지 않은 언어, 스쳐 지나가는 무심한 사람들 사이에서 피아노는 조용히 나를 불렀다.

포르투(Porto)에 도착해 도시로 나가는 지하철역 한편, 누구의 것도 아닌 듯 놓인 피아노 의자에 나도 모르게 앉았다. 악보도 청중도 없었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손이 기억하고 마음이 흐르는 대로 더듬어 꺼낼 수 있는 레퍼토리는 딱 하나 캐논 변주곡, 첫 음을 눌렀다. 첫 음을 누르니 마음이 조용히 자리 잡았다. 누가 보든 말든 내 마음이 제일 중요했다.

“I don’t care.”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치며 서툰 손끝으로 건반을 눌렀다. 공기 중에 흩날리는 소리는 어설펐지만 나쁘지 않았다. 무심한 주변의 공기가 나를 더 자유롭게 했다.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그때 알았다. 용기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하고 싶은 걸 그냥 해보는 마음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말이다. 대단한 연주는 아니었지만 괜찮았다. 누가 잘했다고 말해주지 않아도 그저 나답게, 내가 원하는 대로, 그런 내 모습이 참 맘에 들었다.


포르투는 파란색이 유난히 잘 어울리는 도시다.
하늘도, 강도, 벽을 가득 채운 파란 타일까지도, 푸른 이야기들이 바람을 타고 속삭이는 듯했다. 달력 속 사진 같은 풍경이 골목마다 숨어 있었고, 그 틈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자유를 누렸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도시를 마주하며 나에게 조용히 주문을 걸었다.


“2주 동안은 그냥 행복할 것,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걷고 싶을 때 걷자.

하고 싶은 것만 하자.”

욕심이라면 딱 그 정도였다. 일상에선 단순한 것도 좀처럼 쉽게 허락되지 않았으니, 이곳에서 마음껏 단순하고 마음껏 솔직하기로 했다.


충분히 잘 것.
내 생각에 집중할 것.
원하지 않는 건 하지 않을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잘 먹고, 잘 쉬며, 내 마음을 천천히 어루만지고 돌아가는 것.

이것이 이번 산티아고 여정의 진짜 목표였다.

시작이 가볍고, 마음은 단단했다. 이만하면 꽤 괜찮은 출발이다.

피아노와 함께 시작된 이 길이 앞으로 어떤 리듬으로 흐를지 기대하며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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