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1981년, 나의 러닝메이트 안기부
아내가 정성스레 차려준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서니, 김 비서와 수행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겨울 아침답게 공기가 차다. 하지만 감옥살이를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이 천 배,
만 배는 더 행복하게 느껴진다.
징역살이는, 사람이 있을 곳이 못 된다. 두 번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
아내와 아이를 품에 않아주고나서 차에 올랐다.
가는 길의 풍경은 몇 달 사이 많이 달라진 듯 보였다.
하지만 실상, 달라진 것은 풍경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마음뿐이었다.
회사 앞에 도착하니, 나의 손끝에서 탄생한 50층짜리 빌딩이 우뚝 서 있다.
그 빌딩을 올려다본 뒤, 현관 앞 벤치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몇 달 만에 자유의 몸으로 피우는 담배.
첫 모금을 깊이 들이마시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장실에 들어서자, 비서진들이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시간은 오전 8시 40분.
김 비서에게 회의를 9시 30분으로 연기하라 지시하고, 재무이사를 불렀다.
둘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니, 시작이라기보다 이미 내려진 결정을 통보하는 자리였다.
나는 그에게 K항공의 매각 결정을 전했다.
K항공은 오늘날의 00항공이다.
재무이사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회장님, 국적 사업인데… 손실이 상당할 것입니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지금 손실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한 달 안에 5천억 원을 입금해야 합니다.
손익을 따지지 말고, 그 가격에 매각하십시오.
부족한 금액은 내가 메울 테니, 날을 새서라도 매각을 마무리하시오.”
“네, 회장님.”
그날 오후 사장단 회의에서 K항공의 매각을 공식 통보했다.
한마디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시작이었다.
한 개 계열사가 빠졌다고 해서, 그룹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15일 뒤, 스위스 은행에 5천억 원을 입금했다.
매각 대금 중 약 1천억 원이 남았다.
이제 나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바로 ‘칼라 TV 시장’이었다.
전국에 아파트가 들어서며 냉장고,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삶의 질이 높아지자, 자동차 수요도 자연히 따라 증가했다.
그 당시, 통신 수단은 유선 전화기뿐이었다.
미국과 비교하면 너무나 낙후된 나라.
1981년, 핸드폰은 존재하지 않았다.
상류층 일부만 ‘카폰’을 사용할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직감하고 있었다. 미래의 통신 시장은 엄청난 부를 낳을 것임을.
정부 사람들은 대부분 군 출신이었기에, 그런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
나는 무선통신 독점권을 따냈다.
적어도 향후 7년은, 안전하게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었다.
그 후의 시장은, 이들조차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폭발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수원에 30만 평의 땅을 매입하고 전자회사를 세웠다.
논밭을 갈아엎고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이곳은 훗날 ‘한국 반도체 산업의 심장’이 되는 곳이다.
건설, 자동차, 통신—모두가 효자 업종이었고,
선박 역시 수익을 안겨주는 산업이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보유한 인물이 되었고,
정부에 가장 많은 상납을 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또 하나의 대형 계약은, 서울 지하철 공사였다.
한강 다리 15개, 정부종합청사를 포함한 수많은 대형 건축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아파트는 이미 전국 곳곳에서 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1981년 12월, 또다시 5천억 원을 비자금으로 스위스 은행에 입금했다.
국가안전기획부에는 수백억 원을 박스에 직접 전달했다.
그해, 중앙정보부는 명칭을 ‘국가안전기획부’로 개명했다.
통칭 ‘안기부’라 불렸지만, 실질적인 역할은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정리하자면,
1963년 박정희의 5.16 군사혁명으로 김종필이 창설한 ‘중앙정보부’는, 전두환 정권에 의해 1981년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화폐 가치는 요동쳤고, 물가는 말도 못 하게 치솟았다.
아내와 내가 보유한 부동산만 해도 수천억 원에 달했다.
표현조차 어려운, 상상조차 못 할 자산.
감옥살이가, 내 인생에 대반전의 기회를 선물한 셈이다.
위기가 곧 기회였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지만, 병원에 여러 번 다녀도 둘째는 생기지 않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명의들을 다 찾아가고, 좋은 약도 다 먹여 보았지만…
결국 1983년, 아내는 나와 아이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말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그리고 한없이 울었다.
신이 있다면, 왜 나에게 이토록 가혹한 시련을 주시는가.
어머니, 사유리, 그리고 지금의 아내까지… 모두 병으로 내 곁을 떠났다.
아내가 떠난 뒤, 나는 두문불출했다.
10여 일 동안 출근하지 않았다.
업무는 김 비서를 통해 지시했고, 매일 밤 술에 취해 있었다.
김 비서는 그런 나를 그저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어느 날, 밤새 술에 취해 깨어보니 오전 11시.
옆에는 아이와 김 비서가 말없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를 보는 순간, 나는 그를 끌어안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샤워를 마친 뒤, 다시 출근을 결심했다.
그때 내 나이, 쉰셋이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김 비서가 손수 김치찌개를 끓여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저녁을 차려주는 그 모습에, 고마움이 북받쳤다.
“내가 같이 소주 한잔 할까?”
그녀는 말없이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한 잔 따라주었다.
그리고 자작으로 한 잔을 따르더니, 단숨에 들이켰다.
나 역시 묵묵히 한 잔을 비웠다.
“내일 출근하실 거면, 밤새 같이 마셔드릴게요.”
