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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속으로 걸어가다_1

건축이 꿈꾼 자연 구엘공원

by 올리브

“예술은 기도의 또 다른 형태다.”
안토니 가우디


산티아고를 떠나는 비행기 안, 창밖으로 순례길의 풍경이 점점 작아졌다. 끝없이 이어지던 길과 그 위에 쌓인 시간이 작은 창문 속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예술의 도시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산티아고의 길이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다면, 바르셀로나는 마음이 활기를 되찾는 시간이었다. 아직 멈추지 않은 걸음과 마음은 새로운 색과 리듬 속에서 춤추듯 살아 움직였다.

8월 한낮 바르셀로나의 더위는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강렬했다. 더운 공기를 가르며 배낭 사이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발걸음을 옮기니 구엘 공원(Parc Güell) 입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구엘 공원은 자연을 사랑한 건축가 가우디와, 에우세비 구엘(Eusebi Güell)의 꿈이 더해져 완성된 작품이다. 원래는 런던의 정원 도시를 본뜬 고급 주택 단지로 계획되었지만, 분양이 되지 않아 공원으로 남았다.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자연과 건축이 서로 기대듯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진으로만 보던 동화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태양 아래 반짝이는 타일과 돌, 알록달록한 색감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설렘이 가득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을 닮은 포터리 하우스(Pottery House)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둥글게 말린 지붕은 색색의 타일로 반짝이고, 곡선으로 이어진 벽은 설탕과 아이싱으로 꾸민 집처럼 달콤해 보였다. 햇살에 반짝이는 트렌카디스 모자이크가 동화 속 장면을 현실로 옮겨놓은 듯 나를 단숨에 동심으로 데려갔다.

공원의 수호신처럼 자리한 도마뱀 분수 엘 드락(El Drac)과 눈을 맞추었다. 아쉽게도 물이 흐르지 않았다. 관광객이 많은 시기에는 물 공급이 제한되어 분수가 잠시 멈추기도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햇살에 반짝이는 도마뱀은 여전히 생기를 품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숲처럼 늘어선 기둥 속 시장 홀(도리식 회랑, Hypostyle Room)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리식 기둥들은 나무처럼 땅에 뿌리를 내리고, 그 위로 얹힌 천장은 가지처럼 퍼져 하늘을 받치고 있었다.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과 그늘 속에서 잠시 한숨을 돌렸다.

시장 홀 위로 이어지는 세라믹 벤치(Serpentine Bench)는 구엘공원의 가장 유명한 풍경이다.

110미터 길이의 물결 모양 벤치는 사람의 허리를 본떠 설계되었다. 앉으면 도시와 지중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벤치 위 트렌카디스 조각들은 햇살에 따라 빛을 바꾸며 하루의 시간을 색으로 알려주는 듯했다.

언덕을 따라 걸으면 콜로네이드 통로(Colonnaded Path)가 이어진다. 나뭇가지처럼 구부러진 기둥,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벽, 산비탈을 따라 이어진 길은 자연의 리듬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공원의 한쪽 언덕에는 가우디 하우스 박물관(Casa Museu Gaudí)이 있다. 분홍빛 외벽과 초록 지붕의 작은 집에서 20년간 머물렀다. 매일 새벽 미사를 드리고 조용히 기도하며 설계를 이어갔다.

언덕 끝에 서자,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붉은 지붕과 파란 하늘, 꼬불꼬불 이어진 골목길 사이로 햇살이 내려앉았다. 멀리 지중해가 시선을 끌었다. 순례길에서 배운 단순함과 느린 걸음,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웃음과 눈빛이 떠올랐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산티아고의 고요함과 바르셀로나의 활기가 겹치며 또 다른 쉼표가 되었다.

트렌카디스(trencadís) — 카탈루냐어로 ‘깨진 조각’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깨진 도자기와 타일, 유리 조각들을 이어 붙여 완성된 모자이크, 가우디의 손끝에서 탄생한 독창적인 건축 기법이다. 버려진 조각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햇살에 비친 조각들은 서로 다른 빛을 품고 반짝였다. 순례길에서 만났던 순간들도 그랬다.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를 위로하며, 부서지고 다시 이어진 시간이 나의 여정을 조금씩 완성시켜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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