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짝궁
며칠째 눈이 내렸다.
온 세상이 하얗게 잠들어 있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4일째 되던 날, 변호사가 찾아왔다.
“김지영 양, 모든 서류는 명의변경 되었읍니다.”
탁자 위에는 통장과 등기부등본, 그리고 7층 건물의 소유권 증서가 놓여 있었다.
나는 16살, 중학교 3학년 김지영이다.
내가 사는 곳은 K광역시에서 차로 40분쯤 떨어진 산골 목장이다.
세상과는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모든 상속은 내 앞으로 넘어왔다.
이곳에서 지낸 지 열흘째 되는 날, 작은아버지가 목장으로 찾아왔다.
검은 양복 차림으로, 직접 차를 몰고 오셨다.
그의 눈빛은 차가웠다.
마치 ‘네가 죽었어야 했는데’라고 말하는 듯했다.
“작은아버지, 오셨어요.”
“그래… 건강하니 다행이구나.”
짧은 인사만 남기고 떠났다.
그날 이후, 나는 혼자 목장을 걸었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트럭 세 대, 검정 승용차 한 대, 오토바이 세 대, 그리고 말 두 마리이다.
이 모든 것이 이제 내 것이었다.
‘날이 풀리면, 저 말을 타봐야지.’
그날부터 나는 집을 손보기 시작했다.
흰색 페인트를 칠하고, 오래된 집기를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었다.
아버지가 쓰시던 방도 내 방으로 바꾸었다.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고, 화장실은 신식으로했다.
마당엔 조경도 새로 손봤다.
3월 2일, 학교에 가는 날이었다.
그때는 교복 자율화 시절이라 학생들은 모두 사복을 입었다.
아침식사 후, 머리카락에 살짝 웨이브를 주고 투피스 정장을 입었다.
코트를 걸치고 핸드백을 들었다.
할아버지가 기다리는 차에 올랐다.
학교까지는 4km, 비포장도로였다.
교무실 앞에는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서 있었다.
내가 내리자 교장이 나를 이사장실로 안내했다.
그곳엔 작은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나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중3 학생이 옷이 그게 뭐냐?”
“서울에서는 다 이렇게 입어요. 촌스럽게 왜 그래요, 작은아버지.”
교장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데려갔다.
선생님들이 모두 나를 바라봤다.
나는 또렷하게 인사했다.
“3학년 1반 전학생 김지영입니다.”
그리고 말했다.
“학교 운영에 필요한 것 있으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교장은 순간 말이 막힌 듯 고개만 끄덕였다.
“오늘 중으로 학교 보수할 곳 목록 주세요. 다 해드릴게요.”
“네… 아가씨.”
담임 선생님은 민 선생님이었다.
내가 악수를 청하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교실로 들어가니 내 자리는 남학생 옆이었다.
“안녕, 난 김지영이야.”
그가 수줍게 웃었다.
“나는 최선민이야… 잘 지내보자.”
그렇게 우리는 짝이 되었다.
2주 동안 함께 지내며 금세 가까워졌다.
나는 담임에게 말했다.
“검정고시를 볼 생각이에요.”
3월 20일, 나는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담임은 “수업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
학교 의자와 책상을 전부 새것으로 바꾸고, 야외 화장실도 고쳤다.
점심은 늘 집에서 할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이었다.
선민이와 둘이서 먹었다.
그의 할머니는 편찮으셨고,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이 사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말에 선민이가 목장에서 일할수 있도록 해주었다.
소똥을 치우고, 사료를 주는 일이다.
즐거워 하는 친구를 보면 나도 즐거웠다.
6월, 장마가 시작될 무렵이다.
고등학교 검정고시에도 합격했다.
학교에선 이사장실로 출근하듯 등교했다.
작은아버지도 이제 내게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
교직원 급식을 새로 시작했다.
40명 분의 점심 비용은 전액 내가 부담했다.
여름 내내 선민이는 목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토바이도 하나 사주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무슨 일 있어?”
“…할머니가 아파.”
“병원은?”
“돈이 없어서…”
할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렸다.
“선민이 할머니 병원에 입원시키세요. 비용은 제가 낼게요.”
"네 아가씨."
결국 암 판정이었다.
3개월 뒤,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장례를 도와주었다.
“지영아, 이 돈은 내가 갚을게.”
“아니야, 괜찮아. 대신 졸업하면 우리 목장에서 일해줘. 고등학교 검정고시도 도와줄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가족이었다.
시간이 흘러, 11월이 되었다.
선민은 목장 숙소에서 생활하며 일했다.
몸은 점점 단단해졌고, 키는 170cm를 넘었다.
할아버지는 그를 위해 운동기구를 사주었다.
목장은 이제 소 250마리로 줄었고, 인부는 선민을 포함해 네 명이었다.
할아버지는 내 비서가 되었고, 우리 넷은 진짜 가족처럼 지냈다.
겨울이 왔다.
우리는 시내로 쇼핑을 나갔다.
할아버지, 할머니, 나, 그리고 선민.
졸업을 앞둔 선민에게 옷을 사주고, 나이키 운동화도 선물했다.
7층 내건물 1층에 스포츠매장이 있다.
목장 2층은 숙소로 새로 단장했고, 선민이 혼자 쓰게 했다.
그러던 겨울 어느 날, 작은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병원에 달려가니 수술이 끝나 있었다.
힘겹게 내 손을 잡았다.
“지영아…”
“네, 작은아버지.”
“이제 네가 이사장직을 맡아라… 나는 더는 움직일 수가 없구나.”
“아니에요, 얼른 일어나셔야죠…”
하지만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나는 이사장 직무대리가 되었다.
12월 23일, 잊지 못할 날이었다.
교장과 교감 네 명이 내 앞에 앉았다.
“이사장님, 학교 교원 충원을 해야 합니다.”
“몇 명이요?”
“네 명입니다.”
“학교 발전기금은?”
“…700만원입니다.”
“그 돈은 어디에 쓰죠?”
교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일단 관행대로 하세요. 내일 저녁에 면접 보겠습니다.”
“네, 이사장님… 감사합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것이 사립학교의 현실이었다.
원치 않아도, 나는 세상의 중심으로 떠밀려 나왔다.
하지만 내 옆엔 늘 최선민이 있었다.
그의 웃음을 보면 행복했다.
내가 의지하는 유일한 친구였다.
어쩌면…
그게 내 운명의 짝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최선민과 김지영의 운명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