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하여 '산책달'.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놓았더니 이렇게 예쁜 이름이 탄생했다. 두 번의 청계산 등산을 시작으로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기로 한 우리 넷. 이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얘기를 나누다 생각보다 금방 만든 우리 모임명은 산, 책 그리고 달리기를 모은 것이다. 이름에 걸맞게 모임은 꼭 어떤 형태의 운동이든 적어도 하나는 해야 한다는 셀프조항도 덧붙였다.
오늘은 '산책달'의 세 번째 모임, 5km를 같이 달리기로 했다.
네 명 모두 마라톤 대회 출전의 경험이 있다. 막내는 가장 최근에 인생 최초로 참가한 10km 마라톤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참이었다. 지난 청계산 등산 때 너도나도 대회 때 준비해야 할 것들이며, 업힐 다운힐을 맞이하는 자세며, 컵을 움켜쥐는 방법까지 저마다의 노하우를 대방출했다. 첫 대회의 긴장감이 나에게까지 생생히 전해졌다. 나는 달리기만 해도 버거웠던 기억인데, 막내는 우리의 '널 위한 잔소리'들을 제법 소화해 대회날 기억하고 실행도 해본 모양이었다. 아유, 대견해.
사실 오늘은 수영을 하기로 약속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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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든, 동네 수영장이든 1일권으로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을 검색해 보고 몇 군데 전화를 돌려봤지만 투숙객에게만 개방되거나 새벽시간에만 자유수영이 가능한 곳들뿐이었다. 아쉽지만 함께 수영하기는 내년으로 미루고 대신 한강 달리기를 한 후 맛있는 갑오징어 점심코스로 변경했다. 절대 운동을 하지 않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도 없었다.
새벽 5시. 밖에 나가보니 비바람이 제법 거세다. 비 예보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고, 우중런이라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지만 모였을 때도 이런 날씨라면 감기몸살로 직행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예보상 비는 아침 8시에 그쳐 그 이후론 구름이 낀다고 했다.
'다행이에요, 비는 더 오지 않을 것 같아요!'라고 안심의 카톡을 보냈다. 걱정 말고 그냥 오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을 담아. 막내는 제발 비가 오라고 빌며 일어났다고 했다. 하하하하하. 우리 사전에 약속 취소는 없어.
전날까지 아무도 말이 없어도 '우리 내일 만나요, 안 만나요?' 하고 묻지 않는 사이. 담백한 것이 참 좋다.
잠수교를 지나 한강변을 달려 동작대교로 돌아와 5km 정도를 뛰는 오늘의 코스. 적당히 체조를 하며 몸을 풀고 천천히 달리기를 시작했다. 오늘은 다 같이 발을 맞추어 느리게 달리고 싶었다. 수분을 한껏 머금은 한강변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벌써 달리기를 시작한 지 1년 하고도 반이 지난 친구가 선두에서 페이서를 해주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간격을 유지해 가며, 흡흡 후후 숨도 발에 맞춰 쉬어가며 달렸다. 어슴푸레 나온 해를 껴안아 윤슬에 반짝이는 한강이 보이면 잠시 멈춰 사진도 찍어가며 달리는 이 시간을 저장했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당신의 노래는 왜 그렇게 평범하냐"라는 질문에 김창완은 이렇게 대답했다.
"일상이라는 게 얼마나 불안하냐, 해가 매일같이 동쪽에서 떠야지, 오늘은 동쪽에서 뜨고 내일은 서쪽에서 뜨면 불안해서 살겠냐." 그의 말을 듣고서 그의 노래를 들으니 정말 그러했다.
< 호의에 대하여 > - 문형배 -
같은 것을 좋아하고 나누는 사이. 서로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 기울일 수 있는 사이. 우리의 이 만남이 귀한 이유는 각자의 삶 속 이 작은 틈새의 모음들이 제 몫을 열심히 살아내는 동안 잠시 들여다볼 수 있는 만화경 같아서가 아닐까. 이렇게 만날 때마다 반짝이는 순간들을 그러모아 담아놓고 두 손 모아 바라보는.
아주 특별한 일도 없이, 전해야만 하는 슬픈 소식 없이 이렇게 일상을 함께 누리고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이 곁에 있어 새삼 감사하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게 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