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달의 기록
병동으로 올라간 후부터 명치가 아프다.
소화 문제인지 심혈관 이슈인지 모르겠다.
주말엔 괜찮고, 퇴근 후 집에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
오래 일하기는 글러먹은 듯.
다 같이 퇴근해야 하는 문화가 왜 있을까...
니일 내일 선 긋고 각자도생 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도 모두가 한꺼번에 파트장에게 인사해야 하는 분위기는 기괴하다.
첫날엔 수한테 인사하지 않았다고 사회부적응자 취급을 받았다.
그냥 사회부적응자 하고 빨리 퇴근하고 싶다.
파트장이 별로다.
그리고 그 밑의 차지들도 별로다.
파트장은 출근과 동시에 화를 낸다.
이유는 들어도 이해가 안 된다.
아무튼 파트장이 차지 둘에게 지랄하면 그들이 나머지에게 그것을 대물림한다.
힘든 게 있으면 얘기하라는데, 그걸 힘들게 하는 장본인이 얘기한다.
잠시간의 신규 교육 덕에 숨통이 트인다.
교육 내려갈 때마다 모범생 취급을 받는데, 병동에만 돌아오면 문제아가 된다.
차라리 문제를 일으켰으면 억울하지나 않겠다.
아침엔 30분 일찍 출근해서 물품 카운트를 한다.
내 목록 중 산소가 있는데, 산소 신청은 나이트가 한다.
근데 신청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 소리 들었다.
나는 신청하는 방법도 배운 적 없다.
첫 달은 액팅 교육만 시키라는 파트장의 언급 하에 나의 프리셉터는 emr 관련된 것을 의식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업무의 대부분이 emr을 거쳐야 하는 것들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업무 방식을 관찰하곤 하는데, 이걸로 또 한 소리를 들었다.
뒤에서 가만히 있으니 조는 것 같단다.
가르치지 않은 것을 잘하길 원한다.
병원 경력 없다고 했더니 대체 그 긴 시간 동안 뭘 했냐며 황당해했다.
신규로 뽑아놓고 경력이 없다고 싫어한다.
오래 일했다고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30초 뒤면 치워질 식판을 하나하나 수거하게 함 / 조무사 따라가서 산소통 운반하는 과정 보라고 함 / 전해질 제제 믹스하라고 시켜놓고 냅다 본인 할 일 하러 감 - 이런 식으로 중요한 것은 얼레벌레 넘어가고 쓸데없는 것을 강조한다.
일의 경중이 없다.
질문하면 묘하게 다른 포인트의 대답을 한다.
전화벨이 울리면 콜벨인지 전화인지 구분도 해야 하고, 그 뒤엔 말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근데 전화 안 받는다고 짜증을 냈다.
그렇다고 습관처럼 ' OO팀 OO실입니다 ' 하면서 받을 수는 없지 않나.
아 3일째였나.
지각을 했다.
정규는 ◇시, 신규는 ○시 출근인데 □시에 도착했다.
20년 간 간호생활 하면서 첫날부터 지각하는 애는 처음 본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첫날은 아니었다.)
그래도 알람 없이 6시 기상이면 기특하지 않나.
(잘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아무튼 택시를 20분간 잡느라 꽤 고생했다.
퇴근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저 날 좀 아팠다.
남자친구가 나를 보더니 쓰러질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아빠는 표정관리에 유념하라고 했다.
노력은 하는데 잘 안 된다.
기분 나쁘다고 표출하려는 것은 아닌데, 그냥 너무 지치고 힘이 들어서 웃는 낯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신규라고 밥은 먹이는데 맛도 없고 양도 적다.
그렇게 먹고 온종일 뛰어다니다가 퇴근하면 공부하고 잔다.
그럼 하루가 끝난다.
힘이 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