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 여선생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가뿐하고 좋다.
창밖을 보니 선민이가 달리기를 하고 있다.
역기를 들고 달리기까지 하는 걸 보니, 운동이 생활인 사람이다.
언제부터인가 선민이는 집에서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
노부부 역시 나와 함께 먹지 않는다.
나 때문인지, 나와의 거리감 때문이다.
본인들이 불편하다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침은 우유와 토스트 정도로 나 혼자 해결한다.
오후 네 시가 되자 할아버지와 약속 장소로 출발했다.
교장이 일식집으로 예약을 해두었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좋다.
시내는 크지 않고 한적하다.
아마도 여기서는 제일 깨끗하고 비싼 집일 것이다.
아직 한국은 개발이 덜 된 상태, 말 그대로 개발도상국이다.
식당에 들어가니 모두 일어나서 나를 반겨준다.
내 앞에는 신입 선생들이 앉아 있다.
중학교 선생 두 명, 고등학교 선생 두 명이다.
이력서를 보니 여자들은 대학을 갓 졸업했고, 남자들은 군대 전역 후 바로 온 사람들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당시 군 복무는 36개월이었다.
유독 눈에 띄는 여자 선생이 있었다.
이력서를 보니 23살이다.
맑은 피부에 귀엽고 청순함이 섞인 미모였다.
고향이 바로 이곳이라 한다. 내 건물에서 십 분 거리이다.
과목은 영어다.
“교장선생님, 그대로 추진하셔요. 술 한잔 하시게요.”
소주를 시원하게 한잔 들이켰다.
식사가 끝나자 교장과 교감은 먼저 일어났고,
남은 넷이 호프집으로 향했다.
결국 영어 선생만 남았다.
시간은 밤 9시.
아직 나도 내 성향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옆의 영어 선생 손을 잡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이사장님, 술 많이 드셨는데 저희 집에서 주무시고 가세요. 바로 옆이에요.”
“그래요.”
할아버지는 보내고, 둘이서 열심히 술을 마셨다.
소주에 양주까지 섞으니 안 취할 수가 없었다.
나는 취했지만, 영어 선생은 분명 멀쩡했다.
집에 도착하니 2층 주택이었다.
영어 선생의 아버지가 반겨준다.
방으로 들어오자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새벽이다.
속옷만 입은 채 잠들어 있었다.
옆에는 입으라고 놓인 잠옷이 보인다.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가, 방안을 둘러본 뒤 거실로 나왔다.
영어 선생이 자고 있었다.
그녀가 눈을 뜨더니 말했다.
“일어나셨어요?”
“담배 하나 피울라고요.”
“여기서 피우세요.”
창문을 열며 불을 붙여준다.
2층에서 잔 것이다.
오늘은 성탄절이었다.
특별히 교회에 갈 일은 없다.
담배를 깊게 들이마시니 속이 확 풀렸다.
여자들의 수다는 새벽에도 끝나지 않는다.
“사우나 가실래요?”
“네.”
집 근처 사우나에서 원없이 물놀이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오전 8시였다.
아버지는 출근하시고, 콩나물 해장국이 아침상에 올려져 있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건설현장에서 일하신다고 했다.
집 한 채가 전 재산이라고 한다.
대학 공부시키느라 아버지가 애를 많이 쓰셨다고 했다.
여기는 전남 나주이다.
영어 선생은 키가 크고 미모가 참신했다.
점심을 같이 먹고 시내로 쇼핑을 나갔다.
내가 고른 옷을 권하니 얼굴이 빨개졌다.
“이사장님, 저 시집도 안 간 아가씨예요.”
“나도 아직 시집 안 갔어요.”
둘 다 웃었다.
수수한 그녀에게도 옷과 구두를 선물했다.
저녁은 집에서 그녀의 아버지와 셋이 함께 먹었다.
밤 여덟 시쯤 되자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왔다.
며칠 뒤 해돋이를 보러 목장에 오겠다고 했다.
하룻밤 자고 갈 거라 했다.
집에 도착하니 밤 9 시.
샤워를 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오전은 집에서 푹 쉬었다.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다음날 학교에 출근해 신입 선생들 서류를 검토하고, 교장에게 서명해 주었다.
1년 계약직이며 발전기금 700만 원을 납부하면 1년 뒤 정식 임용이 된다는 조건이었다.
며칠 뒤, 눈이 내리는데 선민이가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옷을 벗고 뛰는데 제법 근육이 잡혀 있다.
