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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 신규 간호사로 살아남기 #3

셋째 달의 기록

by vonnievo

1년 반을 기다려서 꼴랑 3개월 근무했는데 벌써 ㅈ같다.
메인 스테이션을 세 번을 돌아도 보이지 않던 인간이 '쌤은 인사 안 해요?!" 라며 소리쳤다.
출근은 일찍 해도 늦게 해도 욕을 먹는다.
내 프셉은 알려주는 것도 없으면서 공부를 해오라고 하고, 내게 뭔가 설명해 주는 사람에게는 '헉 너는 그런 것까지 알려주니?'라며 말리는 듯한 뉘앙스를 보인다. 그러곤 맨날 혼낸다.
근무시간이 길고 뒤죽박죽 해서 수면의 질이 하락했다.
발목도 다시 아프고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한 달마다 수 선생님, 프리셉터, 교육 간호사와 면담을 한다.
효과는 있다.
정작 힘든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털어놓을 수 없고, 어차피 형식적인 위로나 받을 것이 뻔해서 '다 괜찮다'라고 말하고 난 뒤엔 뱉은 발언에 대한 잠시간의 어쭙잖은 책임감이 생긴다.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사라져서 1년 넘게 겪던 혼란함에서 벗어났다.
대신 기쁘지도 않다.
그냥 감정이 전보다 사라진 느낌.

출퇴근 시간이 반으로 줄었는데 내 시간은 늘지 않았다.
내 인생을 병원에 저당 잡힌 기분이다.
여전히 호주는 가고 싶은데 이젠 그것도 간호사로 가는 거면 가기 싫다.

거의 매일 공부하다가 가끔 하루씩 안 하면 꼭 그런 날 뭔가 질문을 받고 혼이 난다.
오늘은 몸도 영 메롱 이었는데 항암 환자 n명에 수혈 1명이 있었다.
심지어 늘 보던 환자들도 아니었음.
아무튼 그래서 하루종일 욕먹고 또 퇴사욕구 차올랐다가 칭찬 조금 듣고 또 풀렸다.
프셉쌤은 내 트레이닝 기간이 n개월인 것은 알아도 본인 성격이 급해서 빨리 알려주고 싶단다.
뒤에선 화내다가 환자들 앞에서는 항상 '몇 달 안 됐는데 잘하죠?' 한다.
나를 좋게 보는지 나쁘게 보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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