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과 실패
여자는 뉴욕에서의 구직 기간이 끝나기 직전, 마지막 기회를 찾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품에 안고 여러 회사를 찾아다녔습니다. 불안과 초조함이 가득했지만, 마침내 두 회사에서 스폰서십을 제안받았습니다. 하나는 소규모의 한인 회사였고, 다른 하나는 유명 PB 브랜드를 보유한 미국 의류 프로덕션 회사였습니다. 한인 회사는 작은 사무실에서 몇몇 직원과 원단 출력 기계 하나로 운영되고 있었고, 반면 프로덕션 회사는 맨해튼 42가에 위치한 넓고 세련된 사무실로, 다양한 국적의 직원들이 일하며 화려한 PB 브랜드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미국 회사에서 일하게 된다면 다양한 바이어를 만나고, 경험을 쌓으며 커리어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첫 출근 날, 그녀는 회사의 오너가 인도 출신의 부유한 젊은 부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근무를 하며 그녀는 이곳에서 대부분의 직원이 취업 비자로 일하는 인도인들이며, 자신이 유일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한 인도 남자 직원이 그녀에게 한국은 가난한 나라라며 비아냥거리며 질문했습니다. 여자는 “한국은 가난하지 않다”라고 해명했지만, 그는 “전쟁 난 나라에서 무슨 소리냐”며 비웃었습니다. 심지어는 “미국인 남자랑 결혼해야 성공한다”는 모욕적인 말까지 내뱉었습니다. 여자는 그러한 편협한 시선에 맞서고 싶었지만, 비자 스폰을 받아야 하는 자신의 입장이 부담스러웠고,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여자는 불평을 접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다양한 업무를 맡았습니다. 디자인, 홍보, 제품 제작 및 컨펌, 그리고 바이어들에게 제품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일까지 도맡았습니다. 특히, 그녀는 회사에서 유일하게 디자인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루는 직원이었기에, 오너의 상상력을 구체화하고 새로운 브랜드 확장에 도움이 되는 존재였습니다. 새로운 제품을 감각적으로 디자인하고, 도안을 만들며 패키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여자는 자신이 회사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자부심과 우월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무실에서 "You have to think"라며 오너의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자를 틈만 나면 비난하던 인도 직원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오너에게 몇 분간 꾸중을 듣고 있던 사무실 옆에서 못 본 척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직원은 그녀에게 다가와 “디자이너가 뭐해서 먹고사냐, 브랜드를 만들 줄 알아야지”라며 팔짱을 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자는 자신의 업무에 부담과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프로그램을 사용해 디자인을 그릴 수는 있었지만, 실제로 제품을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프로덕션 업무 경력이 부족했던 탓에 봉제 과정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했고, 대부분의 제작 과정은 작업자와 하청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청 업체 중 한 회사는 한인 회사였는데, 오너가 같은 한국인이고 여자는 언어가 통하니 친근함을 느끼고 많이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전역의 모 브랜드로부터 매일같이 걸려오는 전화와 함께 납품된 제품에 대한 심각한 컴플레인이 쏟아졌습니다. 확인 결과, 제품에 중대한 하자가 발생해 판매가 불가능한 상태였고, 납품된 제품들은 매장 바닥에 걸레처럼 버려져 있었습니다. 여자는 매장에서 바닥에 널브러진 자신의 제품을 보며 등골이 오싹해지고 머리털이 서는 듯한 공포와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문제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날부터 여자는 매일같이 문제 해결에 몰두했습니다. 하청업체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정리하고, 최종 확인된 샘플 자료를 모아 변호사와 미팅을 준비했습니다. 문제 업체가 한인 회사였다는 점은 그녀에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자신이 의존했던 하청업체와 끝없는 싸움을 벌여야 했고, 그 과정에서 여자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일이 해결된 후에도 비슷한 문제가 다시 발생할까 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경력이 짧은 신입 디자이너로서, 그녀는 조언을 받을 팀원도, 제품에 대한 전문 지식을 쌓을 기회도 없는 환경에서 더는 버틸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비자를 받기 위해 무리하게 버티는 것이 무의미하고, 오히려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은 그녀는 더 나은 기회를 찾아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