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달의 기록
연휴와 이틀의 오프가 끝났다.
오프 첫날, 속초에서 '나 이제야 숨 쉬는 것 같아'라는 내 말이 엄마에겐 강렬했었던지, 엄마는 이틀 내내 그 말을 곱씹는 듯했다.
행복했던 시간들이 마치 거짓말이었다는 듯, 출근이 다가오고 집이 다가오니 다시 명치가 아파왔다. 숨을 크게 쉬어야만 공기가 들어가는 느낌이 다시 시작되었다. 다시 울적해졌다.
고작 이틀을 멀어졌던 병원. 그새 재원 환자가 늘었다. 그 자체로도 액팅 업무는 충분히 부담이다. 액팅 업무는 크게 BST, 바이탈, anti 달기, 신환 받기가 다인데 환자가 늘면 저 중 세 가지 업무가 같이 늘기 때문이다.
누군가 '금요일인데 왜 이렇게 월요일 같지?'라며 탄식을 내뱉었다. 정말이었다. 다들 반쯤 넋이 나간채로 한 가지씩 퀘스트를 던져주고 쌩하니 사라졌다.
팀을 보는 선생님들은 내가 돕지만 나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원액팅은 서럽다. 여기저기 돕느라 나는 너무 바쁜데 정작 내 업무가 얼마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한가했던 사람 취급을 받는다.
오늘도 그랬다. 신환은 3명뿐이었지만 나는 4시가 넘어서야 겨우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는 '신환도 얼마 없었구먼 왜 이렇게 대충 했냐'는 소리를 들었다.
대충이라. 지참약은 없다고 한 환자에게서 발견된 한 통의 약이 어째서 내 대충이 된단 말인가.
항상 이런 식이다. 혈당 재는 시간은 늘상 알람을 맞춰놓는데, 환자를 받다 보면 몇 번 종료를 미룬 알람까지도 소진되어 결국 까먹어버리곤 한다. 근데 오늘은 혈압을 빼먹은 환자도, 혈당을 빼먹은 환자도, 항생제를 빼먹은 환자도 없이 모든 일을 해결했다. 그랬다 싶으면 꼭 요상한 포인트에서 욕을 먹는다.
특히나 오늘처럼 데이 때만 바쁘고 이브닝이 한가한 날이면 억울함은 배가 된다. 울고 싶다. 그러나 나보다 조금 늦게 입사한 동기에게 힘들다고 털어놓는 것이 고작이었다.
오프 때 부모님과 퇴사에 대한 얘기를 진지하게 나누었다.
입사 이래로 단 하루도 행복했던 출근날은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아니다 싶은 적은 없었다. 동기는 내가 여행을 가지 않아서라고 했다. 환기를 하면 낫고, 적응이 되면 낫고, 월급이 오르면 낫다고 했다. 근데 그전에 당장 한 주를 버텨내는 것이 두렵다.
힘들다고 백날천날 얘기해 봤자 앵무새마냥 '근무가 도저히 안 나오는 걸 어떡해~'라는 말이나 반복하는 관리자 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 또한 같다. 체력이 안 되는 것을 어떡해.
나는 입사하기 위해 소모되었던 2년 가까운 시간이 아깝지 않고, 간호사라는 직업이 싫다.
'신규 간호사 퇴사'로 검색되는 수많은 영상과 글을 찾아보았다. 지인들에게 버티는 이유와 관둔 이유, 그리고 근속기간을 물었다. 근데 아무도 체력 때문에 관둔 이가 없었다.
게다가 무턱대고 관두기엔 걸리는 것이 있다. 첫째로는 단 한 번도 년 단위로 근무한 적 없는 나의 경력상태. 둘째로는 내가 이곳의 사람들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점이다.
나는 우리 병동 사람들이 좋고, 환자들이 좋고, 교수님들이 좋다. 어디 가서도 이런 사람들과 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맨날 혼나긴 하지만 뭐, 인신공격 없이 이 정도 잔소리면 괜찮다고 본다. 일이 힘든 것보다 사람이 힘든 것이 더 괴롭다는 것을 이미 알기에 부모님도 몸이 적응할 때까지 버텨보기를 권장하셨다.
근데 막상 또 출근을 하고 몸이 버겁고 나니 그 좋던 사람들도 다 최악의 존재들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퇴사를 하겠단다.
넌 퇴사하려는 이유가 뭐니, 일한 지 얼마나 됐니, 언제까지 일할 생각이니, 뭐라고 말씀드릴 생각이니, 관두고는 뭘 할 예정이니.
고민을 나누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지만 여전히 고민이 된다. 근데 마음이 뜬 건지 당장 내일 출근하는 것조차 너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