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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 신규 간호사로 살아남기 #5

다섯째 달의 기록

by vonnievo Feb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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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뒤로 신규가 둘이 더 들어왔다. 나는 여전히 신규쌤으로 불리고, '제가 신규라서 잘 모르는데...'라며 전화를 받지만 말이다.

다들 신규 트레이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신규를 맡는다고 일이 줄지 않는다. 실수를 커버하느라 일이 늘고, 가르치기 위해 남의 일도 끌어오고, 일이 늘어난 와중에 설명도 해야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만 얻을 뿐 다른 게 얻어지진 않으니 싫을 만도 하다.
(프리셉터의 경우 자그마한 수당이 나오긴 하지만, 프리셉터와 듀티가 겹치지 않는 경우 신규를 맡게 되는 다른 이들의 경우 그마저도 없다.)

아무튼, 이렇게 귀찮은(...) 존재의 가장 큰 문제는 경력자의 빈자리를 대체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신규도 몇 년차 선생님을 대신하기 위해 발령받았다고 했다.
간호사 1명당 환자 몇 명. 이 수치에서 경력은 중요치 않다. 이제 막 독립을 한 나도, 트레이닝을 받는 저들도, 심지어는 우리 차지들도 모두 '명'이다. 문제가 많다.







나는 요양병원이나 한방병원에 비해서 대학병원이 바쁘지만 일 자체는 오히려 나을 때가 많다. 예컨대, 남자 소변줄을 여직원이 끼우는 상황만 차단되어도 성희롱이 줄어든다. 업무분담과 체계에서 오는 장점들이랄까.
그러나 OO부와 비교하면 장점이 단 하나도 없다. 사람 목숨은 붙어있는 것이 기본값이라, 잘한 것은 당연하고 못한 것은 죽을죄가 된다. 내 성과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존감깎인다.






저 사람은 왜 저러지'가 '나는 왜 이럴까'로 변했다

너 공부 안 하지, 너 잘할 마음 없지', 최선을 다하는데도 그런 얘길 들으니 억울했다, 잘할 마음이 사라졌다

한 신규 간호사 퇴사 영상에 내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놀랐다.
입사 초반 병동만 들어오면 느껴지는 숨 막히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내 뒤로 들어온 두 명 모두 이에 공감했다. 분명 사람들은 좋은 것 같은데 그럼에도 꽉 막힌 무언가가 있다. 꼴랑 반년 됐다고 살짝 무뎌진 내 모습이 소름 끼친다.




퇴사를 선언하려고 했던 날 로테이션 공고가 떴다. 바로 지원했지만 연락이 오지 않는다. 괜히 퇴사일만 미뤄졌다.
근데 이번엔 무급휴가 공지가 떴다. 온 세상이 내 퇴사를 말리는 것만 같다.

경력은 꼭 년 단위로 쌓아야 하는 걸까. 대학병원 경력이 꼭 필요한 걸까. 간호의 꽃이 정말 임상일까. 온 세상이 가스라이팅처럼 느껴진다.



솔직히 죽을 만큼 힘들진 않다. 육교를 오를 때마다 살짝만 미끄러져서 병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몸도 살짝 적응을 했다. 아침저녁으로 스트레칭하고 폼롤러 하고 보호대 차고 파스 붙이고 한의원 가고 진통제를 먹어도 낫지 않던 몸이, 이젠 파스 하나로 해결되는 정도까지 왔다. 여기저기 돌릴 때마다 삐그덕하고 뼛가루 소리가 나긴 하지만.





입사가 한 달도 되지 않은 사람을 붙잡고 우리의 관리자와 올드가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한 열변을 토해냈다.


300만 원 버는 직장 흔치 않다. 기업의 과장 급 월급을 벌써 받는 거니 입사시켜 줬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죽을 둥 살 둥 공부해라

이제 신규간호사를 뽑는 곳은 없다. 평생 계약직 인생이나 살 것도 아니고, 공무원 한다고 나간 애들 중에 붙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어딜 가도 힘들고, 어딜 가도 이렇게 대우해 주는 곳은 없다.

혈액이 왔으면 나(담당 간호사)를 줄 게 아니라 '제가(막내가) 달고 오겠습니다' 해야지. 괘씸해서 시켜놓고 하는 꼴을 보니 원칙대로 안 하더라. 신규가 벌써부터 요령을 피우면서 일하면 어떡하니. 이러다 저 사람 죽으면 넌 평생 고개도 못 들고 살 것.

제가 분명 OOO 간호사에게 시켰는데. 안 했나?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나를 가리키며)


다른 것은 다 그렇다 쳐도 안 한 일로 혼나고 싶진 않다.








윗사람 몇 명만 빼면 병동 사람들은 참 좋다. 이 착한 사람들이 여기서 고통받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다. 그래도 버텨줘요 다들. 대들이 사라지면 내 일이 더 힘들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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