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쓴 편지
1979년 12월 12일, 이른바 '12·12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은 내 인생에 있어 치명적인 충격이었다.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중정 안가에서 권총으로 살해한 사건이었다.
사건 직후, 최규하 대통령이 형식적으로 국가를 이끌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두환이 정권을 장악한 뒤, 1980년 대통령직에 올랐다.
이는 명백한 군사 쿠데타였으며, 정권이 18년 만에 교체된 순간이었다.
이후 수많은 기업들이 숙청과 압박의 대상이 되었다.
중앙정보부는 더 이상 과거 나의 친구가 아니었다.
그들은 나의 숨통을 조여오는 존재로 바뀌어 있었다.
그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유혈 사태로 마무리된 뒤,
정권은 나에게 극심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여름이 저물 무렵,
나는 안양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죄명은 셀 수 없이 많았고,
구체적인 설명조차 허무할 지경이었다.
아내와 김 비서는 매일같이 면회를 왔다.
그러나 나는 일주일에 한 번만 오도록 권유했다.
김 비서만이 업무 보고 차, 아침마다 한 차례 면회를 이어갔다.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정권은 가족 면회마저 차단시켰다.
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철저한 고립 작전이었다.
결국 중앙정보부 요원이 면회를 요청해왔다.
그들 또한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내가 성장해온 걸 알고 있었기에,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흥정 수단이라는 것을 나는 직감했다.
그들은 세 차례 면회를 왔고,
그 이후 3개월간 어떤 면회도 허용되지 않았다.
감옥살이 넉 달째였다.
김 비서와 아내는 석방과 면회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으나,
모든 시도는 허무하게 돌아갔다.
그들은 나를 굴복시키기 위해 고립을 지속하고 있었다.
나 역시 내 돈이 모두 정당하게 벌어진 것만은 아니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중정은 어떤 협상조차 시도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협박의 수순을 밟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7년 단임제 대통령이었다.
장기집권을 꿈꾸었고, 재임을 위한 준비를 이미 시작한 상태였다.
그 계획에는 막대한 선거 자금이 필요했을 것이다.
변호사 역시 열심히 움직였으나, 정권의 압박은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나는 확신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스스로 체면을 걸었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 나의 여인이여.
당신을 만난 것은 하늘이 내게 허락한 축복이라 믿습니다.
당신을 만난 단 한순간도, 후회한 적 없었다고 말입니다.
나는 신 앞에 맹세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처음 저녁을 차려주고,
내 차를 타고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꽃다운 스물일곱,
그 젊은 나이에 여섯 달을 과부처럼 홀로 지내게 한 것이 얼마나 미안한지요.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여섯 달은 오히려 당신을 더 그립고 애틋하게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아내처럼 내 넥타이를 매만지고 식사를 챙겨주던 당신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때 내가 좀 더 일찍 청혼했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우리가 함께한 6개월,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지요.
사실 우리가 동거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
저는 당신에게 청혼하려고 반지를 준비했었습니다.
하지만 하늘나라로 간 아내가 생각나, 감히 입을 열 수 없었습니다.
그때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나의 첫 사랑 사유리,
나의 아내 사유리가 내 기억 속에서 천천히 멀어질 때까지 기다리자고.
그 기다림이 결국 6개월이 된 것입니다.
이제서야 당신께 처음 고백합니다.
지금 수감된 지 넉 달이 되었습니다.
곧 석방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 감옥의 시간은 오히려 우리 가정을 더욱 단단하게 해주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당신과 내가 함께하는 날들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거라 확신합니다.
지금까지의 시간보다,
앞으로 함께할 시간 속에서 당신을 더 깊이 사랑할 것입니다.
당신을 만난 것은 우주보다 더 큰 감동이며,
신이 허락하신 축복의 순간들이었습니다.
당신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꿈을 꾸는 듯 행복했고,
당신의 손을 잡을 때면 마음이 고요히 잠들었습니다.
