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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스칼리 Sep 18. 2024

과거회상 1

 룸메이트

하늘이 푸르고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오는 그 가을날, 노란 단풍잎들이 바닥에 떨어질 즈음, 그녀는 매일같이 스타벅스로 향했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그녀는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노트북 위에 펼쳐놓고, 오늘은 메일이 도착하지 않았는지 마우스를 클릭하며 조심스럽게 스크롤을 내렸습니다.


주말이 되면 그녀는 한인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교회에서 제공하는 무료 식사는 뉴욕에서는 쉽게 맛보지 못하는 한국식 음식으로, 그녀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따뜻한 밥을 먹고 나면 자연스럽게 작은 성경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학생 비자가 얼마 남지 않아 초조해진 그녀는, 그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함께 서로의 걱정을 나누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유학을 선택한 그녀는, 부모님께서 실망하시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기도를 통해 취업만 이루어진다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모임은 서로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기도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녀는 이공계 전공 학생들과의 대화 속에서 IT 분야의 취업 유예 기간이 길고, 그 분야에서의 취업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기도를 통해 알게 된 한 여성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습니다. "저 이번에 한국으로 들어가요," 그녀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축하해요! 좋은 곳에 취업하셨나 봐요,"라고 대답했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의 마음은 깊은 불안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나둘씩 떠나는 친구들의 모습이 그녀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름 있는 회사들에 지원했으나, 취업 비자라는 조건이 붙자 면접관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면접장에서는 전 세계의 학생들과 만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며 경쟁했지만, 타인의 작품을 볼수록 자신의 작업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경쟁자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펼칠 때마다, 그녀는 점점 더 위축되었습니다. 그들의 확신은 그녀의 마음속에 의구심을 심어주었습니다.


면접 중, 면접관이 "가장 힘들었던 경험을 말씀해 주세요"라고 질문하였을 때, 예상치 못한 물음에 당황한 그녀는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전부 다 힘들었어요..." 그녀의 솔직한 고백은 면접을 망쳤다는 두려움과 함께 끝내 눈물을 쏟게 만들었습니다.


그날 저녁, 집주인은 새로운 룸메이트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작고 통통한 외모의 한국인 2세 소녀는 댄서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홀로 뉴욕으로 날아왔습니다. 그녀는 그 소녀의 모습을 보며, 부모님이 왜 반대하셨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소녀는 그날 저녁 만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찾더니, 밤이 되면 댄스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그녀는 매일 밤, 만두 가게에서의 웃긴 손님 이야기나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눈은 댄스 학원에서 만나는 멋진 사람들에 대한 자랑으로 반짝였습니다.


그들이 지내던 맨해튼 아파트는 여름엔 에어컨이 없고, 겨울에는 난방이 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이민자들로 가득한 건물에서 아랫집의 다양한 음식 냄새가 올라왔고, 바로 옆 건물의 유명한 바에서는 밤새도록 음악 소리와 손님들의 소란이 들렸습니다.


추운 겨울날, 이불로도 추위를 막지 못해 패딩 점퍼를 입고 잠자리에 누운 그녀는 몇 번이나 뒤척이다가 잠이 오지 않자 룸메이트에게 물었습니다. "넌 불안하지 않아? 여기 춤을 추러 오는 사람들도 많고, 영화나 뮤지컬 경력이 있는 사람들도 취업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룸메이트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언니, 난 그래도 춤추는 게 좋아! 내가 열심히 하면 잘될 거라고 믿어. 그리고 잘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나도 그들 덕분에 더 잘하게 될 거잖아!"


룸메이트는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나 음악을 틀었습니다. 음악에 맞춰 그녀의 춤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그 소녀의 열정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주변의 차가운 공기가 녹아내리는 듯한 순간, 자신이 불안에 휩싸여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더욱 적극적으로 구직을 해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좋은 경험이며, 결국 잘될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속에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따뜻한 난로가 켜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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