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아저씨에서 아버지로

그 여름,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by 정우다움

나에게 아버지는

유대감이라곤 없는, 그저 동네 아저씨 같은 존재였다.


가족 간의 정이라 부를 만한 것도 없었고

나는 운동을 하며 집을 떠나 지냈기에

함께 산 시간은 몇 년도 채 되지 않았다.


물론 서로 잘 맞지 않았기에

그 짧은 세월조차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나는 아버지에게서 독립을 했다.


지인에게 30만 원을 빌려

무작정 짐을 싸 고시원에 들어갔다.


그 후로 몇 년간

우리는 완전히 단절된 관계 속에 살았다.



그랬던 부자 관계가

2022년, 어느 이른 여름에 변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속으로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계속해서 연락을 드리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저 있어 보이는 아들이 되고 싶어서였을까.

남들에게 효자인 척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미워했던 그 사람에게라도

사랑받고 싶은 갈망이 있었던 걸까.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버지께 한 달 넘게 연락을 끊었다.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성경을 붙잡고 있었다.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먼저 바꿔야 하는 것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다.”

“땅에서 매인 것이 하늘에서도 매인다.”


그 말씀을 따라

나는 다시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그 통화에서 나는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왔던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우리 사이에는 유대감이 전혀 없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너무 미워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울먹이기 시작했고

결국 눈물을 쏟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정말 많이 외로웠다.


홀로 보낸 시간 속에서

내가 진짜 원했던 건 돈도, 성공도 아니었다.


가족의 온기.

따뜻한 손길.

사랑받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


그것이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울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랑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

나는 오랫동안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좇아왔다.


그건 마치 몸의 어느 기능이 떨어졌을 때

다른 근육을 끌어다 쓰며 버티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런 악순환은 결국

더 큰 손상으로 이어졌다.

내 마음도 점점 더 불균형과 피로 속에

깊이 아파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참을 침묵하시더니

조용히 말씀하셨다.


“고맙다.”

“정말 내 아들이지만 잘 될 것 같다.”

“내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봤을 때도

넌 크게 될 사람이다.”



호킨스 박사님도 말씀하셨다.


“사랑받을 수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 중 하나다.”


나는 그 행운을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게 말할 수 있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그날 이후,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함께 여행도 갈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치유해야 할 감정들이 남아 있지만,

그 여름은 분명히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변화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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