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은 한국말인데

by 심바

결혼 전 꽤 오랜 기간 동안 만났던 사람은 인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내가 느낀 그 사람의 여러 매력 중 하나는 '유창한 서울말'이었다.

나는 서울에 있는 회사에 취직을 하기 전까지 20년도 넘는 시간 동안 경상남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지방사람. 하필 일할 때마다 약간의 방송을 해야 하는 일이었던 터라 내 경상도 사투리는 나에겐 일종의 콤플렉스였다. 마치 외국어를 배우는 자세로 몇 달 동안은 리스닝에 몰두했고, 어느 정도의 임계점에 다다른 후부터는 몇 단어의 '서울말'을 흉내 내며 회사 동기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서울 태생인 남자동기들은 내 경상도 사투리가 참 귀엽다고 했지만 나는 그들의 서울말이 훨씬 귀엽고 달콤했다.




그와 나는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일로 날을 세우고 감정싸움을 자주 했더랬다.

내 기분도 몰라주는 그 사람이 너무 짜증 났던 날이면 입을 꾹 닫고 온몸으로 내가 화가 많이 났음을 표현했다. 그 사람은 다툼의 날 선 감정을 내게 말로 퍼붓고는 했다.


말에는 뉘앙스라는 것이 있다.

< 음색, 명도, 채도, 색상, 어감 따위의 미묘한 차이. 또는 그런 차이에서 오는 느낌이나 인상 >

나는 경상도 사투리를 들으면 단어 뒤에 보일 듯 말 듯 숨어있는 뉘앙스를 파악할 수 있다. 20년이 넘게 듣고 살아온 말이기 때문 일터.


나는 날 선 그의 서울말에서 그 어떤 숨은 뉘앙스도 캐치할 수 없었다. 차갑게 쏘아붙이는 말투가, 마치 내일부터 더 이상 보지 않을 듯이 쏟아내는 비난의 말이 순도 100%의 글자 그 자체가 심장을 찔러댔다. 저 말이 모두 다 저 사람의 오롯한 진심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헤어져야 했다. 어떤 뉘앙스도 느낄 수 없는 서울말은 나에게 공포였다.






내 남편은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다. 아이들은 서울에서 태어나 고향이 서울이고 당연히 서울말을 쓰지만 우리는 빈번하게 사투리로 대화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싸울 때는 꼭 사투리를 쓴다. 감정이 격해지면 본능과 가장 가까운 무언가 들이 내 안에서 튀어나오기 때문인가. 이젠 싸운다고 해서 특별히 많은 말이 오가지도 않지만, 적어도 남편의 '사투리로 말하는 비난 혹은 힐난'속에 들어있는 뉘앙스는 99.9% 알아차릴 수 있다. 저 말에 2g 정도의 미안함이 들어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얼마나 안정감을 주던지...


열린 귀와 마음으로 다 같은 한국말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편협함은 아닌가 반추해 본다.

이젠 20년 가까이 서울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누가 서울말로 내게 다다다다 화를 내면 나는 아직 좀 무서울 것 같다.

아, 반대 상황이라면 서울 사람은 더 무서울 수도 있으려나. 경상도 억양이 제법 강하지,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