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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인은 없지만 설렘은 만실

오늘 밤 호텔은 공항입니다

by 올리브

오늘 밤 호텔은 공항입니다

여행은 목적지보다 그 길을 향해 나서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그 밤, 나는 공항 한편에서 용기를 껴안고 첫날의 잠을 청했다.


2024년 8월 16일, 아시아나항공 OZ501편은 인천공항을 떠나 장대한 날갯짓으로 하늘을 가르기 시작했다. 익숙한 땅이 작아졌다. 창 너머로 펼쳐진 흰 구름바다 위를 유영하듯 흘러가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창가에 앉아 뿌연 바다와 창백한 하늘을 번갈아 보다 생각했다.

“또 떠나는구나, 내가.”


이번엔 조금 달랐다. 전처럼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마음도 덜했고, 일정도 비교적 여유롭게 짰다. 그만큼 설렘도, 두근거림도 솔직하게 다가왔다. 피곤함과 들뜸이 교차하는 감정 속에서 단단히 벨트를 맸다. 두 번째 산티아고 여정의 시작이었다.

14시간 30분의 비행 끝, 샤를 드골 공항에 닿았다. 비행기 문이 열리는 순간, 다른 대륙의 공기가 가슴을 스치며 들어왔다. 조금 건조하고 낯선 공기, 공항 내부는 여전히 복잡한 하루의 끝자락을 달리고 있었다. 그 끝에 도착한 도시는 파리, 하지만 아직 도착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환승, 작은 비행기를 갈아타고 바르셀로나까지 날아가야 했다. 현지 시각 밤 10시가 넘어서야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에 도착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긴장과 기대가 섞인 상태로 바짝 깨어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다음 날 아침 포르투행 비행기 7시간의 공백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피곤한 환승일 테지만, 나에겐 미리 계획된 공항 1박의 밤이었다.


인천 → 파리 → 바르셀로나 → 포르투

총 18시간의 이동시간이었다. 이쯤 되면 공항은 더 이상 경유지가 아니라, 몸을 눕히고 눈을 붙일 수 있는 제법 괜찮은 숙소가 된다. 긴 여행을 계획하며 일정과 예산을 맞추던 날 결심했었다.

“그래, 첫날밤 숙소는 공항이다.”

공항의 의자는 딱딱했고, 형광등 불빛은 은근히 눈을 자극했다. 하지만 모든 불편함이 오히려 여행자의 체온을 실감 나게 해 주었다. 가끔씩 나오는 안내 방송, 짐가방 굴러가는 소리, 잠시 뒤 이륙할 항공편의 기체가 떨리는 진동, 모든 소음이 내게는 낯설지만 익숙한 여행의 사운드트랙 같았다.


침낭을 꺼내 몸을 넣고, 보조가방을 목 베개 삼았다. 저만치에도 누군가 자리를 펴고 있었고, 같은 리듬 속에 쉬고 있었다. 대화 없이도 괜찮은 침묵, 낯선 공간에서 만난 평화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공항 바닥과 따뜻한 침낭 사이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자립감이 피곤함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래, 나 꽤 잘하고 있어’라는 속삭임이 마음속에서 일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비행이지만 마음은 이미 파란 길 위에 올라섰다. 구름 아래 펼쳐질 파란 바다와 햇살, 그 길 위에서 나를 기다리는 여름의 쉼표가 벌써부터 손짓하는 듯했다.


불편하지만 나쁘지 않았고, 어쩌면 이 순간이야말로 여정의 진짜 시작일지도 몰랐다. 예상보다 덜 불편했고,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눈치와 뻔뻔 한 스푼으로 섞어 떠나온 첫날밤 공항 노숙은 기분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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