내가 마당으로 나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선민이, 멋지다! !”
그는 웃으며 더 힘차게 달렸다.
며칠 후, 점심때 영어 선생이 찾아왔다.
타이트한 청바지에 코트를 입고 있었다.
아직 어려서인지, 참 예뻤다.
오후엔 춥지만 바람이 없어 목장을 구경시켜 주었다.
젖소들을 보며 그녀는 소녀처럼 좋아했다.
우리는 자매처럼 손을 잡고 걸었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걸었다. 50만 평 전부는 다 둘러볼 수 없었다.
그녀는 이렇게 큰 목장은 처음이라며 연신 감탄했다.
저녁은 할머니가 준비해 주셨다.
양주 한잔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도 외로운 여자였다.
다음날, 신입 선생 세 명이 저녁에 집으로 왔다.
내가 초대한 것이다.
밤새 고기를 구워 먹고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여기는 시골이라 대부분 면사무소 근처에서 자취나 하숙을 한다.
영어 선생도 자취 할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묻지 않았다.
선생들은 내가 16살이라는 걸 모른다.
교장에게 신신당부를 해두었다.
영어 선생은 5일을 내 집에서 지냈다.
새해를 여기서 보냈다.
이제 열일곱 살이 되었다.
선민이 운동하라며 철봉과 평행봉을 만들어주었다.
목장 일은 할아버지가 알아서 하고, 나는 학교로 매일 출근했다.
1년을 여기서 보내며 느낀 게 있다.
나는 돈놀이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사채 말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꾸 하고 싶어진다.
‘내가 왜 사형을 당했을까?’
많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사채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런데도 마음속엔 늘 돈놀이에 대한 욕망이 피어난다.
통장에는 매일 돈이 들어오지만, 찾지 않는다.
아버지가 남겨준 금고에는 현금 2억 원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1월이 끝나갈 무렵, 영어 선생이 자취방으로 초대했다.
학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였다.
그때는 방 하나에 연탄을 때는 것이 최고의 자취방이었다.
할머니가 만들어준 반찬 몇 가지와 살림살이를 들고 갔다.
가 보니 기와집에 안채와 별채가 있고, 자취방이 7개였다.
선생들과 공무원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화장실은 불편했다. 남녀가 따로 붙어 있는 공동화장실이었다.
“이사장님, 앞에 삼겹살집 맛나 보여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그래요.”
둘은 손을 잡고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면에는 삼겹살집이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녀가 고기를 정성스레 구워 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소주 한잔씩......
주인이 말했다.
“이사장님, 술 잘 드시네요. 젊으신데 어디서 배우셨어요?”
“아버지는 술도 안 드시는데요.”
“아버지 잘 아세요?”
“그럼요. 우리 집 단골이에요. 작은아버지랑 자주 오셨죠.”
그렇게 소주 한 병씩 나눠 마시고, 둘은 자취방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둘이 꼭 껴안고 자고 있었다.
연탄불이 꺼져 있었다.
그녀도 내 가슴처럼, B컵쯤 될 것 같았다.
면에는 사우나가 없었다.
할아버지에게 전화해 목욕물 받아 놓으라 하고, 데리러 오라 했다.
부시시하게 일어나 집으로 돌아와 둘이 욕조에 몸을 담갔다.
황태탕으로 점심을 함께 했다.
내가 산 속옷, 포장도 뜯지 않았는데 맞을 것 같아서 세 세트를 선물했다.
그렇게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사실 그녀도 내가 16살인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했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코드’였다.
봄이 되자 네 명의 신입 선생들이 출근을 했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잘 지내봅시다.”
“네, 이사장님.”
시골 학교라 그런지, 도시에서 온 신입 선생들의 복장에 학생들의 시선이 쏠렸다.
영어 선생은 내가 골라준 치마를 입고 왔다.
봄이 완연해지면서, 나 역시 이 시골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갔다.
무엇보다 중·고등 여학생들이 내 옷차림에 유난히 관심을 보였다.
짧은 미니스커트와 타이트한 셔츠때문이다.
그 과감한 차림이 학생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어느 날, 고등학교 여학생 하나가 다가와 수줍게 말했다.
“이사장님, 탤런트 같아요.”
“고맙다.”
아이들 눈에는 내가 정말 연예인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그 영향인지 여학생들의 치마 길이도 점점 짧아졌다.
남학생들의 눈빛은 사춘기 특유의 묘한 빛으로 변해갔다.
그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어쩐지 이상하게 성숙한 존재로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