혹여 신이 우리 중 한 사람을 먼저 데려가신다면,
남은 사람은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을 간직하며 살아갑시다.
그리고 욕심일지 모르지만,
우리 앞으로 백 년만 더 함께 살아요.
눈을 감으면 당신이 떠오르고,
잠들면 꿈속에서도 당신이 나타납니다.
나는 선미 당신에게 중독된 사람처럼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행복이라면…
영원히 이 안에서 살고 싶습니다.
석방되면 함께 바다를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날이 새도록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눈이 내려 더 아름다운 이 밤에, 영원한 나의 여인에게…
선미 씨, 당신을 영원토록 사랑합니다.
– 당신의 영원한 사랑으로부터-
그 편지는 교도관을 통해 전달되었다.
일주일 후,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나를 승용차에 태우고 복면을 씌운 채 어디론가 데려갔다.
한 시간가량 이동한 듯했고,
차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간 뒤 철문 소리를 지나 주차되었다.
두 남자가 나를 끌고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쇼파에 앉히고 복면을 벗기니, 눈이 부셨다.
그곳은 바로 남산 중앙정보부였다.
한 남자가 다가와 담배에 불을 붙여 내 입에 물려주고,
수갑을 풀어주었다.
새정권이 들어선 이후,
정보부 인사들 중 절반 이상이 교체된 상태였다.
이 남자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나는 말을 아끼고,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더는 피울 수 없었다.
잠시 후 다른 남자가 들어와 명함을 건넸다.
“대북 담당 김○○ 차장입니다.”
나는 묻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말했다.
“나를 여기에 데려온 이유가 뭡니까?”
그는 웃으며 말했다.
“회장님께서 더 잘 아실 텐데요.”
“글쎄요, 나는 잘 모르겠소.”
남자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회장님 하시기에 따라, 그룹이 살 수도, 망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물었다.
“얼마를 원하오?”
그는 망설이며 계산하는 눈치였다.
내가 먼저 말을 이었다.
“오천억을 선거자금으로 스위스 계좌에 입금하겠소.
또 모든 기업들 중 내가 가장 많이 어르신께 정치자금을 드릴 것이오.”
“가장 많이라면, 얼마를?”
“오천억을 먼저, 그리고 올 연말까지 오천억 추가로... 총 1조원이오.”
그는 놀란 듯 물었다.
“회장님이 원하시는 건 무엇입니까?”
나는 말했다.
“전국적으로 추진 중인 아파트 건설에 장애가 생기지 않도록 정리해주시오.
서울시 지하철 공사, 전자·통신 분야는 독점권을 주시오.
그렇다면 어르신의 임기 동안, 내가 가장 큰 성의를 보일 것이오.
그리고 중정에도 따로 서운하지 않게 인사드리겠소.”
그는 말없이 나가더니, 30여 분 뒤 새로 부임한 중앙정보부장이 들어왔다.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우리, 좋은 사업 파트너가 되어봅시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각서를 쓰고, 서명했다.
“그럼 오늘 집으로 갈 수 있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은 당신이 해준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요.”
아내는 울면서 기뻐했다.
중앙정보부 사우나실에서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면도와 이발을 했다.
시간을 보니 오후 4시.
밖에 나오니 김 비서가 직접 운전해서 혼자 나를 마중 나와 있었다.
그녀도 나를 보자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를 안으며 말했다.
“울지 마라. 집에 가자.”
“네, 회장님.”
그날은 1981년 1월.
남산의 길은 눈으로 덮여 있었고, 숲은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4개월 반 만에 자유의 몸이 되었고,
언론에 구속 소식은 단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군사정권의 방식이었다.
집 앞에 도착하니, 아내와 아들을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아들을 번쩍 안아 들었다.
그리고 김 비서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 계열사 회장들 모두 모이라고 전하시오.”
김비서는 돌아가고 셋이 김치찌개에 저녁을 먹고나서 ...
아내가 하는 말이 당신 편지 받고 밤새 울었어요..
아내의 가냘픈 허리를 꼭 않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