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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din BsBsVs Apr 18. 2023

따뜻한 이야기 한 스푼 #5

주방에도 인생에도 우담바라가 피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베란다에 누워 있던

무순이 올라온 무를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잊고 지냈었는데,

딸이 제 핸드폰 사진을 보더니

"아빠 왜 무사진을 찍었어??"라고 물었어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응 그냥, 찍어봤어, 뭔가 신기한 것 같기도 하고

가치가 있어 보여서"

23년 3월 어느날 무순이 올라왔다.

마눌님이 사다 놓은 무에, 무순이 올라왔습니다.

살 때는 분명 머리털 한올 없이 매끈했던 무였는데,

베란다에 요리해 주기만을 기다리다,

그 기다림에 지쳤는지, 제 혼자 무순을 틔웠습니다.

그리고 망각의 일상 속에서

양파의 정수리엔 손가락 같이 솟은 초록색  머리가,

어두운 상자에 보관한다고 그리 귀하게 넣어두었던 감자는 어둠 속에  누구와 그리 심하게 다투고, 크게

한 대 맞았는지 혹같이 올라왔더랬어요.

그 옆 베란다 구석 한켠, 박스 안에 고구마들도 가시와도 같은 보랏빛 머리털을 그리 자랑스레 뽐내고 있네요.


우담바라라는 꽃을 아시나요?

사전에 찾아보니 "3천년 만에 한 번 꽃이 피는 신령스러운 꽃으로, 매우 드물고 희귀하다는 비유 또는 구원의 뜻으로 여러 불경에서 자주 쓰인다."라고 말합니다.

저에게 있어 "우담바라"라는 꽃의 느낌은, 불교적 색채가 강하고 눈으로 보기 힘든 아주 작은 희귀한 꽃이라는 거예요.

작다는 건 감상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또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발견되지 못한 채 시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희귀하고 신령스러운 꽃은 제게 의문을 던져 줍니다.

감상하기도 어렵고, 피어 있는지도 모른 채 시들어 가는 우담바라가 왜? 신령한 꽃일까??

그 꽃은 누가 돌보지도 않았고, 모든 이가, 자신을 쳐다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꽃을 피우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장소를 따지지 않고, 자신의 삶 자체에 의미를 가지고 의지로써 피는 꽃이라 생각을 해보았어요.


그리고 자신을 찾는 이들에게 발견되거나, 삶 속에서 주의 깊은 가운데 우연히 발견되어 보여지는 꽃.

저는 김치냉장고 위, 한가로이 누워 푸른 머리를 내밀고 있는 무를 보며,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우담바라처럼, 남몰래 머리털을 틔여준 무와 양파, 감자, 고구마.

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저의 돌봄 하나 없이 본인의 의지로 싹을 틔웠어요.

너무 작아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잊혀질 우담바라처럼 말이죠.

메마른 일상이 주는 타성 속에서  나의 감성은 딱딱하게 말라버린 채, 흐려지고 마른눈을  힘겹게 비비며 주의 깊게 그들을 바라봅니다.

그들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잊어진 채 시드는 잎사귀 따위는 상관하지 않아요.

사계절 내내 피었다 지며, 열매를 내는 꽃들처럼 말이죠.


저의 생각의 빠르기 보다 마음이 먼저 저에게 다가와 이야기를 건넵니다.

우담바라와 이들은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도 한결같이, 같은 희망을 말하는 것 같이 무척 아름다워요.

어두워 감옥 같은 상자 안에서도.

누군가를 의식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은 채 희망의 가는 빛줄기를 따라 꽃과 싹을 틔우는 것.

찾지도 않는 외진 산골, 그 잘려진 나무 밑동에서도 남몰래 꽃을 틔우는 것.

한결같은 그들을 보며

누군가는 희망을 가질 테니까요.

희망이란 그것.

그냥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버거워도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

그것 또한 그 모습이 주의 깊은 누군가에는

기특하고, 눈물 날 만큼 아름다움으로 보이겠지요.


그들이 주방이 아닌 어느 한적하고 양지바른 대지에 홀로 있더라면

그들은 싹을 틔우고 성장하고 성장해서.

씨라도 바람에 날려 보내겠지요? 생명에 소망을 두면서 말이에요.

그래서, 그런 여지조차 기대하지 못하는 절망의

베란다에서 처절함으로 삶을 살아내는 무가, 양파가 그리고 감자, 고구마들.

그 삶이 버거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절망 속에도 최선을 다해 꽃을 내는

그는 아름답습니다.


우담바라는 아주 작고 희귀합니다.

주의 깊게 찾지 않으면 볼 수가 없군요.

그리고 그 아름다움도 감상할 수 없겠죠.

지금도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저의 삶 속에

지나가고 있어요. 더 주의 깊게 바라볼까요?

희망을 주는.. 감사의 제목을 삶 속에서 보석처럼

찾아볼래요.


사진으로 남아 있는. 무

그리고 이제 숨겨진 그 가치를 찾은 것 같아요.

잘라냈던 그 자리에서도, 다시 자라나는…

생명이란 게 얼마나 오묘한지요.

이제 꽃까지 피었습니다.   “너 참 기특하다!!”
그리고 결국은 더 많은 꽃과 향기를 냅니다.

“넌 참으로 멋진 친구야!!”

힘들어도 원망, 불평 없이 너의 길을 가는,

향기로운 삶을 살아내는 너에게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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