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떠난 바르셀로나. 그 여행은 내 인생의 첫 해외여행이었지만, 나는 마치 일 년에 몇 번쯤 유럽을 다니던 사람인 것처럼 자연스럽고 빠르게 준비를 마쳤다.
대학원에 다니던 친구가 바르셀로나로 학회를 가는데 남자교수님과 둘이 가는 바람에 혼자 방을 쓰게 되었다며 비행기티켓만 끊어서 오라고 했다. 안 갈 이유가 없지. 그렇게 25살의 나는 8박 10일의 바르셀로나 여행을 떠났다.
바스락거리는 하얀 시트의 침대에서 매일 아침 친구와 고데기로 머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바르셀로나는 나에게 머무르는 여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해 준 곳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사그라다파밀리아 대성당을 보았을 땐 탄식이 절로 나왔고, 거리의 미술가들이 람블라스 거리를 더 예술적으로 만들어주었다. 중국인들이 가득했던 구엘공원, 물결이 치는듯한 모습의 카사 밀라는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새로이 알려주었다. 라 보케리아 시장에선 과일을 이렇게 예쁘게 쌓아놓을 수 있구나 하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체리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 그곳, 한국에서 먹었던 생크림 케이크 위에 살포시 올라가 있는 체리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친구의 학회일정과 내 여행일정이 하루가 차이나는 바람에 마지막 하루는 혼자 마무리해야 했다. 한국인 민박집을 알아봐 두었고 친구와 아쉬운 작별을 한 후 숙소를 찾아갔다. 그곳에 있던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한국인, 게다가 여성들이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같이 몬주익 분수를 보러 가자길래 신나게 따라나섰다. 일주일 동안 여행을 했지만 친구와 한 몸처럼 같이 다녔기에 마지막날을 어떻게 잘 보내야 할까 고민하고 있던 차여서 그저 감사했다. 관광명소로 5~6명이 함께 움직이다 보니 분수로 가던 길에 이름도 유명한 소매치기들도 만났다. 다행히 난 앞으로 동여맨 가방의 지퍼가 반쯤 열려있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음악 속에서 화려하게 뿜어내던 몬주익 분수는 황홀했지만, 일산에 산다던 어느 여학생은 호수공원이 100배 더 멋있다고 했다.
숙소로 돌아온 밤, 건축을 전공한다던 21살의 여학생이 광장에 나가서 샌드위치에 맥주 한잔하고 오지 않겠냐고 한다. 오호 횡재라. 마치 동생을 챙기듯 나를 챙기며 버스에 올라타 책을 펼쳐보며 더듬더듬 읽는 스페인어로 버스기사에게 질문하던 그 아이.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여행이란 건 이런 거구나.
한 손엔 기다란 바게트 샌드위치를 들고, 한 손엔 맥주캔을 들고 광장에 걸터앉아 어두워진 길을 바라보았다. 건축을 전공한다던 그 아이는 거의 한 달째 배낭여행 중이며,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러 여기에 왔는데 너무 만족한다고 했다. 건축을 하는 것도 멋있고, 한 달째 혼자 여행을 하고 있는 건 더 멋있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여행이란 바르셀로나의 그것이어야 했다. 뒷골목까지 다 알 것만 같다고 느껴질 때쯤 여행이 끝났다.
스파클링 워터라는 걸 난생처음 마셔보고 '토할 것 같은 맛이군.'이라고 인상을 찌푸릴 때, 나는 몰랐다. 이 여행이 내 삶의 향배를 결정지을 것이며, 내가 영원히 이날들을 그리워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 거라는 걸.
두 달간의 그 여행은 나란 아이의 내면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내 욕망의 지도는 완전히 재편되었다. 나는 세계와 처음 접촉했다. 처음이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미리 경험했다면 놓쳐버렸을 많은 좋은 것들이 두부처럼 무르고 순박한 내 영혼에 쏙쏙 꽂혔다. 나는 가장 좋은 시기에 가장 좋은 것들과 가장 좋은 형태로 만났다. 미리 탕진되지 않은 최초의 절정, 이런 완벽한 조합은 이후로 주어지지 않았다.
< 그저 하루치의 낙담 > - 박선영
나는 아이에게 20대에 꼭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얘기한다. 그때 내가 경험했던, 온몸의 세포가 다 열리는 듯한 느낌을 아이도 꼭 느껴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처음 보는 곳, 처음 먹어보는 것, 처음 만나는 푸른 눈의 사람, 처음 어설프게 내뱉어보는 그 나라의 언어, 처음 마셔보는 노천 맥주. 모든 것에 무지했던 그때의 나라서 더더욱 선명하게 다가온 바르셀로나.
아이에게 그 생경한 황홀함을 선물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