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뇨강을 건너 이어진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길
"길은 국경을 가르지 않는다."
프란츠 카프카
[상세구간]
비아나 두 카스텔루(Viana do Castelo) → 까헤수(Carreço) → 아피페(Afife) → 빌라 프라야 드 앙쿠라(Vila Praia de Âncora) → 모이냐(Moledo) → 카민하(Caminha) → (택시 보트) → 캄포상코스(Camposancos, Spain) → 아 구아르다(A Guarda)
거리 약 33km
택시를 타고 예약해 둔 알베르게(Casa do Adro Hostel), 까헤수에 도착했다. 제법 큰 도시 비아나 두 카스텔루 언덕 위 바실리카 드 산타 루지아(Basílica de Santa Luzia)가 손짓하듯 부르지만 그대로 길을 흘려보냈다. 대서양과 리마강, 붉은 지붕 마을이 어우러진 장대한 풍경을 뒤로한 채 숙소 앞까지 편안하게 닿았다.
숙소에 도착해 양말을 벗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 불청객이 나타났다. 새끼발가락 아래로 물집이 잡혔다. 고작 이틀 걸었을 뿐인데, 지난 프리미티보에서 하루 6만 보를 걸어도 끄떡없던 발이 왜 이리 쉽게 무너졌을까. 작은 물집 하나가 마음을 뒤흔들었다. 당장은 터뜨리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배낭 속에 구겨 넣었던 빨래를 세탁하고, 숙소 안 작은 수영장에서 물놀이하며 몸을 식혔다. 택시를 타고 이동했으니 느긋하게 호사를 부려보고 싶었다. 웹서칭으로 찾아낸 식당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러 갔다, 바닷가 마을답게 먹거리는 풍성했고, 소금기 어린 바람이 한입마다 깊은 맛을 얹어주었다.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까지 배가 부르다 못해 찢어질 것 같아 소화를 시킬 겸 숙소 뒤편 언덕으로 산책을 나섰다,
언덕 위로는 흰 벽과 단정한 지붕을 얹은 작은 예배당 성 세바스티아노(Capela de São Sebastião)가 조용히 서 있었다. 역병과 재난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기를 바라며 세워진 예배당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바다를 향해 묵묵히 서 있는 등대처럼 든든해 보였다.
예배당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마음으로 하고 있는데, 돌바닥 위로 대여섯 명의 젊은이들이 침낭을 펴고 누워 있었다. 성당 앞마당을 침상으로 삼고, 별빛을 천장 삼아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동행의 힘, 그 모습이 부럽기도 하면서 얼마나 불편할지 내심 걱정되었다. 며칠 전 바르셀로나 공항에서의 밤이 떠올랐다. 새벽 비행기를 기다리며 차가운 바닥과 낯선 소음 속에서 몸을 웅크려야 했던, 그렇지만 이상한 해방감이 있었던 밤이었다. 불편을 감수하며 시간을 견딘다는 것이 오히려 용기가 되었고, 목적지를 향한 여행 속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벅찼던 날이었다. 그날의 나와 별빛 아래 누워 있는 친구들이 다르지 않았다. 같은 길 위에서 같은 삶을 맛보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길 위로 스며드는 시간 돌담 사이로 옹기종기 모여 핀 주걱개망초가 반갑게 인사했다. 나무가 뿜어내는 숲 내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새들의 지저귐과 흐르는 물소리가 잔잔한 음악처럼 들려왔다. 숲 한가운데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코반냐스 성 요한 수도원(Convento de Cabanas)은 11세기에 건립되어 18세기에 베네딕토 수도회에 의해 개조되었고, 최근에는 스위스 출신 가수인 나탈리 드르나노(Nathalie d’Ornano)가 복원하여 문화 관광지로 운영 중이다.
자연이 주는 싱그러움과 발밑 돌과 흙이 섞여 사각사각 소리가 발걸음을 한층 더 경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빌라 프라야 드 앙쿠라(Vila Praia de Âncora)의 좁은 골목을 지나 광장에 하얀 벽과 종답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보아 보난사 성모 예배당(Capela Nossa Senhora da Boa Bonança) 문을 열고 조심스레 들어서니 수녀님 한 분이 조용히 앉아 기도를 드리고 계셨다. 금빛 제단과 푸른 타일 장식이 은은하게 빛났다. 고요하게 흐르는 정적과 평온함이 나의 마음까지 차분하게 해 주었다.
카페에 들러 에그타르트와 에스프레소 한잔으로 허기짐을 채우고 다시 해안 길이 펼쳐진 모이냐(Moledo), 파도소리와 갈매기 울음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이 조용히 길을 안내했다.
모래사장 위 여름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배낭 속 수영복을 꺼내 입고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나에게 물었다.
“행복하니? 배낭도 무겁고, 물집도 생겼고, 햇볕도 뜨거운데, 정말 행복하니?”
대답은 단순했다.
“그냥 마음이 편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챙기지 않아도 좋아.”
그래, 그걸로 충분했다. 걸음이 늘어나며 몸이 피곤해질수록, 머릿속은 더 단순해졌다. 복잡함 없이, 단순하게 나에게 쉼을 주는 것이 이번 순례길의 목적이었다.
모이냐를 지나며 강 건너편으로 스페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뇨강 물줄기가 보이는 근처의 식당에서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점심을 즐겼다. 테이블 위에는 소고기 구이와 구운 감자, 고소한 밤이 곁들여져 나왔다. 옆에는 바삭한 생선 크로켓과 향긋하게 구운 새우가 소박하면서도 풍성하게 놓여 있었다. 맥주 한 잔을 곁들이니 피로가 풀리는듯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카민하에 닿으니 미뇨(Miño) 강이 길을 막았다.
미뇨강은 길이 약 340km로, 포르투갈 북부와 갈리시아 지방에서 가장 긴 강이다. 북쪽 산에서 발원해 대서양으로 흘러가며,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품었다. 전설에 따르면, 세상이 막 열리던 시절 신이 인간에게 물과 생명을 나누고자 대지를 가르며 강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태어난 미뇨강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젖줄이자 마음을 씻어주는 존재였다.
구명조끼를 입고 택시 보트에 몸을 실었다. 살짝 흔들리는 배 위에서 포르투갈의 풍경이 멀어지고, 스페인의 윤곽이 가까워졌다. 물줄기 위에서 느껴지는 설렘은 국경보다 내 심장에 먼저 닿았다.
캄포상코스에 내리자, 표지판의 언어가 달라졌다. 스페인 땅에 발을 디디자 풍경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아 구아르다의 언덕 위, 몬테 산타 테그라가 장엄하게 솟아 있었다. 기원전 1세기 무렵, 켈트족은 이곳에 성채 마을을 세웠다. 바다를 내려다보고 강을 굽어볼 수 있는 높은 지형은 적의 침입을 막고, 삶의 터전을 지켜주는 자연의 요새였다. 돌담과 집터는 세월의 풍화를 견디며 고대의 숨결을 전하고 있었다.
오늘까지 걸으며 국경을 넘었고. 많은 나를 만났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단순함을 즐기는 나,
작은 불편과 두려움, 발가락의 물집마저 설렘으로 바꾸는 용기 있는 나,
햇살과 바람, 파도와 숲 내음, 사람과 역사에 마음을 여는 나,
길 위 흐르는 시간 속에서 평온해지는 나를 만났다.
모든 마음이 앞으로의 발걸음에 조용한 빛을 내어줄 존재임을 믿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