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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도 세 번은 말릴 직업, 간호사

탈임상은 지능순 (3)

by vonnievo

난 정말이지 간호사라는 직업이 너무 싫다. 보람을 어디서 느끼는지 모르겠다. 돈과 권력, 명예, 그 어느 것 하나 얻을 수 없다.

3교대가 힘들다는 것은 절대 겪어보기 전엔 모른다. 남들 쉴 때 일하는 것은 생각보다 화가 난다. 똑같이 만 보를 걸어도 그것이 산책일 때와 노동일 때는 차원이 다르다. 바이오리듬이 깨진 이들은 상당히 예민하다. 일까지 몰아치는 날엔 실수하기 십상이지만, 이런 날의 실수는 그 누구도 감당할 수가 없어 어떤 말을 듣게 될지 모른다.






일반 회사는 직급별로 하는 일이 다르지만 간호 업무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규정이 시시때때로 바뀌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틀은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연차가 쌓이면 루틴 업무는 수월해질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런데 연차가 쌓이면 서류 업무가 쌓인다. 1년을 버티면 3년을 버티고, 그러면 또 10년을 버티고. 그러면 모든 과에 다 익숙해지는 날이 온다는 수선생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다. 오늘도 우리 병동 20년 차 간호사가 일이 벅차다며 이마를 짚었다.




20년 넘게 근무하는 사람도 벅차하는 일은 반년도 되지 않은 나에게는 폭탄과 같다. 단순히 일이 많다는 문제라면 좋겠다.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근데 인간은 실수를 하고, 나는 실수를 하는, 몸이 한 개인 인간이다. 난 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 내지만, 뒤돌아서면 꼭 실수가 있었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소리를 평을 듣는다. 저연차는 일이 벅차서, 고연차는 그 벅찬 일에 인증 준비까지 하느라 나란히 업무 로딩의 늪에 빠지고 만다.




신규부터 관리자까지의 모든 사람들을 통틀어 정말 단 한 명도 이 일을 하면서 행복하다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이유다.

밥 먹을 시간, 화장실 갈 시간, 물 마실 시간을 줄여도, 출근을 일찍 하고 퇴근을 늦게 하며 일을 더 해도, 단 1초도 쉬지 않고 뛰어다녀도, 결국 욕과 비난만 남는 나의 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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