나는 말없이 그녀에게 소주를 따라주었고, 우리는 단 한 마디도 없이 술을 마셨다.
그 적막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각 두 병씩을 비우고 나니, 밤 11시가 되었다.
“나 자러 갈게.”
침대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내가 떠난 후, 매일 새벽 5시에 하던 운동도 멈춘 지 오래였다.
운동복을 입고 거실에 나와보니,
김 비서는 어젯밤 그대로의 옷차림으로 소파에 누워 있었다.
잠든 듯 보였지만, 사실 자지 않고 깨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방에서 조용히 이불을 가져와 그녀에게 덮어주고 마당으로 나섰다.
한 시간 가량 운동을 마친 뒤 돌아오니,
김 비서는 샤워를 마친 젖은 머리로 아침 식사를 준비 중이었다.
말은 없었지만, 모든 것이 전해졌다.
“너도 같이 해장하자. 앉아.”
우리는 나란히 앉아, 아침식사를 했다.
“8시에 출발하자.”
“네.”
나는 옷을 차려 입고, 아이를 품에 안은 채, 가사 도우미에게 당부했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자,
김비서가 다가와 넥타이를 다시 매어준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김비서와 함께한 세월이 벌써 20년이 넘었다는 것을.
아내보다도 먼저 만난 사람.
내가 일본에서 막 귀국했을 김포공항에서 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고 곁을 지킨 유일한 사람이다.
그녀는 아직 미혼이었다.
나는 매일 출근을 하지만, 솔직히 열정은 없다.
총수가 무너진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 출근할 뿐이다.
퇴근 후에도 김비서와 단둘이 저녁을 먹는다.
가볍게 반주로 소주를 곁들이며 말이다.
퇴근하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는다.
김비서는 저녁을 함께한 후 아이와 놀아주고, 어느새 밤 10시가 된다.
차마 "이제 집에 가라"고 말할 수 없었다.
자연스레 아이방에서 함께 잠을 자게 되었고,
아이 역시 엄마의 빈자리를 김비서에게서 채워가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니,
어쩌면 어머니보다 더 익숙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죽은 아내에 대한 기억도 점점 희미해졌다.
아니, 솔직히 말해… 이제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기업인 모임은 여전히 참석하지 않았지만,
안기부 월례회는 빠지지 않았다.
내가 주최하는 자리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날도 요정에서 열 명 남짓의 중정 요원들과 정치인들이 모여 술자리를 가졌다.
안기부장이 말했다.
“전 회장, 오늘은 밤새 함께 하시지요. ”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다른 이들도 말을 보탰다.
“전 회장 가시면, 저도 가겠습니다.”
술자리는 빠르게 무르익었고, 각자 방으로 흩어져 들어갔다.
그녀는 조용히 내 옷을 받아 들며 말했다.
“목욕물 받아 놓을게요.”
술을 과하게 마신 탓에,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자 긴장이 스르르 풀리며 몽롱해졌다.
그녀는 20대 중반쯤 되어 보였고, 신이 창조한 완벽한 몸매였다.
날렵한 허리선과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곡선들.
내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졌다.
그리고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뜨니 새벽 3시 30분.
이런 외박은 내 생애 처음이었다.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4시가 가까웠다.
나는 그녀에게 10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나오지 말고, 더 자요.”
요정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내 차 운전석에는 기사가 아닌, 김비서가 앉아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김비서는 말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가는 내내 차 안은 얼음장처럼 침묵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좀 전에 함께 계셨던 분, 마음에 드셨으면… 또 한 번 자리 마련해드릴까요?”
나는 단호히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
그렇게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눕자, 아까 만난 여인의 얼굴이 스치듯 떠올랐다.
솔직히 말해,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이 다가온 건… 내 안의 공허함이었다.
그대로 잠이 들었고, 눈을 뜨니 일요일 오전 10시였다.
아이는 주말이라 외할머니 댁에 보낸 상태였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창문을 열고 있는데, 김비서가 다가왔다.
“회장님, 전화입니다.”
일요일 아침에?
“누구지?”
그녀는 말없이 수화기를 건넸다.
전화를 받자, 어제 요정에서 만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수표에 집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점심 먹자”고 했던, 내 말.
눈을 감고 한참 망설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차 보낼게요. 우리 집으로 와요.”
여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제가 운전해서 12시까지 갈게요.”
“그래요.”
"말은 문서보다 정확해야 한다는것이 나의 평소 생각이다."
이미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되돌릴 수 없었다.
그 순간, 김비서의 얼굴을 보았다.
담담하게 말했다.
“두 분 드시게 해장국 준비해놓겠습니다.”
그리고 정오, 벨이 울렸다.
어제의 그 여인이 들어왔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김비서는 식사를 차려놓고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나도 난감했다.
식사를 마친 후에도 김비서는 돌아오지 않았고, 차 한 잔 부탁하기도 어려웠다.
그때 여자가 말했다.
“회장님, 차 드시겠어요? 제가 준비해 드릴게요.”
차를 마주하고 앉았지만, 공기는 무거웠다.
나는 지갑에서 수표 몇 장을 꺼내 여자의 핸드백에 조용히 넣었다.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예요.”
그녀는 모든 걸 알아차린 듯 고개를 깊이 숙이고 조용히 현관을 나섰다.
나는 담배를 다시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 창문을 열자,
마당에 서 있는 김비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뒷모습이 너무나 쓸쓸해보였다.
왜 그랫을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내 가슴을 더 깊게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