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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din BsBsVs Apr 14. 2023

따뜻한 이야기 한 스푼 #2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짜장면에 대해 한두 가지 추억이 있다.

최근 들어 "**는 사랑입니다."라는 말을 쓰는 걸

듣곤 합니다.

그래 오늘 저는 "짜장면은 사랑입니다."라고 말하고 싶네요.

“당체, 이 검붉은 게 뭐시다냐 ~잉?”

이름하여 짜장면.. 자장면??

뭐 이름이 자장이든 짜장이든 춘장이든

중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난 짜장이라고 부르는 게 좋다.

정감 어린 단어 아닌가?

짜장면!!!

짜장면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좋은 기억이 많다.

어렸을 때 운동회가 끝나거나

졸업식을 마치고 나면

부모님께서는 늘 짜장면을 사주셨다.

그리고 언제나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마법과도 같이 만족하는 외식은 짜장면

하나면 요즘말로 쌉가능(모두다 가능)이었다.

짜장면은 그리하여 맛도 추억도 같이 소환하는

희귀한 음식이다. 행복도, 아픔도 소환하는 음식..

그게 뭐라고, 요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옛날 옛날에, 간날 갓적에, 옛날꼰날에

그 옛날 우리 집은

세 가구에게 월세를 주고 살 수 있는, 네 가구가

옆으로 길게 이어진 형태의 집에 살았었다.

물론, 네 가구 모두 우리 부모님의 소유였다.

주인집인  우리 집에만 다락이 있는 안방 한 칸과

작은방 한 칸 그리고 그 방문 앞으로 안방과 작은

방을 잇는 커다란 마루가 있었고 하나의 큰 주방과 그 주방 안쪽 구석엔 연탄창고가, 주방 출입문 앞쪽으로 넓은 수돗가가 있었다.


나머지 세 가구는 마루하나 없이 방과 부엌이

문하나로 바로 붙어 있는 단칸방으로  70,80년도 에만 볼만한 소박한 구조로, 사이좋게 붙어있는 셋집 앞편으로 수도하나 달랑있는 작고 소박한  공용수돗가가 있었다.

화장실은 재래식 화장실로 2개의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중 주인집에 붙어있는 화장실 하나는 주인집인 우리 가정에서 단독으로 사용했던 걸로 기억한다


또한 화장실 천장에는 탁구공 크기에 거의 붉어 보이기까지 한 주황색 백열등 하나씩 달려 있었는데, 도대체 왜?

그런 색을 조명에 썼는지 아직도 잘 이해가 안 간다.

거의 정육점 분위기 나는 그런……

그래서 그런지 그 당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화장실 귀신시리즈 이야기가 그리 유행이었나 보다.

   뭐 이런 거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나?

재래식 화장실 아래에 귀신이 올라와

“흐으 ~흐으~”

“빠알간 휴지 주까~파~아란 휴지 주까~~”

이런 이야기 등등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제법 유치하지만

그 시절 야심한 밤,  불그스름한 조명아래 볼일을

볼 때면 구멍 아래에서 손이라도 불쑥하고 올라와 색깔 있는 휴지를 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가끔 섬뜩하기도 했었다.

그뿐만 아니라 여름에는 항상 “전설의 고향”이라는, 요즘말로 호러물에 가까운 귀신이야기를 방송으로 왜 그리도 많이 해 주었는지.

에어컨이 없던 시절 여름밤의 무더위를 서늘하게

해 주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공포에 질려, 소름 끼칠 땐 온몸에

닭살도 돋고 좀 추워지는 느낌이 드는 것 같긴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밤엔 대부분 동생이나 누나에게

구걸하듯 부탁하여 함께 화장실을 갈 때가

많았던 것 같다.

나 또한 예외 없이 동생과 누나가 요구를 할 때면

동행해 주었다.

그때마다 야심한 밤,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

문밖에선, 지키고 있다는 표시로  쓰잘데기없는

이야기를  수시로 주고받는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문: “안 가고 밖에 기다리고 있지?”

답:”그래?”

문:”아직 멀었어?”

답:”응.. “


이런 패턴의 대화라고나 할까???

중요한 건 70,80년도의 생활을 재연해 놓은 테마 공원에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쪽 재래식 화장실에도 그 조명을 썼더라.

무슨 사유가 있는 건가?

"이 사람아! 화장실은 꼭, 정육점 분위기가 나도록

해야 할 것 아니야!!"라고 박정희 대통령님께서

말씀이라도 하셨었나???

도대체 왜????

아마도 큰 이유가 있겠지…

개인적으로 추측하건대 화장실의 지저분한 오물들이 눈에 덜 띄게 했던 조치가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 그 화장실에는 화장지 대신에 조각낸

신문지가 화장실에 늘 비치되어 있었다.

물론 한국이 발전하면서 신문지에서 학창시설

화장지로 바뀌어 문명의 혜택은 좀 봤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참 세월 좋아졌다.

어쨌든 우리 집 셋방은 비는일 없이 항상 인기가

있었다.

가난하지만 따뜻한 무언가가 있는 느낌이 드는 쪽방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부모님은

요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건물주였다.

또한 시골에도 외할머니가 하나님 곁으로 가시며

남겨주신 촌집도 있어.  자녀 된 나는, 밥은 굶지 않아 배고픔에 대해서는  모르고 지낸 것 같다.

물론 호의호식하며 지낸 것만은 아니다.

부모님께서는 늘 검소하셨고 늘 열심히 일하셨다.

어머님은 시장에서 다듬어져서 버려지는 무순, 배춧잎을 골라 가져다가 깨끗이 씻어 시래기로 말려

놓곤 반찬을 해주셨다.

초겨울, 시래기는 잔 바람에 흔들리고, 바스삭거립니다.

부모님이 검소하시기에 자녀 된 우리도 늘 검소했고 가난을 벗 삼아  살았다.

옷을 기워입고 그조차 형에서 형으로  작은형에서 내게로 물려받아 입었으니 말이다.

결국 서열이 가장 낮은 막내는 상거지 차림이

아닌가!!

그땐 좀 부끄러웠으나. 자녀를 위해 고생하셨던

그 맘을 알게 되니. 오히려 감사한 마음뿐이다.

부모님께서는 물려받은 것도 없이 맨손으로

시작하여 자립하셨으니 집을 마련하기까지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생활력이 강하신 우리 부모님.

지금도 그 모습은 설령 내가 자녀가 아닐지라도

존경을 안 할 수가 없다.

사건의 배경을 이야기하다 보니

이야기가 잠시 딴 데로 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촌집 월세를 살고 있는

 세사는 가족이 부모님께 찾아오셨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으로 부모님께 부탁을 드리려

왔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월세를 깎아 달라는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때 나는 동생과 함께 주인댁 작은방에 방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점심으로 짜장라면을 먹고

있었다.

요즘에도 나오는 그 라면,

ㅉㅃ갓티(이름은 가명을 썼습니다) 였는데

누구나 잘 아는 너구리가 봉지에 그려져 있는

그 라면이다....

역시 짜장면은 사 먹어도.

라면으로 끓여 먹어도 맛이 좋다.

동생과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짜장라면을

먹고 있다.

하지만 사건은 그로부터 발단이 되었다.

시시하지만 평생 기억으로 남게 되는 그 사건.


동생과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짜장면을 먹고 있는데

열린 방문 밖 마루 너머, 한 남매가 우리 두 형제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언제 씻었는지 검고 꾀죄죄한 두 남매의 얼굴에는 가난이란 그림자가 그대로 그늘져 있었다.

나이는 우리와 거의 같거나 조금 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두 남매는 우리를 쳐다보며 침을 꿀꺽꿀꺽

삼키고 있는 것이다.

꼭 과장되게 연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건 연기가 아니다.

그 얼굴에서는 배고픔이 가득했다.

숨길 수 없는 배고픔...

짜장면 냄새가 작은 방문 문턱을 넘어 그들에게

전해지듯이, 남매의 그 침 삼키는 소리는 4미터

떨어진, 작은방 우리 귓전에 까지 생생하게

들려왔다.

그 순간, 그리 맛있던 짜장면은 먹기가 거북해

질만큼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양이라도 많았다면,

"얘들아 배고프지??? 같이 먹자!!"라고 했겠지만.

음식 양도, 그리고 그리 말할 용기도 없었으니...

우린 부러움과 간절함이 담긴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의무감에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그냥 입속에 밀어 넣듯이 말이다.

그때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먹었을 때였으며, 그때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짜장면을 먹었을 때로 기억한다.


인간은 간사하지 않은가..

우울할 땐 한 번씩 ㅉㅃ갓티를 끓여 먹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짜장면을 먹는다는 자부심.

누군가는 못 먹고 있었지만 나는 먹을 수 있었다는

자기만족??

참 유치하기도 하지.

과거의 주인집 도련님을 회상하기라도 하는

것이란 말이냐??


나이가 더 들어보니, 마음이 아프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

측은지심???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될수록

더 마음이 아프다.

그때 왜 나는 그들과 행복의 짜장면을 함께 나누지 못했던가.


가난과 배고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생각한다.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오리려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잘 나누고 인색하지 않더라.


이 글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때 그 남매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맞은 사람보다

때린 사람이 잠을 못 이룬다 했던가.

그때 챙기지 못한 내 마음이, 미안함에 평생 아리다.


짜장면은 사랑입니다.

나눌 수 있다면 함께 나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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